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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생의 마루 Aug 31. 2022

깐깐할수록 고객에게 신뢰를 얻는다

임대인과의 관계 처음이 중요하다

개업공인중개사로서 계약할 때 서류를 보면서 합리적 의심을 하거나, 계약이 가능한 지 몇 번의 다짐을 받으려고 하면 임대인은 부동산이 깐깐하다며 꺼리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계약이 잘못되면 손님에게 피해가 가거나, 중개사로서의 신뢰를 잃고, 결국은 소송에 휘말리는 결과를 남길 수 있습니다. 그러니 예방 차원에서 깐깐하단 소리를 들어도 챙길 건 챙기는 습관을 들이는 것이 개업공인중개사에게 도움이 됩니다.


오늘은 임대차계약 때 깐깐했기에 오히려 임대인에게 신뢰를 얻은 경우를 소개할까 합니다. 역세권에 있는 상태 양호한 다세대 주택의 임대를 의뢰받았습니다. 임차인이 만기 전에 내놓은 집이었는데 손님을 모시고 온 부동산에서 임장 한 후 계약 의사가 있다고 연락이 왔습니다.


임대 물건의 등기부 등본을 열람해 보았는데 자세히 보니 사모님 명의로 가등기가 되어 있었습니다. 가족관계인데 가등기가 되어 있는 상황이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조금 찜찜한 마음에 임대인분께 일단 사무소에 오시라고 연락을 했습니다. 이유를 알아야 계약을 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저는 전화상에서 느껴지는 임대인분의 목소리에 기가 눌렸습니다. 임대인을 만나기 전까지 긴장되었지만 ‘정신만 차리면 된다.’라는 마음속 다짐을 되새기며 커피 한 잔을 준비해 사무실에 기분 좋은 향이 나도록 했습니다. 곧 임대인이 사무실에 도착했습니다. 다부진 느낌의 임대인은 강하지만 예의 바르고 교양있는 품성을 지닌 듯했습니다.

저도 최대한 바른 자세와 또박또박한 목소리로 인사를 하고 커피를 권했습니다. 처음에 들어오실 때는 임대인분도 긴장한 모습이 역력했으나 커피 향에 곧 온화해진 것 같았습니다. 저는 이때다 싶은 생각에 임대인에게 계약할 손님이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임대인은 다른 임대인과는 달랐습니다. 자존감뿐만 아니라, 집에 대한 자부심도 높은 분이었습니다. 나긋하지만 단호한 어조로 임대건물은 임대인 본인이 설계한 건물이고, 내진설계가 되어 있는 집이며, 임차인도 수준이 맞는 사람만이 들어 올 수 있는 집이라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직접 임차인을 보고 결정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저는 머리가 조금 지끈거렸지만, 그렇게 하기로 하고 조심스럽게 등기부에 적힌 내용을 여쭤보았습니다. 그러자, 임대인은 큰 문제가 없는 듯 대답해 주었습니다. 그래도 저의 찜찜한 기분은 계속 남아있었습니다.

며칠 후 다행히 새 임차 손님은 면접에 합격(?)해서 계약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계약에 임대인 한 분만 오셨습니다.

계약을 끝냈지만 제가 궁금했던 가등기 의구심이 여전히 마음에 짐이 되었고, 결국 공동중개한 대표님과 계약서를 들고 임대인댁으로 찾아가 사모님 신분증을 보고 계약서에 도장을 찍고 나서 마무리했습니다. 사실 댁으로 찾아간다고 했을 때부터 사모님은 기분이 언짢으신 것 같았습니다. “그걸 못 믿고 왔냐.”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저도 처음 보는 임대인의 무엇을 믿고, 임차인의 전세산과도 같은 계약을 할 수 있을까요? 한 소리는 들었지만, 그래도 도장을 받고 나니 이제 맘 편히 쉴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한 행동이 전화위복이 되었습니다. 나중에 사모님이 우리 사무소에 들러서 제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렇게 깐깐하게 하니까. 더 믿을 수 있을 것 같았어.”

그 말씀에 그동안 가지고 있던 서운함이 눈 녹듯 사라졌습니다. 처음엔 진입장벽이 높은 것 같지만 한 번 들어간 그곳에서는 조금은 자유로워졌습니다. 깐깐함이 만든 신뢰가 생겼기 때문이죠. 그 후로는 임대 물건이 나올 때마다 일부러 사무소에 찾아오셔서 임대 의뢰하시고 가셨습니다.


그리고 집을 계약할 때 두 분이 다정하게 오셔서 계약하시고, 가등기의 속사정 얘기를 먼저 해주셔서 문제없이 계약하게 되었습니다. 저도 손님께 브리핑할 때 편하게 할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한 번의 관문을 통과하자 나머지 계약은 수월해졌습니다.



물도 깐깐하게 고르는 시대인데, 계약은 더욱 깐깐하게 해야 함은 개업공인중개사의 당연한 의무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신뢰를 얻는 방법의 하나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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