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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생의 마루 Sep 21. 2022

잔금일이면 반복되는 일

계약일보다 더 어려운 잔금일

  

몇 년 전에 매매 잔금일에 손님과 작은 언쟁을 벌인 적이 있습니다. 임대인이 거주하지 않는 주택이었기에, 임차인 집에 소소한 문제로 임대인이 부탁하면 신경 쓰이지 않도록 알아서 관리해 드렸고, 또 임대가 나오면 주인이 멀리 계시니 걱정할까 봐 가능한 한 빨리 해결하려고 여러 부동산에 공유해서 공동중개로 빠르게 계약해 드렸던 집이었습니다.

어느 날 매도를 의뢰하기에 더 좋은 금액을 받도록 애쓴 결과로 매매 계약까지 했습니다. 그렇게 기분 좋게 계약하고 만족해하는 매도인을 보며 저도 기분이 좋았습니다. 개인적으로 계약한 당일이 가장 기분이 좋습니다. 왜냐면 그때까지는 의뢰한 손님과 제가 같은 편이라 계약의 기쁨을 같이 공유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잔금일이 도래하면 서로의 입장이 좀 달라집니다. 이유는 중개보수 때문인데요. 공인중개사도 중개보수 조정을 어느 정도 예상하지만, 터무니없는 금액으로 조정을 원하면 순간 당황하기도 하고, 좋은 감정이 한순간 나빠지기도 합니다. 그래서 얼굴을 붉히고 언성이 높아지면서, 감정이 상한 매도인과 잠시 작은 말다툼이 일어납니다. 시간이 조금 지나서 양보해 협의를 보았습니다. 하지만 서로의 감정은 정리가 안 된 상태로 마무리했던 씁쓸했던 잔금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중개업자가 중개하는 이유는 중개를 통해 수입을 얻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계약당사자 가운데서 협상에 이르기까지 갖은 심리적 압박을 견디며 일을 합니다. 하지만 법률에서 정한 금액을 받는 것조차 공인중개사에게는 용납이 안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공인중개사에게는 중개보수 요율표를 중개사무소에 게시할 의무가 있고, 어느 부동산이든 언제든지 중개보수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또한, 계약 때 작성하는 중개대상물 확인설명서에도 중개보수 작성란이 있습니다. 계약서에 계약금액을 입력하고 중개대상물 확인서를 인쇄하면 최고 요율이 기본값으로 인쇄되어 나옵니다.

중개보수는 계약 전 또는 계약 후 중개한 공인중개사와 협의하시면 됩니다.


그런데 계약이 성사되기까지는 상당히 협조적이었던 손님들이 잔금일이 가까워지면 이상하게 거리감을 느끼게 되는 이유가 아마도 중개보수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 건 제가 너무 예민한 것일까요?

중개보수요율표를 자세히 살펴보면 거래금액이 적으면 낮은 요율이 적용됩니다. 하지만 금액이 고가인 경우는 요율도 같이 높게 책정되어 있습니다. 여하튼 제가 드리고 싶은 말씀은 중개보수요율표는 실무에서는 형식뿐이라는 것입니다.


실제로 공인중개사와 손님 간의 협의가 아닌 손님이 결정한 보수율로 받는 경우도 많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공인중개사와 손님 간 협의가 안 되고 억울하다 싶으면 중개보수를 제대로 받기 위해 소액재판을 하는 때도 있답니다. 그렇게 소액재판을 하면 생각보다 요율이 높습니다. 그것이 의미하는 것은 중개보수는 월급의 개념이고 곧 생계와 연관되어 있음을 법에서도 인정하기에 공인중개사에게 어느 정도의 요율을 적용해 준다고 생각합니다.


가끔 홈쇼핑에서 공인중개사 학원 광고 방송을 보면 기가 막힙니다. 한 건만 양타로 계약하면 몇 개월은 놀고먹는다고 유인해서 공인중개사 수강 신청등록을 유도하던데요, 저는 10년 넘게 중개업을 하고 있지만, 아직 한 건의 계약으로 맘 편히 쉰 적이 없습니다.

큰 금액의 계약이 많지도 않고, 설사 계약했더라도, 공인중개사로서 중개보수를 제대로 받기가 쉽지 않답니다. 저는 가끔 중개보수를 무리하게 조정을 요구하는 분에게 우스갯소리로 말씀드립니다.

“저희는 중개보수가 사과나 배도 아닌데, 왜 이리 깎습니까?”,

“손님은 월급날 갑자기 월급이 감된다면 기분이 어떨 것 같으세요?”


매번 잔금일에 이런 고민을 해야 하는 공인중개사로서 아직도 중개업을 바라보는 시선이 곱지 않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계약 때 미리 협의하기도 합니다만, 계약 후 바로 중개보수 얘기를 꺼내면 그 당시에는 계약이 성사된 기분에 좋다고 해도, 잔금일이 다가올수록 다시 조정을 원하는 분도 있습니다.

중개대상물 확인서에 있는 중개보수란에 있는 금액을 확인 후 확인 서명을 받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드는 이유입니다.

중개에서 계약은 계약당사자 사이에서 계약을 원만하게 진행하기 위한 협상심리전과 계약 후 중개보수 사수를 위한 공인중개사와 손님 간의 심리전, 이렇게 두 번의 전쟁을 벌이는 일입니다. 때로는 쉽게 일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 보이지 않지만 계약하기까지 준비하고 노력하는 시간이 훨씬 더 많다는 것을 조금이라도 알아주는 분이 있다면 금액을 조정을 쉽게 말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한편 공인중개사로서의 이미지 쇄신을 위한 노력도 해야 할 일입니다. 각종 매체에서 중개업자가 연관된 사건 사고기사가 나올 때마다 창피하고 화가 납니다.

양심을 저버리는 중개를 하는 분과는 현재의 이익을 포기하더라도 공동중개를 하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힘이 들겠지만, 공인중개사로서 손님에게 신뢰를 주는 중개를 할수록 중개업의 위상이 높아질 날이 다가오지 않을까 상상해봅니다. 그렇다면 잔금일에 벌어지는 고민도 날려 보낼 수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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