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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생의 마루 Sep 24. 2022

보이지 않을 것 같은 진심은 더 잘 보인다

진심은 안 보여도 통한다


대부분 사람은 눈에 보이는 것만 믿고, 보이지 않는 것은 믿지 못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실체를 보아야 믿게 되는 것이 보통 사람의 마음이겠죠. 하지만 평생을 앞을 못 보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무엇을 보고 믿고 판단할 수 있을까요? 저는 시각장애가 있는 손님의 집을 중개하는 과정에서 깨달음을 얻었던 특별했던 경험이 있어 소개할까 합니다.      


어느 늦은 봄날 토요일 전세 계약을 기분 좋게 했습니다. 계약하고 나니 그 집에 살던 분이 집을 구해야 한다며 우리 사무소에 방문했습니다. 비장애인 손님과 앞이 전혀 보이지 않은 시각장애인 두 분이 방문했는데, 저는 처음 그 손님에게 중개 의뢰를 받고 심적인 부담을 느꼈습니다.

손님의 초점 없는 눈을 바라보며 제 마음의 초점도 사라진 듯 갈팡질팡했습니다.      


중개업을 시작하고 처음으로 시각장애가 있는 분을 만나서 임장을 어떻게 해야 할지 조심스러웠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저의 모자란 생각에 이 손님이 계약한다고 한다고 할 경우, 임대인이 혹시 싫다고 하면 어떡하지? 또, 손님과 임장을 어떤 방식으로 해야 하지? 손님은 집의 넓이를 어떻게 알 수 있을까? 등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에 대해 저의 오지랖과 걱정이 앞섰습니다.      


다행히 손님이 살고 있던 집은 보았기 때문에 원하는 집의 크기는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비슷한 넓이로 현재의 집보다 상태가 좋은 곳으로 찾으려고 노력했습니다.

며칠 후 손님과 임장 일정을 잡았습니다. 다행히 자원봉사자분이 동행했습니다. 저의 예상보다 밝은 손님을 보니 마음이 편해졌습니다. 집을 보러 가면 손님은 본인의 양팔을 벌려서 팔 길이만큼 몇 번이 되는지 수를 세어 집의 거실의 넓이를 쉽게 파악했습니다. 안방도 같은 방법으로 크기를 알아냈고 집의 기운을 느끼면서 집의 상황을 파악하는 것 같았습니다, 제 고민이 기우였음을 그때 알았습니다.

     

그 뒤로 며칠 동안 몇 채를 더 봤는지는 솔직히 기억이 나진 않지만, 손님은 여러 집중에서 살던 집과 비슷한 크기의 신축 빌라를 선택했습니다. 이번에도 손님은 두 팔을 벌려 방과 거실의 크기를 확인하고는 계약을 결정했습니다. 결정은 생각보다 빨랐습니다. 그리고 가장 좋은 집을 선택하는 감에 마음속으로 적잖이 놀랐습니다.      


저는 곧바로 물건지 부동산과 계약하기로 했습니다. 걱정과는 달리 임대인도 계약하는데 큰 부담을 느끼지 않는 것 같았습니다. 계약을 위해 등기부 등본을 열람해보니 대출금이 있었지만, 잔금일에 대출금을 상환하고 말소 등기하는 조건으로 계약을 진행했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이사 일이 다가왔습니다. 잔금을 모두 치르고 이제 임대인의 대출금 상환과 말소등기 신청이 남았습니다. 이때 보통의 경우 대출받았던 은행의 법무사에게 의뢰하면 알아서 처리해주고 말소등기신청 확인서만 받으면 끝이 납니다. 저의 일도 당연히 끝인 줄 알았습니다만, 끝이 아녔습니다.      


임차인은 대출 상환을 직접 확인해야겠다고 했습니다. 내심 구태여 은행에 가려는 것이 못마땅했습니다. 당시 임대인의 대출 상환 은행은 거리가 있는 영등포구에 있었고 당시 초보운전자나 다름없었던 저는 여러 명을 태우고 운전하는 것이 두려웠습니다.

하지만 곧 마음을 고쳐먹기로 했습니다. 어차피 내가 해야 할 일이고, 내 손님은 앞을 볼 수도 없으니, 임차인으로서 확인할 길은 이 방법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 이 정도 수고는 해도 된다.’라고 다시 생각했습니다.      


저는 가까스로 은행에 도착해서 순번을 기다렸고 차례가 되어 담당 직원에게 대출금 상환처리와 말소등기 신청 확인까지 받았습니다. 이제 정말 일이 마무리되었습니다. 손님도 그제야 마음이 놓이는 듯 보였습니다. 저 또한 해야 할 일을 한 것 같아 마음이 후련했습니다. 이제는 사무소에 무사히 오기만 하면 된다는 생각으로 운전에 집중하며 다시 돌아왔습니다.      


손님은 저와 헤어지기 전에 중개보수를 알려 달라하고 저에게 고생했다며 제게 한 말씀하셨습니다. ‘젊은 사람이 화 안 내고, 참을성 있게 일해 줘서 고맙다. 화났던 거 다 안다. 사장님의 숨소리에서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대략 이런 내용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저는 그 말에 잠시나마 화를 참지 못한 마음을 들킨 것이 부끄러웠습니다.      


그리고 이 손님처럼 눈으로는 세상을 볼 수 없지만, 오히려 자신의 특별한 오감과 마음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 느낄 수 있는 사람도 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습니다.


가끔 보면 임대인이 이사하라고 했다는 말에 앙심을 품고, 건물에 기름을 뿌리거나, 더러운 물건을 던지고, 임대인을 협박하고, 층간소음으로 말싸움 끝에 살인을 저지르기도 합니다.

     

세상에는 비장애인이라 생각했던 사람들이 오히려 비정상적인 행동을 더 많이 한다는 사실을 아시나요?      

그 당시 자신을 돌아보며 생각해 볼 시간을 만들어 준, 그리고 장애인이라는 편견에서 벗어나게 해 준 손님에게 새삼 감사함을 느낍니다. 저는 그 후로도 비슷한 장애가 있는 분을 만나 중개할 일이 있었지만, 선입견이 조금은 없어진 듯 ‘당황하지 않고!’ 중개했습니다.    

  

저는 그 손님이 어딘가에서 저와 같은 또 다른 누군가에게 선한 영향력을 몸소 실천해 보이며 잘살고 계시리라 믿습니다. 사모님 행복하시길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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