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에서 처음 출근하던 날이 생각난다. 나는 2017년 12월 9일에 결혼했고, 1년 가까이 주말부부 생활을 하다가 2018년 11월 1일 발령을 받아 대구에 내려왔다. 10월 30일까지 서울에서 근무를 했고, 10월의 마지막 날에 하숙집 방을 빼면서 10년간의 서울 생활을 청산하고 대구로 내려왔다.
내가 대구로 오게 된 것은 남편이 대구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는 청도에서 나고 자라서 대학교 이후로 쭉 대구에서 생활하고 있는 토박이다. 어쩌다가 눈이 맞았는지는 다음에 풀어보도록 하고, 어찌 됐든 4년간의 장거리 연애 끝에 우리는 부부가 되었다. 회사에서는 결혼은 내 사정이니 당연히 바로 발령을 내주지는 않았다. 사내 결혼이니 모두가 사정은 알고 있는 상황이었고, 나는 일단 묵묵히 주말부부 생활을 했다.
당시 코레일은 내가 먹여살렸다. 장거리 커플이나 주말부부는 모두 공감할 터!
주말마다 신혼집과 하숙집을 오가느라 길바닥에 버려지는 기차표 값은 차치하고서라도, 이대로 가다간 가족계획을 세울 수도 없을뿐더러 결국은 결혼한 의미가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결국 인사 담당 이사님께 찾아가 내 사정을 말씀드리고 한 쪽으로 발령을 내 주십사 간청을 드렸다. 서울에는 T.O.가 없어서 내가 대구로 가야 한다는 예상했던 답변을 들었다. 내 후임으로 일할 신입사원을 뽑고 한 달 반의 인수인계를 마친 뒤, 드디어 나는 주말부부 생활을 청산하고 신혼집으로 들어갔다. 결혼 11개월 만의 일이었다.
서울과는 달리 대구에는 사무실이 여러 개 있었는데, 나는 당연히 남편과 같은 건물에서 일하게 될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내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내가 발령을 받은 사무실은 차가 없으면 갈 수 없는 산 너머에 있었다. 게다가 그것을 알게 된 것은 첫 출근 날을 하루 앞둔 평일이었다. 세상에. 나는 차가 없었고, 2013년에 취득한 장롱면허에는 새하얗게 먼지가 내려앉아 있었다.
어쩔 수 없었다. 그건 다 내 사정이었다. 나는 급하게 중고차 한 대를 구입했다. 140만 원이었던가. 남편이 회사 사람들에게 수소문해서 구한 중고차였다. 첫 차에 대한 설렘이나 로망을 품을 새도 없었다. 갑자기 생업을 위해 구입한 나의 첫 차는 CNG 충전 용기를 올려 개조한 2008년식 베르나였다.
첫 차에 대한 로망이고 뭐고 일단 출근해야 했다
내 첫 차를 만난 때는 첫 출근 전날 밤이었다. 10년간의 서울 생활을 청산하고 내려오는 데는 하루가 꼬박 필요했다. 내가 발령받은 사무실은 전에는 가보지도 못했던 곳이었다. 게다가 익숙한 동네도 아닌 태어나서 처음 살아보는 대구라니. 게다가 5년 동안 먼지 쌓인 장롱면허를 탈탈 털어 운전대를 잡아야 한다. 밤이라서 그런가. 눈앞이 캄캄했다.
남편은 걱정이 태산 같은 나를 조수석에 태웠다. 그리곤 내일 출근할 사무실 앞까지 운전을 해서 길을 알려주었다. 그러나 알 리가 없었다. 타고나기를 길치인데다가 생판 모르는 동네를 어두컴컴한 밤에 조수석에 앉아 유심히 살펴본다 한들 첫 출근일에 기억이 날 리 만무했다. 나는 현대 문명을 믿기로 했다. 자동차에 달린 내비게이션만이 나의 살길이라 믿으며, 태산 같은 걱정 보따리를 이고 지고 잠을 청했다.
드디어 다음날 아침. 남편은 남편대로 급하게 준비를 해서 회사에 출근했고, 나도 평소보다 서둘러서 길을 나섰다. 첫 출근이니 화장도 신경 써서 꼼꼼히 하고, 초행길이니 여유 시간도 상당히 길게 잡았다. 어제 초집중 모드로 길을 외운 덕분인지 환한 낮에도 남편이 설명해 준 길이 제법 기억이 났다. 어?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나의 구세주, 나의 유일한 살 길이었던 내비게이션이, 나의 기억과는 반대되는 길을 알려주는 것이다.
너만 믿었었는데....
세상에. 짧은 순간 얼마나 많은 고민을 했는지 모른다. 그렇지만 내비게이션을 의지해 보기로 했다. 길을 찾는 나의 감각은 30년의 세월 동안 겪어본 바로는 믿을 것이 못 되었다. 그때는 내비게이션과 의견이 맞지 않아 반항을 하더라도, 틀어진 곳에서부터 다시 길을 알려준다는 것을 모르던 때였다. 그만큼 나는 운전 무식자였다.
하지만 이를 어째. 운전 무식자라고 결근할쏘냐. 나는 운전대를 더욱 꽉 움켜쥐고 눈을 더 크게 부릅떴다. 전방도 주시해야 하고 내비게이션도 확인해야 하고, 익숙하지 않은 차량 조작도 해내야 한다. 그뿐인가. 커다란 차가 내 옆을 지나가도 깔려 죽는 일은 없을 거라고 나를 계속 안심시키기도 해야 했다. 그런데 내비게이션이 계속해서 내 예상을 빗나갔다. 조금 더 가다 보면 남편이 알려줬던 길과 합쳐질 줄 알았는데, 길치에 방향치인 내가 봐도 나는 너무나 다른 곳에 와 있었다.
순간 눈물이 났다. 나, 출근 못하면 어떡하지. 첫날부터 지각하면 어떡하지. 결국 도착 못하면 어떡하지. 어떡하지. 어떡하지. 불안감에 견딜 수 없어 엉엉 울었다. 2018년 11월 1일, 7시 40분경, 대구의 어느 도로 위에서 나는, 2008년식 베르나의 운전석에 앉아 체스판 무늬 커버를 씌운 핸들을 붙잡고 엉엉 울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