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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딘도 Aug 22. 2023

조직폭력배가 아니라 조직입니다.

첫 출근날의 기억(2)

엉엉 울면서도 전방을 계속 주시했다. 어쨌든 출근은 해야 한다. 내비게이션은 끝까지 내가 아는 길로 데려다주지 않았다. 그래도 믿을 건 내비게이션밖에 없었다. 모로 가도 서울로만 가면 된다고, 어쨌든 도착할 거라고 믿었다. 신호 대기에 걸려 거울에 얼굴을 슬쩍 비춰보니 첫 출근이라고 신경 써서 한 화장이 다 망가졌다. 아무렴 어때. 늦지 않게 도착만 하면 감사할 것 같았다.


헐레벌떡 도착한 시간은 8시를 10분쯤 남겨둔 시간이었다. 너무 우스꽝스럽지 않도록 얼굴을 정돈하고, 떨리는 마음으로 사무실로 들어갔는데, 들어가자마자 나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마치 검은 조직에서 '안녕하십니까 형님' 하듯이 팀원들이 모두 뒷짐을 지고 좌우에 도열해 있었다. 그 대열의 가장 끝에는 팀장님과 부팀장님께서 서 계셨다.

조직은 맞지만 조직폭력배는 아닌데 조직폭력배 같았던 첫인상


첫 출근날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본 광경은 나를 압도했다. 내 앞에 도열한 30여 명의 장정들은 조직은 맞지만 조직폭력배는 아니었다. 그런데도 긴장감에 침이 꼴깍 넘어갔다. 굳은 표정. 곧은 자세. 파란색 근무복에 안전화를 착용했다는 것만 다르고 영화에서 본 장면과 거의 똑같았다.


내가 들어가자마자 팀장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리고 오늘부터 우리 팀에서 일하게 된 김진솔 씨다. 앞에 나와서 잠깐 인사하세요."


맙소사.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나는 사무실로 들어가던 그 발걸음 그대로 팀장님 옆에 서서 엉거주춤 인사를 했다. 이런 종류의 인사를 하게 될 것 같아서 대충 생각해 둔 멘트가 있었으나, 오는 길에 눈물과 함께 다 흘려버렸는지 머릿속이 텅 비어 있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내가 배정받은 팀은 매일 현장에 나가서 일을 하는 부서이기에 아침마다 '위험 예지 훈련'이라는 것을 했다. 현장에 나가는 시간이 아침 8시이므로, 공지사항 전달 및 위험 예지 훈련을 하는 시간은 그보다 훨씬 앞으로 정해져 있었다. 그래서 그 시간에 모두들 좌우로 도열해서 서 있었던 것이다. 다행히 팀장님은 헐레벌떡 들어온 나를 따뜻하게 맞아주셨고, 나도 일찍 도착하려고 아침부터 서둘렀으나 운전도 서투르고 지리도 잘 몰라 오는 내내 헤맸다며 죄송한 마음을 말씀드렸다.


그때부터 나는 많은 보살핌을 받았다. 팀장님께서는 내 담당 사수였던 과장님에게 우리 집에서 사무실로 오는 지름길을 알려주라고 하셨다. 마침 과장님께서는 인근 동네에 사는 분이시라, 대구시에서 경북 칠곡군으로 넘어갔다가 다시 대구시로 들어오는 지름길을 알려주셨다. 이건 남편도, 내비게이션도 알려주지 않은 길이었다. 그 뒤 신호도, 속도 제한도 없는 그 길로 매일 출퇴근을 하며 나는 스피드 레이서로 거듭났다.

지도에 길을 표시해서 알려주는 것마저 감성적이다. 2018년에 추억의 1998년 그 시절을 느꼈다.


처음에는 운전은 물론 주차도 미숙했기에, 주차에 있어서도 많은 도움을 받았다. 내 차가 사무실에 들어서면 마당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던 분들 중 누군가는 꼭 수신호를 보내 주차를 할 수 있도록 도와주셨다. 핸들을 좌로 두 번, 우로 두 번, 앞으로 나왔다가, 다시 뒤로 넣고, 스톱하는 주먹까지. 대구라는 도시는 폐쇄적이고 외부인에게 곁을 잘 내주지 않는다고 들었는데, 정 많고, 의리 있고, 따뜻한 분들이 많았다.


30명 가까이 되는 남자들 사이에서 나 혼자 여자인 곳. 여자 화장실이 없는 곳. 산 너머에 있는 곳. 뒷마당 텃밭에서 상추와 방울토마토가 자라는 곳. LPG 가스통으로 라면을 끓여 먹고 불고기를 볶아 먹고 냄비밥을 지어먹는 곳. 화장실 바닥 한편에 달린 수도에서 설거지를 하는 곳. 걸어 나가서 커피를 사 먹을 수가 없는 곳. 밤이 되면 2인 1조로 당직을 서며 잠을 자는 곳. 그곳이 대구에서 나의 첫 출근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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