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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딘도 Nov 06. 2023

아재개그, 딱히 싫지 않은데요

일상에 위트 한 스푼

우리 회사에는 아재가 많다. 지역 내에서는 나름 탄탄한 회사인 데다가 공기업도 아니면서 정년이 보장되니 한 번 들어오면 나가는 법이 없다. 게다가 1995년 상인동 가스폭발사고를 계기로 몇 년 간 대규모의 인원을 채용하였는데, 그로부터 30년 가까이 세월이 흘렀으니 그때 다 같이 들어온 파릇파릇한 신입사원들이 지금은 세월에 닳고 농익은 아재가 되어버린 것이다.


그동안 아재 밀도 최상의 회사를 다니면서 자연스레 아재의 특징을 체득했다. 대부분의 아재들은 외벌이였다. 들은 가장이라는 책임감에 늘 어깨가 무다. 그러다가도 재주껏 뒷돈을 찰 궁리를 하거나 핑계 김에 술 한 잔 걸칠 기회를 엿볼 땐 야자 땡땡이를 꿈꾸는 고등학교 남학생 같기도 다.


평소에는 카리스마 넘치는 선임이지만, 추억을 곱씹을 때면 아재들도 청춘으로 돌아간다. 모두가 혈기왕성하던 이십여 년 전 이야기를 할 때면 왁자지껄 웃음이 터진다. 내가 맞네, 네가 맞네 하며 기억을 정정해 나가기도 한다. 란 눈으로 듣고 있는 나를 보며 아재들은 격세지감을 느끼나 보다.


"그땐 그랬다. 니 상상이나 하겠나?"




아재들이 견뎌 온 시간에는 지금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진한 에피소드가 넘쳐난다. 그 세월을 다 보내고 어느덧 자식뻘인 핏덩이들과 '동료'가 되어버린 아재들. 강산이 두 번도 더 변하는 동안 달라져버린 조직문화. 핏덩이들과 발맞춰 걷기 위해 삐그덕거리는 발걸음.


아마 그들에게는 위트 한 스푼이 필요했을 것이다. 핏덩이들과의 어색한 관계에 기름칠을 하기 위한 윤활유가 절실했 것이다. 그리하여 뇌가 단속을 하기도 전에 입은 이미 구수한 아재개그를 뱉어버렸지도 모른다. 나는 아재들의 그런 모습이 밉지 않다.


아재개그는 애써 짜 낸 기름 한 방울이다. 그 마음을 알기에 나는 일단은 웃는다. 끔은 어느 포인트에 웃음버튼눌러야 할지 난처하지만, 나는 언제나 발사 버튼 위에 손을 올리고 이야기를 듣는다. 늘도 발사 준비 완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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