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똑, 거미줄 걷어내러 왔습니다
글 공장 다시 가동합니다
한동안 글을 쉬었다. 글을 쓸수록 빈 수레가 되어가는 느낌이었다. 요란한 꽹과리 소리만 내는 내 글이 싫었다. 퍼올릴 물도 없으면서 바닥을 긁는 내가 못마땅했다. 뭐라도 써내기 위해 마음의 우물에 두레박을 내려 휘젓는 시간은 가족들에게 환영받지 못했다. 글쓰기는 돈도 되지 않았고, 자랑할만한 일도 아니었으며, 가족들을 내버려 두는 일이었다. 나만 놓으면 끝이 나는 일. 잡아 쓰기는 그토록 어려웠지만 놓는 것은 쉬웠다. 잘 가. 안녕. 안 쓰면 그만이었다.
문득 쓰고 싶은 말들이 차오를 때가 있었다. 삶을 바라보는 시선을 전환하는 깨달음을 얻었을 때와 너무 괴로운 시간을 보낼 때 특히 그랬다. 좋은 생각이 떠올랐을 때는 꼭 남겨두고 싶었지만 한 번 굳게 닫힌 노트북은 쉽게 열리지 않았다. 정말 잘 풀어내고 싶은 마음에 '내일로, 또 내일로' 미루다가 하고 싶은 말들이 사라져 버리곤 했다. 너무 괴로울 때는 상황과 사람을 흉보게 될 것을 주저하며 마음속으로 말을 삼키며 삭혔다. 나를 괴로움의 가장 끝까지 밀어 넣을 수 있는 사람은 남편이었기에, 주로 그 대상은 남편이 될 것이었다.
'그런데 너의 글, 남편이 봐도 괜찮아?'
그는 아무런 관심이 없어,라고 답하면서도 글은 영원히 남는다는 생각이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언젠가 보게 될 수도 있겠지. 그렇다면 그는 괴로울 거야. 얼굴이 화끈거리겠지. 억울하기도 할 거야. 나에게 따질까? 그는 그런 성정의 사람도 아니었다. 오히려 기분 나쁜 마음을 충분히 삭혀 꼬린내가 나도록 발효시켜 두었다가, 내가 먼저 그에게 마음이 상한 어느 날 그것을 포환처럼 둥그렇게 빚어 퍽- 하고 던질게 분명했다. 내가 쓴 글이 나에게 냄새나는 똥으로 돌아온다니. 과히 유쾌한 일은 아니었다.
말하자면 나는 글을 쉬는 동안 장르전환을 시도했던 셈이다. 당장이라도 쓴다면 나는 또 폭탄의 재료들을 만들어 둘 것이 분명해 보였다. 그렇다고 갑자기 희망을 노래하자니, 그것도 분명히 '나'이지만, 다음 앨범의 컨셉이 갑자기 확 바뀌는 바람에 어색함을 감추지 못하는 활동 초기의 아이돌이 될 것만 같았다.
구구절절한 변명 뒤에 숨어서, 아무튼 쉬었다. 쉬는 동안에도 계속 나의 '원씽'은 글쓰기였다. 내가 좋아하고, 잘하고 싶은 것을 떠올리면 늘 가장 먼저, 혹은 유일하게 머릿속에 나타났다.
그래서, 다시 쓰기로 했다. 오늘은 내 브런치 공간에 켜켜이 쌓인 먼지를 털고, 구석구석 끼어있는 거미줄을 걷어내러 왔다. 아직 어둡고 음침하다. 부지런히 닦아야지. 예쁜 소품들도 갖다 둬야지. 따뜻하고 온기가 있고 윤이 나는 공간으로 만들어야지. 매일. 조금씩. 꾸준히. 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