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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딘도 Nov 05. 2023

굳이 새벽에 글을 쓰는 이유

써도 그만 안 써도 그만

원래는 밤에 글을 썼다. 그러면 남편의 지탄을 받았다. 내 딴에는 같이 들어가서 재우기만 하면 되도록 모든 일을 끝마치고는 가장 쉬운 '같이 자기' 단계를 일임한 것인데, 그것이 남편 눈에는 엄마로서의 의무를 저버린 일이었나 보다.


가정의 평화를 위해 밤에 글 쓰는 것을 관두자 아예 글을 쓸 시간이 없었다. 일어나서는 출근하기 바쁘고, 퇴근해서는 가정을 돌보기 바빴다. 내 글은 언제나 우선순위에서 밀렸다. 노트북뽀얗게 먼지가 쌓여가는 시간들이었다.


돌이켜보면 글을 써야 할 이유는 단 하나도 없었다. 그저 내가 좋아서 썼기 때문이다. 그런 얕은 이유 글쓰기가 내 삶에 뿌리내리기 어려웠다. 모종삽으로 툭 파내서 쏙 버리면 그만이었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가장 잘하고 싶은 일이 글쓰기였다. 나만 놓아버리면 끝나는 이 관계를 도저히 놓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체질을 바꿨다. 어두운 밤을 즐기는 올빼미에서 일찍 일어나는 로 신분을 바꾸고 벌레를 잡기 시작했다. 


새벽에 벌레를 잡는 일결코 쉽지 않다. 찍 일어나는 것이 쉽지 않을뿐더러,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하루의 첫 시간에는 글감을 찾기가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오히려 고요한 새벽을 지나 루의 문을 열면 글감이 쏟아다. 


자지껄한 시간을 겪으써 내려가고 싶은 말들이 움찔거리며 솟아났다. 애석하게도 그러한 일들은 잡아채 써 내려가기 전에 날아가버. 쓰고 싶을 때마다 대놓고 백지에다가 생각을 써 내려가면 좋으련만, 그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사원 신분의 한계다.




그래서 며칠 전부터 새벽루틴에 글쓰기를 추가하였다. 새벽은 덤으로 주어진 시간이다. 글쓰기를 맘껏 짝사랑하기에 딱 알맞다. 안 써도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 쓴다고 뭐라고 하는 사람도 없다. 써도 그만, 안 써도 그만. 그래서 나에겐 이 시간이 딱이다.


글감이 손에 잡히지 않더라도 뭐라도 끄적이보면 글이 완성다. 밤새 이불속에서 웅크리고 있던 말들을 풀어낼 때는 일필휘지로 써 내려가기도 한다. 출근 시간이 곧 마감 시간이라 장황하게 쓸 겨를이 없어 마무리도 담백하다. 엇보다 오늘처럼  좀 써보겠다고 늦게까지 끙끙댈 일이 없어 하루가 홀가분하다.


그래서 나는 새벽에 글을 쓴다. 아무도 내게 그러라고 한 적은 없지만, 굳이 새벽에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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