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오늘 엉엉 울다 잠들었다. 처음에는 떼를 쓰는 울음인 줄 알았다. 오랜만에 아빠가 자기 전에 아이를 데리고 책을 읽어 준 모양이다. 저녁 먹은 그릇들을 식기세척기에 넣으며 주방 마감을 하고 있는데 책 읽어주는 소리가 들렸다. 오늘 아이는 오랜만에 보는 <나도 안아줘>라는 책에 꽂힌 것 같았다. 반복, 또 반복. 여러 번 반복해서 읽어 줄 것을 요청하는 소리가 들렸다.
주방 마감을 하고 샤워까지 하고 나왔는데 이번에는 남편과 아이가 실랑이하는 소리가 들렸다. 남편은 아이에게 '한 번만 더 읽어주면 자기로 했잖아.'라는 말을 하고 있었고, 아이는 그래도 한 번만 더 읽어달라며 성화였다. 자칫 잘못했다가는 남편이 급발진하며 무서운 목소리로 화를 낼 수 있는 상황이라는 생각에 얼른 개입했다. 우선 펑펑 울면서 간청하고 있는 아이를 진정시키기 위해 다른 방으로 데려갔다.
공간이 주는 힘인지, 언젠가부터 우리집 가장 끝 방에 들어오면 아이는 울음을 그친다. 이곳이 감정을 조절하고 대화를 통해 조율이 이루어지는 공간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모양이다. 잠시 울음을 그쳤던 아이가 다시 뒤꿈치로 바닥에 방망이질을 하며 떼를 쓰기에, 오랜만에 아이를 단호하게 잡아서 안았다. 이내 진정하는 아이. 울음이 그칠 때까지 기다려줬다가 대화를 시도했다.
"소이가 우는 이유는 책을 한 번 더 읽고 싶어서 그런 거지?"
"응"
"그런데 엄마가 들어보니까, 아빠랑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읽고 자기로 했다던데, 맞아?"
"응"
"그래도 한 번 더 읽고 싶은 거니까, 엄마가 아빠한테 이야기해 줄게. 대신 울음을 그쳐야 돼."
"응"
"그리고 한 번만 더 읽으면 잔다는 약속을 정말 지켜야 돼. 알았지?"
내 뜻이 전달이 되었는지 울음을 그치고 새끼손가락을 걸고 약속하며 다시 안방으로 들어갔다. 다시 책을 읽었다. 약속대로 책을 다 읽었을 때 더 읽어달라고 떼를 쓰지는 않았지만, 아이는 자려고 누우며 계속 펑펑 울었다. 남편이 책의 내용이 슬퍼서 그런 것 같다는 이야기를 넌지시 해주었다.
<나도 안아줘>의 내용은 이렇다. 이 책은 가시가 돋친 고슴도치가 주인공이다. 숲속 친구들은 서로 안아주면서 친하게 지낸다. 그런데 가시가 돋친 고슴도치는 아무도 안아주지 않는다. 가시를 없애거나 감춰보려고 노력하지만 소용이 없다. 그렇게 외로움에 괴로워하는 와중에 고슴도치는 '아르마딜로'라는 친구를 만난다. 아르마딜로는 고슴도치의 고민을 듣고 이야기한다.
"꼭 안아야 해? 뽀뽀를 하면 되잖아!"
아르마딜로는 고슴도치의 가시를 없애주는 대신, 부드러운 입술을 발견해 주었다. 아르마딜로는 숲속 친구들에게 다시 고슴도치를 데려간다.
"너희가 날 안아 주지 않아서 슬펐어."
"우리도 널 안아 주고 싶어. 하지만 너는 가시가 너무 따갑잖아."
양쪽의 입장을 다 들어본 아르마딜로는 "그럼 뽀뽀를 하면 돼. 고슴도치와 뽀뽀하면 따갑지 않아."라며 친구들이 고슴도치를 받아들일 수 있도록 도와준다. 친구들은 이제 너도나도 고슴도치에게 뽀뽀를 해달라고 한다. 아르마딜로 덕분에 고슴도치는 숲속 친구들에게 사랑을 받으며 다시 어울릴 수 있게 된다.
책을 다 읽은 아이는 '나는 고슴도치야.'라는 말을 하며 펑펑 울었다. 점점 울음이 심상치 않게 느껴졌고, 가슴이 철렁했다. 어린이집에서 속상한 일이 있었던 걸까. 상처받은 일이 있었던 걸까. 친구들과 잘 어울리며 즐겁게 생활하는 줄 알았는데 마음 아픈 일이 있었던 걸까.
얼마 전 싫어하는 바나나는 'No'라며 엄지를 내리는 모습이 귀여워서 '엄마는? 아빠는?' 하며 유치한 질문을 했었다. 'Yes!'라는 대답에 기분이 좋아져 '소이는?'이라고 물으니 'No'라며 엄지를 내리는 모습에 마음이 쿵 내려앉는 충격을 받았었다. 왜 그러는지 원인을 제대로 분석하지 못하고 유야무야 넘어갔었는데, 오늘 또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이다.
올해 초 다니던 어린이집이 폐원을 하게 되어 갑작스럽게 어린이집을 옮겼다. 아직 4살이지만 이미 형성된 무리 안으로 아이가 들어가게 되니 걱정이 있었는데, 다행히 어린이집에서 신입 원아들만 따로 반을 구성해 주셨다. 덕분에 서서히 함께 친해졌고, 6월에는 다니던 어린이집에서 친했던 친구까지 함께 다니게 되어 더욱 안심했었다.
그런데 오늘 아이의 서러운 울음을 보니 별의별 생각이 다 밀려왔다. 일하는 엄마라는 이유로 제일 먼저 등원하고 저녁 늦게 하원하느라 통합 보육 시간이 길었던 것은 사실이다. 아무래도 소외감을 느꼈던 것일까. 걱정이 많은 엄마는 자꾸만 가슴이 미어진다.
아니면 혹시 내 탓일까. 아이를 임신하고 기르는 긴 세월 동안 나의 정신이 온전치 못 했던 것이 사실이다. 화가 나면 이혼하자며 소리를 지르는 남편과 사사건건 내 탓이 되어버리는 집안 분위기 탓에 시도 때도 없이 눈물이 흘러서 흐르는 눈물을 연신 닦아내며 살림을 챙기고 아이를 돌봤었다. 아이를 맡기고 잠깐동안 밖에 나가 바람을 쐬며 정신을 다잡아 볼 여유도 없었다. 친정은 멀었고, 시댁은 소원했다.
지나 온 터널 속 어둠이 떠올라 가슴이 아려왔다. 말 못 하는 아기였지만, 웃으며 잘 크고 있지만, 제일 가까이에서 내 슬픔을 받아냈을 우리 아기. 다른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내 보물, 우리 아기. 엄마는 네가 온몸에 가시가 잔뜩 돋친 고슴도치가 된다고 해도 언제나 너를 힘껏 안아줄거야. 아무도 안아주지 않아도 엄마는 안아줄거야. 피를 철철 흘려도 괜찮아. 엄마니까. 넌 나의 소중한 아가니까. 하나뿐인 내 딸이니까.
자신을 사랑하고, 마음이 건강한 아이로 키우고 싶었다. 내가 그렇지 못한 것 같아, 그것이 거의 유일한 바람이었다. 그런데 오늘 아이의 눈물을 보며 마음이 무거워진다. 지나간 세월을 되돌릴 수는 없지만, 앞으로 더 긴 세월 동안 마음이 아프지 않은 엄마로 곁에 있어준다면, 어쩌면 달라질 수 있지 않을까? 울음이 실린 숨으로 잠든 아이의 얼굴을 보며, 자꾸만 흩어지려는 희망을 그러모아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