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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딘도 Nov 22. 2023

공짜 검진에 5,500원을 내다니

어리바리 건강검진

워낙 건강해서 병원에 갈 일이 잘 없다. 그래도 2년에 한 번은 병원에 가서 이것저것 검사를 받는다. 나라에서 해주는 사무직 공단검진을 받기 위해서다.


2013년부터 사무직으로 일했는데, 첫 검진은 마 2015년이었던 것 같다. 서울에서 일할 때였는데, 회사에서 걸어서 갈 수 있는 지정 검진기관에서 동기와 함께 검진을 받고 근처 카페에서 간단히 요기도 하고 들어왔던 추억이 있다.


그 뒤로 같은 기관에서 2017년에 검진을 하고, 대구로 내려와서는 2019년에 건강검진 차량이 회사에 와서 간편하게 검진을 했다. 2021년에는 육아휴직을 하느라 검진대상에서 제외가 되었다.


그러고 보니 이번 검진은 4년 만이다. 편하게 회사에서 검진을 받았던 때와는 달리 이제는 내가 병원으로 가야 했다. 회사에서 지정해 준 대학병원 중 하나를 골라 전화를 하니 공단검진은 예약할 필요가 없이 당일 방문하면 된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아침을 굶고 병원에 갔다.




병원은 정말 컸다. 전날 검색을 통해 건강증진센터의 위치를 알아두었었다. 가서 건강검진을 받으러 왔다고 하니 이곳은 종합검진을 하는 곳이고, 공단에서 실시하는 일반검진은 다른 건물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머쓱한 얼굴로 문을 열고 나왔다.

안내받은 대로 찾아가 보니 괄호 안에 작게 '공단검진'이라고 쓰인 화살표를 찾을 수 있었다. 화살표를 따라 굴다리를 건너니 깨끗하고 크고 화려한 병원 건물 밖을 나가게 되었다. 이어지는 길을 계속 걷다 보니 아담하고 세월이 묻어나는 건물이 나왔다.

검진을 받으러 왔다고 말씀드리니 '고객님, 마스크 좀 착용해 주시겠어요?'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안 그래도 신경이 쓰이고 있던 차였다. 병원 본관을 헤매고 다닐 때 다들 마스크를 쓰고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었다. 공단검진을 하는 곳으로 가면 혹시 마스크가 필요 없지 않을까 하는 일말의 희망이 단박에 무너졌다.

거금 2,000원을 주고 마스크를 샀다. 마스크는 집에 널렸는데...

병원에 어울리는 예의를 갖추고 드디어 검진을 시작했다. 어차피 공단검진이니 별 것 없이 검진은 끝이 났다. 구강검진과 자궁경부암 검진도 함께 진행했는데, 그건 다시 본관 1층과 2층에서 해당 과를 찾아가야 했다. 표지판의 숫자와 화살표를 잘 보고 찾아갔지만 미로 같은 병원에서 몇 번이나 길을 잃었다. 젊은이인 나도 이런데, 어르신들은 오죽할까 싶었다.


산부인과에서의 고 긴 대기시간 뒤에 이루어진 자궁경부암 검사를 끝으로 '간단한' 공단검진이 끝이 났다. 사 자체는 간단했지만 넓은 병원을 헤매느라 시간이 오래 걸렸다. 평소에는 5,000보를 넘기 힘든 걸음수가 따로 시간을 내어 산책을 한 것도 아닌데 8,000보를 넘겼다.

주차장에서 차를 꺼내 나오는데 주차요금 3,500원이 나왔다. 검사를 마치고 분명 차량번호를 불러드렸는데 반영이 제대로 되지 않은 것일까. 내 뒤에 벌써  여러 대가 길게 줄을 서 있기에 일단 결제를 하고 나왔다. 스크에 주차요금까지. 공짜 검진에 5,500원이나 들었다.

아름다운 연주 감사합니다. 끝까지 듣고 싶었어요.


사실 나는 5,500원을 내도 아쉬울 없는, 나오는 길에 우연히 야외 음악회를 보게 되었기 때문이다. 평소 병원에서 들을 수 없는 활기찬 브라스 소리가 귀를 때려 고개를 돌려보니 야외 음악회를 하고 있었다. 그냥 가기가 너무 아쉬워서 한 곡을 감상했다. 길거리에서 갑자기 만난 귀호강에 얼마나 행복했는지 모른다.

맑은 가을하늘에 잘 어울리던 크리스마스 트리

직업환경의학과 데스크에서 퇴짜를 맞고 마스크를 사러 갔던 길이 생각났다. 건물 1층에 있는 편의점에서 마스크를 구매했는데 문 옆에 바로 있는 엘리베이터를 보지 못하고 왔던 길을 되돌아 다녀왔었다. 그 바람에 시간이 오래 걸지만, 덕분에 예쁜 트리를 볼 수 있었.




함께 글을 쓰는 글벗들이 모인 단톡방에서 어느 작가님께서 해주신 말씀이 떠올랐다.

예상치 못한 일들을 만나는 것이 인생인 듯합니다.

좋은 의도가 좋은 결과를 내는 것이 아니듯 안 좋은 일이 꼭 안 좋은 일인 것만은 아니더라고요.

하나씩 마음도 몸도 해결이 되실 겁니다.


인생사 새옹지마.


마스크를 사러 간 덕분에 볼 수 있었던 트리여기저기 헤매느라 오래 걸린 덕분에 들을 수 있었던 음악회. 안 좋은 일이 꼭 안 좋은 일인 것만은 아닌, 그런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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