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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딘도 Oct 31. 2023

우리는 언제나 더 나아질 수 있어

어른이지만 계속 성장하고 있습니다

대학생 때 나는 생활비를 벌기 위해 과외를 정말 많이 했다. 서울에서 과외를 구했다면 돈도 많이 받고 하숙집과 거리도 훨씬 가까웠을 텐데, 나는 주말마다 고향으로 내려가 하루종일 과외수업을 하고 올라오곤 했다.


고향에는 대학교 합격 직후부터 가르쳐 온 학생들이 여럿 있었다. 나는 그들과의 의리를 저버리고 싶지 않았다. 개천에서도 용이 날 수 있다는 사실을 몸소 보여주고 싶은 사명감 내지 자랑스러움도 있었다. 여러 학생들 중 특별 기억 남는 아이가 한 명 있다. 영어 까막눈이던 그 아이는 설리번 선생님이 헬렌켈러를 가르치 애정을 쏟았던 나의 첫 제자였다.




대학시절 나는 노래패 활동을 했었다. 지금은 '노래패'가 어떤 정신 위에 세워졌 알지만, 그때는 그런 것보다  노래실력에 더 관심이 많았다. 나는 어릴 때부터 노래를, 음악을, 너무 잘하고 싶었다. 대학교 1학년 1학기를 다니고 나서 아빠에게 휴학을 하고 작곡을 공부해보고 싶다고 말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아빠의 대답은 작곡 말고 행정고시나 준비해 보라는 것이었다. 내가 벌어서 써야 하는 상황이라, 수험생활에 들어가는 비용을 감당하지 못할 것 같아 나는 두 가지 길을 모두 포기했다. 


어느 날 노래패 공연을 앞두고, 노래가 잘 되지 않아 기분이 울적했다. 과외수업을 하는데 눈치 빠른 헬렌켈러가 나에게 물었다.


"선생님, 무슨 안 좋은 일 있으세요?"


이 녀석, 덩치와 달리 꽤 섬세하다. 요즘 유행하는 질문인 '속상해서 빵을 샀어.'를 물어보면 단박에 '왜 속상해요?'라고 말했을 것이다. 나는 공연서 노래를 정말 잘하고 싶은데, 실력이 늘지 않아 속상하다고 말했다. 이제 스무 살이 되었으니, 내 노래실력은 이게 끝일 텐데,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아, 노래실력이 걱정이시군요. 그렇지만 선생님은 지금 20살이잖아요. 40살이 되면 더 잘하겠네요!"


아이는 소프라노 조수미를 예로 들었다. 보세요, 나이를 먹을수록 노래를 더 잘하잖아요. 당연하다는 듯 말하는 아이의 눈빛에 띵- 머리가 울렸다. 이제껏 알지 못했던 새로운 세상이 열린 기분이었다. 나는 아이에게 고작 영어에 눈 뜨게 해 줬을 뿐이지만, 아이는 내가 한계 너머를 볼 수 있도록 해준 것이다.

  



녀석의 말대로 나는 점점 더 노래를 잘하게 되었다. 당시 걱정하던 공연을 무사히 마쳤음은 물론이고, 이후 교내 아카펠라 대회에서 입상을 하기도 했다. 직장을 다닐 때는 전통과 실력이 있는 합창단 <음악이 있는 마을> 합격하여 분에 넘치는 경험도 많이 했다. 


각종 행사에 참여하여 유명한 연주자들과 협연도 하고, 곡 중 연기 부분을 맡아 앞자리에 앉은 할머님들이 눈물을 훔치게 만드는 무대 위의 희열도 느껴보았다. 워낙 실력 있는 합창단이라 단독 공연으로 예술의 전당 무대에서도 노래했다. 한계라는 뚜껑을 열자 우물 안으로 환한 빛이 쏟아져 들어왔다. 나는 언제든 우물 밖으로 나갈 수 있는 사람이었다.


나는 요즘도 '이건 내 영역이 아니야. 이건 안돼.'라고 한계의 뚜껑이 스르르 닫히려 할 때면, 스무 살의 나에게 당연하다는 듯 40살에는 더 잘할 거라고 격려해 주었던 녀석의 말을 떠올린다. 맞다. 네 말이 맞다. 요리 똥손인 내가 어제는 피자 만드는 이야기로 조회 수 2,000을 찍었으니, 네 말이 정말 맞다. 하루의 문을 여는 이 새벽, 다시 한번 되새겨본다.


한계란 없다!

한 계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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