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거리감이 중요하다. 알맞은 거리를 알고 그것을 지키는 것은 인간관계에 있어서 상당히 중요하고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알맞은' 거리에 대해 양측의 입장이 완전히 일치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누군가는 서운하고, 누군가는 부담스러워하며, 때로는 오해의 칼로 다리가 완전히 끊어지면서, 알맞은 거리를 찾아나간다.
누군가는 나를 그 나름의 이유로 싫어하겠고, 나는 누군가를 내 나름의 이유로 싫어한다. 어떤 이는 누군가가 나를 싫어한다는 사실을 전해준다. 그러한 정보는 차라리 모를 때가 행복하다. 알고 나면 지옥이 된다. 내가 누군가를 싫어한다는 사실은 어떤 이를 통해 또 전달되겠지. 굳이 그러지 않기를 바라지만 말에는 발이 달렸으니, 입 밖으로 나간 순간 완전히 장담할 수는 없게 된다.
복직을 하며 알게 된 후배가 있다. 신입 시절이 떠오르기도 하고, 나도 혼자였기에 조금씩 가까워졌었다. 후배는 내가 편해졌는지 가끔씩 건방진 느낌을 주었다. 나도 선배들에게 그리 깍듯하지 않으면서, 후배가 건방지다고 생각하는 나 자신이 꼰대 같아서 싫었다. 그 마음을 꼬집어 말하며 지적하자니 정말 꼰대가 되는 것 같고, 말하지 않고 있자니 그 생각이 사라지지 않아 나는 결국 살짝 거리를 두게 되었다. 더 많이 가까워지기 어렵겠다는 마음에 내 나름대로는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기로 마음을 먹었던 것이다.
나의 거리 두기가 미숙했던 탓인지, 후배는 내 의도와는 다르게 아주 먼 곳으로 사라졌다. 나는 그저 적당한 거리에서 가볍게 마음을 나누는 일반적인 동료로 남고 싶었는데, 후배에게는 그것이 상처가 되었나 보다. 나도 나름대로 불편함을 풀어보려고 자리를 마련하기도 했지만, 오히려 더 어긋나기만 했다. 그 이후로 나는 아무렇지도 않은 '남'이 되기를 바랐는데, 후배는 일 년째 나를 헤어진 연인처럼 대한다. 그리고 나는 그 사실이 매우 불편하다.
노골적으로 다른 사람과 나를 다르게 대하는 후배를 볼 때면 차라리 다시 사귀는 편이 낫겠다는 생각이 들다가도, 헤어진 연인은 같은 이유로 다시 헤어진다는 말을 곱씹어 보며 한 발 뒤로 물러나게 된다. 나는 그저 편안한 거리에 있고 싶었는데, 내가 먼저 인사를 건네도 눈도 마주치지 않은 채 고개만 까닥하는 후배가 아주 불편해졌다. 싫은 소리를 하지 않겠다는 마음이 이기적인 결정을 내리게 되어 결국 여기까지 오게 된 걸까.
사람들은 사이드 미러에 비친 사물처럼 보이는 것보다 가까이에 있다. 우리는 이 사실을 종종 잊고 살아간다. 나의 말과 표정과 행동이 다른 사람에게 별로 영향을 주지 않는 것 같아 보여도, 타인은 보이는 것보다 가까이에 있다. 이 사실을 나부터 되새겨본다. (2023.05.18)
그리고 벌써 5개월이 흘렀다. 그리고 우리는 지금 다시 만난다. 허탈한가. 그럴 수 있다. 남자친구 욕을 실컷 하기에 연신 맞장구를 쳐주며, '야, 헤어져 헤어져. 똥차 가면 벤츠 온다더라!' 해놨더니 다음날 멋쩍은 얼굴로 '나, 오빠랑 화해했어.' 하는 친구의 얼굴이 떠오르는가. 그럴 수 있다.
왜 우리는 다시 만날까. 아마도 우리는 적정거리를 찾은 것 같다. 아니다. 그에 앞서 내 마음이 편해진 것이 결정적인 이유일 것이다. 7월부터 시작한 새벽기상이 나에겐 전환점이었다. 삶을 재정비하기 위해 짐을 다시 꾸렸다. 너무나 사랑하던 글쓰기를 잠시 내려놓고, 평소 멀리하던 운동을 잡아넣었다. 그리고 하루의 시작을 많이 앞당겼다. 대신 셔터를 빨리 내렸다. 워낙 일찍 잠자리에 들었기에 수면 시간은 WHO에서 칭찬상을 줘야 할 만큼 충분했다. 삶의 무게가 가벼워지자 비로소 고개를 들어 주위를 살펴볼 여유가 생겼다.
삶이 쉬워진 것이 아니라, 내가 강해졌다. 그러자 여유가 생겼다. 품어 줄 여유. 있는 모습 그대로를 마음속으로 데려올 여유. 아침마다 보는 얼굴이라 가볍게 분위기를 바꿀 기회는 언제나 찾아왔다. 어느 날, 나름의 결심에 따라 아무렇지 않은 척 살짝 표현하여 오고 간 교감이 얼음땡의 신호였던 것 같다. 그 뒤로 우리는 서서히 다시 편해졌고, 적당한 거리에서 '안전 운전'하고 있다.
사람마다 적정거리는 모두 다르다. 평생에 걸쳐 그것을 찾아가는 것이 서로 부대끼며 살아가는 인생살이의 숙명이다. 나와 함께 달리고 있는 사람들과의 적정거리를 가늠해 보자. 조율이 필요하다면 깜박이를 켜고 천천히 움직여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