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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딘도 Nov 26. 2023

하릴없이 주말이 간다

어디 저장해 둔 시간 없나요?

주말이 간다. 하릴없이 주말이 간다. 시계는 똑딱똑딱 쉬지도 않고 주말이 간다. 아픈 몸을 돌봐주고자 새벽에도 잤더니 짧고도 부질없이 주말이 간다.


몸이 아프니 행동이 굼뜨다. 주말에는 부지런히 집을 돌보고 해야 제 맛인데, 주말이 지나고도 어수선한 집을 보니 못내 아쉽다. 깨끗하고 조용한 집에서 책 읽는 것이 주말의 낙이거늘. 하릴없이 한 것 없이 주말이 간다.


한 것이 없기는커녕 오히려 꽉 찬 일정이었다. 어제는 쇼핑에, 지인들과의 연말 모임에, 오늘은 주일예배에, 끝나고는 순모임에, 아이와 약속한 아쿠아리움 나들이에, 시댁에서 김장김치 받아오는 일까지.


그래도 마음과 공간이 정리가 안 된 채로 주말의 문을 닫으려니 못내 아쉽다. 똑딱똑딱 속절없이 시간이 간다. 주말은 벌써 저만치 달려가 뒷모습만 겨우 보인다. 잡아 세울 겨를도 없이 주말이 간다.


동지달 기나긴 밤을 한 허리를 버혀 내여
춘풍 니불 아래 서리서리 너헛다가
어론 님 오신 날 밤이여든 구뷔구뷔 펴리라


시간이 아쉬울 때는 언제나 황진이가 생각난다. 나도 한 허리 버혀 내어 이불속에 넣어둔 시간이 있다면 달콤한 주말을 늘리기 위해 구뷔구뷔 펴내고 싶다.


아인슈타인 박사님 말씀이 맞았다. 시간은 상대적으로 흐른다더니, 주말에는 왜 이렇게 시간이 쏜살같이 흐르는지 모르겠다. 우리 집 꼬맹이도 벌써 시간의 상대성을 깨우쳤나 보다.


"오늘 자면, 내일 어린이집 가요?"

"응. 내일 월요일이잖아."

"벌써 월요일이네!"




이제 그만 주말을 놓아주어야지. 잡는다고 잡힐 주말이 아닐 테니. 어 글을 끝맺고 주말을 보내주어야지.  번도 돌아보지 않고 차갑게 떠나 주말 쿨하게 인사를 건네야. 


' 가. 음 주에 보자.'


뚜벅뚜벅 성큼성큼 주말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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