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서째날
오미크론이 내 몸에 서식하기 시작한지 5일째. 나는 미각과 후각을 잃었다.
아침에 일어나 양치를하고 그 강한 리스테린으로 구강을 세척해도 매운맛이 더이상 느껴지지 않는다. 그리고 치약 고유의 향도 느껴지지가 않았다.
점심으로 계란후라이를하고 김치에 김으로 배를 채우는데, 도저히 맛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나마 내가 시각적으로 보여지는 음식을 통해 내가 그동안 알고있었던 맛을 기억하고 있어서인지 약간의 상상의 맛이 느껴지는 느낌이 있긴 했지만 그것도 잠시 그저 내가 입으로 음식을 먹고 있구나 정도밖에 느껴지질 않았다.
세상에 살아가면서 후각과 미각을 잃어버린 경험은 몇번이나 해볼까?
그동안 난 지독한 독감도 심하게 겪어보질 않았기 때문에 내 마지막으로 맛을 느낄 수 없었던 적은 초등학교시절 감기에 걸렸을 때가 가장 먼저 생각이난다.
그때는 코감기가 심하게 걸려 자연스럽게 아무맛도 느껴지지가 않았는데 이번에는 코감기조차 걸리지 않았는데도 이런 증상을 보이는 걸 보니 오미크론 정말 쉽게 생각해서는 안 될 바이러스가 맞는 것 같다.
나는 다시 오미크론에 대하여 검색을하고 정보를 찾기 시작했다. 오미크론이 후각과 미각을 담당하는 중추를 공격해서 인체가 일시적으로 맛과 냄새를 맡지 못한다고 하는데 그래도 그 신경까지는 건드리지 않아서 영구적으로는 이어지지 않을거라는 희망적인 기사를 보았다.
해외에서는 길게는 3개월도 넘게 가기도하고 짧게는 3일에서 보통 2~3주일정도 느낄 수 없다고 한다. 나는 얼마나 느낄 수 없을까? 그래도 식욕이 떨어지지는 않고 계속 배가 고픈걸보니 내 입맛까지는 가져가지 않았나보다. 그런데 먹어도 맛을 못느끼는 고통이란 정말 슬픈일이다.
저녁에는 500m가 떨어진 곳에서도 냄새를 바로 맡을 수 있는 라면을 끓였는데 내가 그저 밀가루를 끓이는 것인지 매운 라면 스프를 넣어도 그 냄새 조차도 나를 유혹하진 못했다. 라면을 먹으면서도 왠지 고무를 씹는것 같은 느낌만 받았다. 그런데 매운맛은 제대로 느낄 수 있었다.
혀에는 미각유듀라는 자그마한 세포들이 존재하는데 이 세포들이 섬세한 맛을 느낄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다. 단맛, 쓴맛, 짠맛, 신맛 이렇게 4가지의 맛을 혀에서 느끼는데 떫은 맛과 매운 맛은 혀의 압점과 통점으로 느끼기 때문에 미각으로 여겨지지 않는다.
그래서 내가 매운 라면을 먹었을 때도 그 매운맛을 느낄 수 있었던 것은 혀의 통점에서 통증으로 느껴지기 때문이었다. 항상 당연하게만 느껴왔던 일상의 소중함을 다시한번 생각하게 하는 순간들 속에 살고있는 요즘이다.
의식주. 인간 생활의 삼대 요소로 많이 들어봤을 것이다. 옷과 음식과 집을 통틀어 말하는 의식주. 매일 편안한 옷으로 밖을 나갈 수 없는 집에서 음식을 먹고 있는데 의식주 중에 2가지가 통제되고 있는 현실이다. 집은 있으나 밖을 나갈 수 없고 음식은 있으나 맛을 느낄 수 없다.
오미크론은 발열과 중증도로 가는 증상들이 많지는 않다고 들었는데, 내가 아는 한 이 이상의 증상들은 이제 없을 것 같다. 정말 신기하게 그동안 사람들이 겪어왔던 오미크론의 증상들을 차례대로 내가 그대로 겪고 있다. 다만 그 회복기에 사람마다 차이가 있는데 부디 미각이 빨리 돌아왔으면 좋겠다.
배고파도 맛을 느끼지 못해서 안먹게되는 상황이다. 무슨 맛이 느껴져야 과자나 젤리라도 먹으면서 군것질을 할텐데 이제 먹는게 귀찮아지는 단계에 왔다. 오늘로 오미크론 확진자도 20만명이 넘어선다는 뉴스를 접했다. 과연 이 바이러스의 정점은 어디이고 언제 고개를 숙일 수 있을까?
그만하자. 여기서 끝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