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루베리맛 수제 초코파이(1)
슬퍼지는 새벽, 웃기지도 않은 소설을 썼지(4)
그 소설의 제목은 『제리와 몰리와 샘』이었다. 진영이 다시 레이먼드 카버의 소설을 펼치게 된 것은 전날 소설 쓰기 특강 강사가 무심코 던진 말 한마디 때문이었다. 진영이 강사에게 소설 쓰기에 대한 말도 안 되는 질문을 하자 강사가 물었다.
“그렇다면 당신이 좋아한다는 그 소설가가 누구요?”
“레이먼드 카버요.”
“음, 그 사람은 상당히 수준 높은 소설가인데요.”
강사의 그 말이 진영의 귀에는 '음, 당신은 상당히 수준 높은 독자인데요'라고 번역되어 들렸다.
‘음음...역시 나는...’
진영은 젠 체를 하고 싶었다. 잘나도 잘난 척을 했다간 큰 코 다치는 이 망할 놈의 세상에선 겸손한 척 위선을 떨어야만 살아남는다. 그래서 겸손한 사람일수록 진영은 의심의 그물을 던지곤 했다.
사무실 책꽂이에 있던 레이먼드 카버 단편소설집을 꺼내 아무 곳을 펼쳤다. 『제리와 몰리와 샘』이 시작되는 페이지였다. 1페이지를 다 읽었지만 제리와 몰리와 샘은 나오지 않았다.
영어를 정말 못하는 진영은 영어로 된 것은 무엇이든 외우는 것이 너무 힘들었다. 특히 소설 속 등장인물 이름 외기가 안돼서 소설을 이해하는 게 힘들 정도였다. 2페이지, 3페이지를 넘겨도 제리와 몰리와 샘은 등장하지 않았다. 5페이지까지 읽었다. 진영의 독서를 방해하는 치명적인 문장 하나 때문에 다음 페이지로 넘어갈 수가 없었다.
『샌디! 베티와 앨릭스와 메리! 질! 그리고 그 망할 개, 수지!』
진영은 난감했다.
‘이들이 다 누구지?’
등장인물 이름이 하나도 생각나지 않았다.
'샌디가 누구였더라? 아, 베티가 한 번이라도 언급되었었나? 메리! 질! 이라니?'
수지는 기억이 겨우 났다. ‘수지’가 사람인 줄 알았는데 개 이름이었기에 그나마 기억할 수 있었다.
진영은 다시 첫 페이지로 가서 제목을 노려보았다. 『제리와 몰리와 샘』이었다.
"제리, 몰리, 샘, 제리, 몰리, 샘..."
진영은 목소리를 낮추어 영어 단어 외우듯 제목을 외웠다. 이 세 사람을 포함하여 이 단편소설에는 최소 9명이 등장하는 셈이다. 200자 원고지 40매가량 되어 보이는 소설에서 등장인물이 9명이라는 건 독자에게 못할 짓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6개의 이름이 나열된 문장 바로 다음 문장은 이거였다.
『이것이 앨이 처한 상황이었다.』
‘이런 젠장, 앨은 또 누구냐.’
진영이 속으로 말했다. 지금까지 나온 이름만 해도 앨 포함하여 10명이다. 그녀에겐 최악의 소설이었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