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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란 Nov 10. 2019

그들은 나와 함께 쿠바에 가고 싶다고 했다

슬퍼지는 새벽, 웃기지도 않은 소설을 썼지(3)


그러니까 그날은 3년 전 이곳에 왔던 그녀를 송별하는 자리였다. 나이답지 않게 철없던 그녀가 모든 걸 다 팽개치고 아무 연고도 없는 이곳에  불쑥 왔던 것처럼 그녀는 불쑥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진영 씨, 나 다음 달에 여주로 가.     


여주는 세 명의 김 씨가 살고 있는 곳이었다. 몇 해 전 세상을 등진 여동생의 남편이자 아마추어 권투선수 김기권 씨, 시작하는 사업마다 실패를 반복하는 남편 김재범 씨, 인색하기로 유명한 아버지 김철석 씨. 그녀는 이 세 남자가 끔찍하다고 했지만 이 곳은 더 끔찍했다고 자주 말했다. 


-갑자기 왜요?   

  

-철학관 아저씨가 그러는데 지금이 아니면 때를 놓친대. 여기는 정말이지 최악의 도시야.   


그녀는 이런 이야기를 나 말고도 여러 사람에게도 했던 모양이다. 그녀를 잘 알고 지내던 Y가 그녀가 떠나기 전날 식사라도 한 끼 하자며 연락을 해왔다. 그래서 우리 세 명은 그해 들어 제일 춥다던 날-그날은 1월10일이었다- 하필 내가 싫어하는 음식인 순대국밥집에서 만났다. 그녀는 눈물대신 쓸쓸한 웃음을 보여줬고 나는 순대를 숟가락으로 휘휘 젓기만 했다. 그때 Y가 말했다.      



-여름에 쿠바 갈 건데 같이 갈래요?    

 

그녀와 나는 서로의 눈을 쳐다보며 활짝 웃었다. 그래서 그날, 아주 갑작스럽게 우리의 쿠바행이 결정되었던 것이다. 나는 살아오면서 갑작스럽고 당황스런 일이 한둘이 아니었으므로 이런 우연이 생의 본질이라는 걸 다시 확인했다. 순대를 입으로 쑤셔 넣으며 우리 셋은 행복한 웃음을 지었다.    

 그 무렵 Z가 페이스북을 통해 내게 메시지를 보내왔다.    

 

- 진영 씨, 오랜만이야.  

   

몇 년전 Z가 페이스북 친구요청을 했던 것을 나는 기억하고 있었다. 그때 나는 그 요청을 거절했다. 하지만 그날은 어쩐지 모른 척 하기 싫어서 답을 넣었다.    

 

-선생님, 건강하시죠?    

 

이렇게 시작된 페이스북 대화가 전화통화로 이어졌고, 새봄에는 인도로 촬영 간다느니 북해도를 간다느니 하더니 내가 쿠바얘기를 꺼내자 쿠바에 같이 가자고 했다. 12월에 간다고 했다. 작년에 한번 다녀왔던 터라 가이드 역할을 톡톡히 하겠노라고도.

늦봄이 되자, 세 명의 김 씨에게로 갔던 그녀에게서 소식이 왔다.    


-진영 씨, 여기 상황이 만만치가 않아. 쿠바에 가기가 어려울 것 같아. Y랑 둘이 꼭 다녀와라. 자기가 얼마

나 가고 싶어 했던 곳이냐, 헤밍웨이 집도 가보고.  

   

나는 Y와 둘이 가야 되는 상황이 불편했지만, 쿠바에 가고 싶은 마음이 더 강렬했다. 하지만 Y가 불편하면 안 되기에 먼저 그의 의견을 물었다.     


-X가 쿠바에 못 간대요.     


Y에게서 답이 왔다.     


-그럼 둘이 가요.


그러는 사이 Z는, 쿠바는 여름이 우기라서 여행하기 좋지 않을뿐더러 자기와 함께 가야 더 재미날 것이라

며 일주일이 멀다 하고 내게 연락을 했다. Y도 마찬가지였다.     


-진영 씨, 내가 잘 모실게요, 걱정 말고 나만 따라와요.    

 

두 사람은 끝없이 내게 쿠바에 함께 가자고 했고 나는 확답을 하는 것을 계속 미루고 있었다. 둘을 재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다만 자유여행이 처음인 탓에 여러 가지 불필요한 불안에 시달렸기 때문이었다.

   

여름휴가가 다가오고 있었다. 그즈음 두 사람에게서는 이상하게도 아무 연락이 없었다. 내가 먼저 Y에게 휴대폰 문자로 기별을 넣었다. 일주일쯤 지난 후 답이 왔다.     


-저 지금 쿠바예요, 아는 형이 담 주에 쿠바로 온다는데 그 형 연락처라도 가르쳐 드릴까요?  


나는 속으로 말했다.     


-개자식.    


며칠 후 Z에게도 기별을 넣었다.     


-12월 쿠바 여행 가실 때 저도 함께 갈게요. 

    

-이를 어쩌나 쿠바는 보류...루마니아 쪽으로 가 보려고요. 한번 갔던 곳을 또다시 가기가 좀 그래서요.     


나는 또 속으로 말했다.     


-쌍으로 지랄들을 하는구나.    


가을이 되자 Z에게서 연락이 왔다.     


-진영 씨, 인도에 같이 갈래요? 이번에 촬영이 있어서요.  

   

-지랄하지 마세요     


라고 기별을 넣으려다가 난 눈웃음을 보냈다. 이렇게.   

  

- ^ ^    


Y에게서도 기별이 왔다. 이번에는 영국에 가게 되었으니 함께 가자고 했다. 나는 우는 표정과 함께 이런 답신을 보냈다.     


-아, 하필 그 무렵 다른 일정이 있어요. 안타깝네요. ㅠㅠ   

 

그 해 12월 나는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쿠바로 떠났다. 여행 중에도 Y와 Z는 내게 연락을 해왔고 나는 쿠바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그 후 Y가 재일교포 여성 사업가와 함께 후쿠오카로 갈 때까지, Z가 무슨 사건에 연루되어 수감생활을 시작하게 될 때까지 쿠바에 다녀왔다는 말을 나는 끝까지 하지 않았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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