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모란 Nov 07. 2019

엄마는 하루종일 방에서 뭐해요우

슬퍼지는 새벽, 웃기지도 않는 소설을 썼지(2)

                                  

우리 집에는 벽이 많습니다. 방이 세 개나 되니 적어도 벽이 열두 개는 넘습니다. 이 집으로 이사 오기 전에는 방이 딱 하나였기 때문에 벽이 그렇게 많지는 않았다고 합니다. 내가 세 살 때 이 집으로 이사 와서 전에 살던 집에 대한 기억은 나지 않습니다만 누나가 말해 주었습니다.


엄마는 벽이 휑하다며 저렴한 비용으로 벽을 꾸밀 수 있는 것은 시계가 최고라 했답니다. 그래서 우리 집에는 동그라미 또는 네모 모양의 벽시계가 세 개 걸려 있습니다. 너무 튀는 것은 쉬 싫증 나니 무난한 것을 사야 오래 쓸 수 있다고 엄마가 말했답니다. 역시 내가 세 살 때 일이라 기억은 나지 않지만 누나가 말해 줬습니다. 그리고 누나는 덧붙였습니다.


"엄마는 늘 눈에 잘 띄지 않는 것을 좋아해 " 


나는 눈에 잘 띄는 것을 좋아하는데 엄마를 닮지는 않은 모양입니다. 게다가 나는 아빠가 늦게 들어오거나 안 들어와도 별로 슬프지 않은데 엄마 성격을 닮지 않은 것이 분명합니다. 아빠가 안 들어오는 날 엄마는 늘 슬퍼 보이니까요.


두 달은 되었을 겁니다. 우리 집 벽시계의 시간이 서로 맞지 않게 된 것이. 안방 시계가 제일 먼저 멈췄고 얼마 후 거실과 주방의 시계가 차례차례 멈췄습니다. 시계가 모조리 멈췄는데도 엄마는 시간을 되돌려 놓지 않았습니다.


"엄마, 시계 좀 고쳐놔요" 


했더니,


"아직 엄마는 설거지가 끝나지 않았으니 아빠에게 말하렴." 


했습니다. 그래서 아빠에게 말했습니다.


"아빠, 시계 좀 고쳐놔요" 


아빠는 말했습니다.


" 어, 그래. 느이 엄마가 시계 약을 사놓으면." 


늘 이런 식입니다. 이런 식의 대화가 조금 더 오래가면 두 분은 꼭 다투십니다.


설거지를 끝낸 엄마는 깊은숨을 내쉬며 방으로 들어가셨습니다. 아빠는 술에 취해서인지 시계 약 사 오는 걸 두 달째 까먹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집에는 시간이 없습니다. 아니, 시간이 제각각입니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자면 시간이 세 개입니다.


얼마 전 나는 심심해서 혼자 재미난 놀이를 했습니다. 우리 집을 비싼 값에 팔기 위해 사람들 앞에서 소개하는 놀이였습니다.


“세 개의 시간을 동시에 갖고 있는 엑셀런트 한 하우스를 소개합니다!

잠만 자고 싶은 사람은 시간이 새벽 두 시에 멈춰버린 안방으로 들어가면 잠만 잘 수 있고요,

우리 집 주방으로 오시면 하루 종일 아침 8시랍니다. 상쾌한 아침을 24시간 누릴 수 있어요!

게다가 거실로 가면 늘 햇살 따뜻한 오후 3시랍니다.

어서 오세요, 이런 집은 이 세상에 딱 하나뿐입니다.

저렴한 가격으로 드리겠습니다!!!! ” 


누나는 유치해서 웃음도 나오지 않는다며 방으로 들어가 버렸습니다.


이제 와서 하는 말이지만 안방 시계가 멈춰버린 그 날 새벽 나는 물을 마시러 주방으로 갔었습니다. 그때 두 분이 다투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그럼 더 이상 할 얘기가 없겠네"


라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그날 이후 엄마는 거의 방에서 나오지 않고 잠만 자고 있답니다. 아니, 잠자는 척하십니다. 소리 없이 살짝 문을 열면


“그래, 밥 먹을래?”


하시니까요. 나는 궁금해서 엄마에게 물었습니다.


“엄마는 방에서 하루 종일 뭐~해~요우~강팔아엿바꿔먹었네엄마한테들켜벌을섰네요우~”


라고요. 엄마는 낮은 목소리로


“응, 그래”


라고만 하셨습니다. 예전 같으면 끝말 이어 랩을 하는 나를 보며 깔깔 웃었을 텐데 엄마의 대답을 나로서는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어떤 날은 책을 펴놓고 있지만 읽지 않는다는 것쯤은 나도 다 압니다. 내가 엄마 옆에 살짝 누워서 표정을 살펴도 옆에 있는 걸 모르는 사람처럼 그대로 계십니다. 엄마 방의 시계가 멈춰 버린 것처럼 엄마도 멈춰버린 것 같습니다.


엄마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요. 시계 약 사 오는 것이 어려운 일도 아닌데 왜 엄마는 시계를 고쳐 놓지 않는 걸까요. 새벽 두 시에 시계가 멈춘 것과 엄마가 멈춘 것이 무슨 연관이 있다면, 시계를 고쳐 놓으면 엄마도 돌아올까요. 엄마는 언제쯤 방에서 나올 수 있을까요. 엄마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요.(끝)

이전 19화 머릿기름이 잘잘 흐르던 선생님이 그랬어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