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글을 잘 쓴다는 말을 어려서부터 들어온 사람이다. 그렇다고 내가 글을 잘 쓴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글을 써서 보여주면 하도 잘 쓴다 잘 쓴다 하니 조금씩 그 말을 믿기 시작했다.
나에게 처음으로 글을 잘 쓴다는 말을 한 분은 초등학교 5학년 때 담임 선생님인데 동시를 쓰는 것이 그날 수업 내용이었다. 나는 아무렇게나 써서 교탁 앞에 서서 창 밖을 쳐다보고 있는 선생님께 제일 먼저 제출하고 자리로 돌아왔다.
머리카락이 머리통에 착 달라붙어 있을 만큼 언제나 머릿기름이 잘잘 흐르던 선생님은 내가 제출한 동시를 읽더니 입술 위 듬성듬성 난 콧수염을 살짝 만지면서 가느다랗고 쭉 찢어진 눈으로 나를 힐끗 쳐다보셨다. 그날 처음 내가 주목 받는다는 걸 느꼈었다. 학급 모든 친구들이 동시를 제출하자 선생님은 잘 썼다며 내가 쓴 동시를 낭송했다.
운동장/명륜초등학교 5학년 2반 노진숙
아이쿠 아파라
운동장이 아프대요
선생님들의 뾰족한 구두
아이쿠 아파라
운동장이 아프대요
우리들의 뜀박질
하지만 어쩔 수 없어요
운동장을 딛지 않으면
아무도 설 수 없으니까
이 시를 선생님이 낭송하자마자 반장이었던 수정이가 비아냥거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저런 시는 나도 쓰겠다!
그러자 반 아이들이 “와르르 와장창” 웃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내 귀에는 그렇게 들렸다. 그 뒤로 나는 삼십 몇 년 간 그날 일을 까맣게 잊고 살았다.
삼십 몇 년 쯤 지나 외롭기도 하고 따분하기도 해서 시 짓기 수업에 참여해 보았다. 시 선생은 나와는 동갑내기였는데 이 십 몇 년간 시를 써왔으나 단 한 번도, 그 어디에도 그의 시가 당선된 적은 없는 그런 사람이었다. 그 자신은 한국문단이 썩어서 공모에 응한 적이 없다는 말도 했었던 것 같다.
시 수업에 참여했던 사람은 이상한 형제 두 명과 더 이상한 여고 동창생 두 명, 그리고 비교적 정상적인 나였다. 이상한 형은 동생 때문에 짜증난다고 했고, 이상한 동생은 형 때문에 짜증난다 했다. 그들이 왜 시 짓기 수업에 같이 왔는지가 가장 이상했지만 난 끝까지 묻지 않았다.
여고 동창생 두 명은 나의 여고 선배이기도 했는데 두 사람이 하도 이상해서 나는 내가 여고 후배라는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시 선생은 지난주 했던 말을 이번 주에도 하고 이번 주 했던 말을 다음 주에도 하는 식으로 수업을 진행했다. 나는 우리 모두가 웬만큼 외롭지 않고서야 어떻게 이런 알맹이 없는 수업에 왔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우리가 동족이라는 걸 알았기에 그들에게 등을 돌릴 수 없었다.
어느 날, 대학재학중 교수들의 총애를 한 몸에 받았다는 시 짓기 선생은 내가 제출한 시를 읽더니 옳거니, 시란 바로 이런 거라 했다.
말하자면/노진숙(47세)
완전히 지쳤다는,
오히려 웃을 수밖에 없었다는,
시작 외에는 다른 길이 없을 거라는,
고로,
따라서,
그러니까.
하지만 그렇다 해도...
말하자면,
도저히...
이 시를 내가 낭송하자 모두들 웃었다. 하지만 그 소리는 “와르르 와장창” 하지는 않았다. 나는 그제서야 삼십 몇 년 전 머릿기름에 듬성듬성한 콧수염의 담임 선생님이 생각났다. 그리고 내가 글을 잘 쓴다는 사실에 조금씩 확신을 가지기 시작했다. 물론 사람들에게 절대로 내색한 적은 없었다.
그 뒤로 나는 간혹 독후감 공모전에 응모해서 입상하기도 했고, 도박예방 수기공모전, 투병수기 공모전 같은 이름도 없는 잡다한 공모전에 거짓 수기를 써서 상금 몇 십 만 원을 받기도 했다.
계속 나이는 들어가고 나는 생이 따분해서 죽을 지경이었다. 남은 생애에 뭐 좋은 일이 없나 싶어 50세가 되던 해에 사주를 보러 갔는데 지질하기는 해도 96세까지 별 일 없이, 다시 말하자면 지금처럼 따분하게 살 운명이라는 점집 남자의 말을 듣고 자살을 결심하기에 이르렀다. 고통 없이 죽는 방법, 한 번 만에 죽는 방법, 깨끗하게 죽는 방법, 시체 치우기 좋도록 죽는 방법 따위를 검색하다가 검색하는 일마저 너무 따분해서 정말 죽고 싶었다. 그러다가 우연히 <웬만해선 죽지 않는다> 라는 제목의 초단편 소설집을 알게 되었다.
웬만하면 죽고 싶은 내가 그 책이 눈에 띄었던 것은 당연한 일인지 몰랐다. 나는 서둘러 그 책을 사서 단숨에 읽었지만, 옳거니 하는 소설은 없었다. 하는 수 없이 내가 소설을 써보기로 마음먹었다. 이것이 내가 초단편 소설을 쓰기 시작한 이유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