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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란 Nov 17. 2019

호텔 카프카의 밤 911호

탱고와 함께 한 천일, 그녀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나(7)

시향이 모란에게 연락한 것은 블랑카 사건 이후 육개월 쯤 뒤였다. 


- 모란아,  무슨 일이고?  지금 어딘데?

- 송정 바닷가다.


-거긴 왜?


 -호텔 카프카의 밤 911호다. 그때 그 방. 그를 처음 만났던.


- 그 사람은 어디서 알게 됐는데?


- 춤판에서 알게 됐지.


-어떻게?


- 어느 날, 밀롱가에서 그 사람이 말을 걸더라고. 마치고 자기랑 술 한잔 하자고.


-그래서 알지도 못하는 사람을 따라 갔드나?


-가벼운 맘으로 갔지. 둘이 간 거는 아니었거든. 1차에서 같이 갔던 사람들은 다 먼저 집에 갔지만. 근데 나중에 알고 보니 나에 대해서 사전조사를 했더라고. 그래서 접근한 것 같드라.


- 아이고, 가시나야. 동호회 같은데서는 니를 다 공개하믄 안 된다. 그것도 몰랐나?


-......

- 인자는 개안나? 

 -안괜찮으믄 우얄끼고.

- 한동안  연락 없길래 잘 지내는 줄 알았지. 인자는 말할 수 있나? 뭔일인지 말해봐라.

- 그날, 눈앞에는 서핑하는 사람들이 잔파도에 밀려왔다 뒤집어졌다 를 반복하고 있었거든. 베란다 미닫이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니까 침대 위엔 낯선 남자가 잠들어 있더라. 그와 나는 전날 밤부터 함께 있었거든. 그땐 그의 이름도 몰랐다. 다음날 아침까지 그는 술 때문인지 했던 말을 몇 번 씩이나 반복하더라. 나는 그 말이 듣기 좋아서 아무 말 안 하고 듣고 있었지.


  “좋아.”


라고 하드라, 그놈이. 내가 좋다는 거야. 웃기지 않나? 우리가 처음 만난 사이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아는 사이는 아니었거든. 밀롱가에서 몇 번 본 사이지. 난 아무 대꾸도 안 했지. 그랬더니 그가 실타래 풀듯 얘기하더라. 별로 궁금하지도 않은 얘기를. 그러니까 왜 있잖아 그런 거. 당신이 왜 좋으냐 하면으로 시작되는 뻔한 얘기.  


나는 한 시간 동안이나 베란다에 앉아 있었다. 여름을 밀어내기 위해 저 멀리서 불어오는 편서풍의 시원함이 숨어있는 미세한 바람을 들이마시면서. 그러는 동안 남자가 잠에서 깼는지 보려고 베란다 문을 열어 커튼 사이로 보기도 했고. 그는 꼼짝도 하지 않고 같은 자세로 잠들어 있더라. 등을 돌린 채. 


  아직도 해변에는 서핑하는 사람들이 잔잔한 파도에 밀려왔다 뒤집어졌다 를 반복하고 있었고. 그런 고요한 물결에 서핑보드를 탄 사람들이 모래사장 쪽으로 쑤욱 밀려왔다가는 얼마 못 가서 물속으로 거꾸로 쳐 박히더라고. 저렇게 잔잔한데 모두들 거꾸로 쳐 박히고 있는기 웃기드만.

 - 그게 웃기드나? 

  - 어, 웃기지않나? 내가 볼 때는 잔잔한데 그 바다를 겪는 사람은 처박히고 있더라고.  그런데 나도 맨날 쳐 박히며 살잖아? 지금도 이렇게 되었잖아. 이제는 좀 약아빠질 만도 한데...


 - 그래 말이야, 가시나야. 인자는 실속 좀 챙기라, 제발.

 - 바람이 서늘해서 가운 위에 뭐라도 걸칠 게 있나 싶어 베란다 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 남자는 잠에서 깨어있더라.


내가 베란다 문을 열자 깜짝 남자가  깜짝 놀라며


  “오, 가버린 줄 알았어요.”


하더라. 그 순간, 내가 사라졌어야 옳았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무안했고. 남자는 내 생각을 읽기라도 한 둣, 우리가 오래된 연인 이기라도 하듯 두 팔을 벌리며 말했지.

“이리 와요.”

라고.

 “너무 밝아서 싫어요.”

내가 소녀처럼 말했지. 베란다로 다시 나가니깐 남자도 가운을 걸치고 베란다로 나와서 내 옆에 앉더라. 나는 오른쪽 옆모습이 더 나은데 하필 내 왼쪽에 남자가 앉는기라. 머쓱해져서 어색해하며 웃었지.  그리고 내가 그 사람한테 말했다.

 “자기야, 바람이 다르네?”


- 에고, 모란아. 내한테는 안그렇드만 남자한테는 당신도 여성스럽네...

-그 남자는 대답은 하지 않고 내 어깨를 꽉 감싸더라. 남자들의 이런 행동은 전혀 말귀를 못 알아먹었을 때 취하는 포즈라는 것쯤은 나도 다 안다이가.  나는 그이가 멍청이 같더라. 하지만 그에게 은은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지.

 “ 여름이 가나 봐요.”

 그제야 고개를 끄덕이더군. 남자들은 하나같이 저렇다. 핀셋으로 꼭꼭 집어서 자, 이걸 보셔요. 이게 당신 몸에서 나온 거예요, 라고 말하는 의사처럼 해야만 하거든. 남자는 내 어깨를 놓아주더군. 둘 사이에 뭔가 풀리지 않으면 안아버리는 게 남자들이다이가. 


   그이는 뻔한 이야기를 계속하더라. 학창 시절 전교 1,2등을 다투었다는 얘기, 말하자면 자신이 엄청 잘난 놈이라는 말이지. 게다가 부자로 살았던 유년의 이야기를 끝없이 하더라.

- 지금은 그렇지 않다는 얘기를 뒤집어서 한 거 같네? 신세한탄 같다야.

- 그래, 그런 셈이지. 시향아. 나 잠 온다. 눈 좀 붙이고 다시 통화 하자.(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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