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모란 Nov 17. 2019

그 방에서 나온 우리는 돼지국밥을 먹었지

탱고와 함께 한 천일, 그녀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나(8)


- 모란아. 좀 잤나? 어디고?

- 집이다. 


-그라믄 하던 얘기 계속해봐라.


그날, 카프카의 밤에서 나온 우리는 돼지국밥을 먹었다.  

- 좀 근사한데 가지 와그랬노.

- 뭐 암튼. 국밥을 다 먹고 우리는 카페에 갔고. 그는 카페에서 전날 밤부터 아침까지 이어졌던 말들을 계속해서 하더라. 최근 일까지 모조리, 모두 다. 나는 그 사람을 다 알 것 같더라. 그는 아주 신나 해 하면서 얘기했고. 그가 간간이 얼굴을 가까이해서 입을 맞추기도 했다. 아주 아주 나중에  우리가 처음 만났던 그날이 그의 생애에서 가장 행복한 날이었다고까지 하더라. 무슨 고백처럼.

-그런 놈이 당신한테 그랬나?

- 시향아, 내가 이만큼 살고도 사람을 진짜 모르는갑다. 나는 다 진심인 줄로만 알았거든.


-그게 와그런줄 아나? 남자 경험이 없어서 글타. 니가 어릴 때도 학교하고 집밖에 몰랐다이가. 결혼 후에도 직장, 집, 교회만 맨날 댕겼고. 연애를 제대로 해봤나, 놀아보기를 제대로 해봤나. 남들 하는 건 다 해봐야 되는기라. 범생이처럼 산다고 다 결과가 좋은 것만은 아이다. 안글트나? 


- 그래 말이야, 나는 성심으로 대하면 다 통할 거라 생각했지.


- 아이고, 이 어리석은 것아.... 그래, 하던 얘기나 계속해봐라. 그래서 그놈이 우쨌다는 말이고?


- 내한테 간이라도 빼줄 듯이 하더라고. 퇴근 무렵이면 데리러 오고, 늘 활짝 웃고. 정말 행복하게 보이더라고. 서너 달 동안 그러더라.


- 남자들이 얼마나 정치적인지 니가 모르네. 결혼도 계약이고 정치고, 연애도 다 마찬가지다.


- 내가 그걸 미리 알았으면 좋았을낀데 어쩔 수 없다이가.


- 그래, 그 남자가 니한테 어쨌는데? 


- 갑자기 돈이 필요하다는기라.


-전형적인 사기꾼이네.  그래서? 돈 떼있나? 그 전에는 아무런 낌새도 없었나?


- 약간 이상하기는 했지. 그래도 이럴 줄은 몰랐지.


-그래 가지고 돈을 줐는가베? 얼마나 줐는데?


- 내 전세금 절반.


- 아이고...나쁜 새끼. 그 새끼 춤추러는 오나?


- 돈을 그 사람 통장에 입금하고 난 뒤부터 안 나타난다.


- 고발하믄 안 되나?


-......


- 그래서 어쩔 건데?


- 집주인한테 사정 말하고 전세금 일부를 월세로 돌렸다. 


- 매월 얼마나 되노?


- 쫌 많다.


- 모란아. 세상이 그리 호락호락 안 하다. 남편한테 그렇게 당하고 또 무슨 일이고...인자 우짤긴데? 춤은 당장 그만두삐라.


- 춤이 뭔 죄고? 내가 어리석은 거지.


- 문디 가시나야...아직도 정신을 못차맀는가베....


- 탱고가 무슨 죄가 있겠노. 나는 고마 탱고 춤추면서 다 잊으련다. 춤이 그런 묘한 구석이 있는기라.


- 가시나... 탱고를 그리 좋아하드만 탱고한테 옴팡당했네. 뭐든 너무 빠지지 마라 안하드나.


-  시향아,  나쁜 놈들이 판을 쳐도 우얄끼고, 인자는 안 당하고 살믄되지, 인생에 큰 수업료 지불했다 생각하려고.


모란은 이 모든 것을 자신의 탓이라고 여겼다. 세상은 모란의 편이 아니란 걸 뼈저리게 느꼈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남편과의 일도, 그 남자와의 일도. (끝)


이전 17화 호텔 카프카의 밤 911호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