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brunch
연재 중
성장하지 못한 아이들
02화
실행
신고
라이킷
26
댓글
공유
닫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브런치스토리 시작하기
브런치스토리 홈
브런치스토리 나우
브런치스토리 책방
계정을 잊어버리셨나요?
by
Jinsylvia
Nov 02. 2024
2월의 첫 만남
그 날카로운 추억
2월 28일
8시 30분
한 해가 시작한 지 이미 두 달이 지났지만
이제야 연말연시의 기분으로 새 학기를 맞이하는
2월의 마지막날
나민경 선생님은 오랜만에 하는 정식 출근에
긴장되면서도 설레는 마음에 정신이 없습니다.
휴직 전 어떻게 했더라... 곰곰이 떠올려보지만
몸으로 부딪치는 게 빠르겠다 싶은 생각이 듭니다.
교문 앞 신호대기에 서서
건너편 횡단보도에 구름처럼 서 있는 같은 교복을 입은 학생들을 발견합니다.
방학 동안 자고 있을 시간인데 학교에 오려고 그
달디단 단잠을 깨고 왔을 아이들입니다.
배정받은 교무실로 들어가 선생님들과 인사를 나눕니다.
한동안 업무 파악하려면 도움을 많이 받아야 하는 상황이라 더 깍듯이 인사합니다.
자리에 놓인 출석부를 바라보며 다시 한번 현실을 직시합니다.
'아... 중학교라니... '
초등학교에서 처음 중학교로 온 1학년 학생들이 처음 등교하는 날.
알려줄 것도 전달할 것도 많습니다.
혹여나 빠트린건 없을까 옆 자리 선생님에게 물어보며 전달사항을 한번 더 체크합니다.
9시
아이들과 처음 만날 시간입니다.
예비소집일 이후 공식 반배정이 되어 진짜 우리 반을 만나는 첫 순간입니다.
빠르게 교실로 이동하는 다른 선생님들을 쫓아 복도로 나왔습니다.
겨울이라 추운 복도가 유난히 더 길고 멀리 느껴집니다.
1학년 4반
나민경 선생님이 일 년간 아이들과 지지고 볶아야 하는 현장 앞에 섰습니다.
학생들 앞에 선다는 것
10여 년간 매일매일 익숙하게 했던 일상이 이제는 커다란 부담으로 다가옵니다.
그 무게감을 새삼 느껴봅니다.
'후..........'
문고리를 돌리기 전에 한번 크게 심호흡을 합니다.
오늘은 무표정을 유지하기로 한번 더 마음먹고 교실로 들어섭니다.
'안녕하세요~'
인사를 하고 교탁 앞에 섰습니다.
아직 어색하고 분위기 파악이 되지 않은 25명의 학생들의 시선이 모두 쏠립니다.
예상보다 더 아기 같은 얼굴들에 긴장했던 마음이 잠시 부끄러워집니다.
'중학교에 온 걸 환영합니다
저는 일 년 동안 여러분을 맡은 나민경 선생님입니다.'
가정통신문 5개
출석, 복장, 시간표 등 학교 기본 규칙 사항 안내지
그리고 1학년 교과서 13권
이 모두를 설명하고 배부하느라 1시간이 훌쩍 지났습니다.
엉뚱한 질문을 하는 아이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얌전히 가정통신문과 교과서를 챙깁니다.
13권을 다 들고 가려니 너무 무거울 것 같아
교실 뒤편 번호가 붙어 있는 사물함에 두고 가도 된다고 알려줍니다.
긴장과 어색함으로 정신없었던 시간이 지나고
아이들을 하교시킨 후 교실을 둘려봅니다.
작년 1학년 학생들이 남기고 간 물건들로 어수선한 교실을 어떻게 정리할지 잠시 생각해 봅니다.
오후에 교직원 전체 연수가 있는 탓에
점심은 김밥이라는데
일단
밥부터 먹자는 마음으로 교무실로 향하는데 복도 밖으로 고성이 들립니다.
"아이 씨발 하지 말라고요!"
심상치 않은 욕설에 심장이 두근거립니다.
교무실 문을 여니 경찰관 한 분이 1학년 부장님과 6반 담임 선생님과 서있습니다.
그 사이 아직 2차 성징이 안 왔는지 귀엽게 생긴 남학생이
얼굴이 빨개져서 욕설을 뿜어내고 있습니다.
"씨발, 저한테 욕했잖아요!
좇같이! 선생이면 다야"
"부장님! 교과서 순서대로 가져가라고 알려주는데 저렇게 욕을 해서
조용히 앉으라고 하니 갑자기 경찰에 신고했어요.
저 이 학생 담임 못할 것 같습니다."
우아한 옷차림에 말투를 가진 6반 선생님은 얼굴이 사색이 되어 떨리는 목소리로 상황을 설명했습니다.
옆에 서 있던 경찰관은
이 상황이 익숙하다는 표정으로 신고당한 6반 선생님에게
신고가 들어왔으니 조사를 해야 한다며 다른 장소로 데리고 갔습니다.
부장 선생님과 소식을 듣고 뛰어온 학생부 선생님들이
아이를 진정시켰지만 계속 욕설을 하고 옆에 있는 의자를 발로 찼습니다.
이런 광경을 처음 본 나민경 선생님은 어찌할 바를 몰라 구석에 서있었습니다.
학부모에게 인도해 달라는 경찰관의 당부에 아버지와 연락을 했지만
짜증 난다는 목소리로 일하느라 갈 수 없다는 한마디만 하고 바로 전화를 끊었습니다.
아이를 계속 학교에 잡아둘 수 없고
보호자도 오기를 거부해서
어떨 수 없이 아이를 귀가시켰습니다.
6반 담임 선생님은 경찰관과 조사를 마쳤습니다.
경찰관은 부장선생님께 이 학생은 초등학교 때부터 자신한테 불리한 상황이면 습관적으로 아동학대 신고를 하는 걸로 관내에서 유명하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신고가 들어오면 출동해서 조사할 수밖에 없다며 한숨을 쉬었습니다.
나민경 선생님도 경찰관이 돌아간 후 회의실에서 진행 중인 전교사 연수에 참여했습니다.
연수 후, 퇴근하려고 차로 가는 길에
주차장 한쪽에 주저앉은 6반 선생님을 보았습니다.
"선생님~ 괜찮으세요~ 제가 부축할 테니 일어나 보시겠어요?"
"아... 샘.... 어지러워서... 도저히 운전을 못할 것 같아서 남편한테 데리러 오라고 전화했어요. 고마워요."
비틀거리는 선생님을 조수석에 앉히고 다시 한번 상태를 살폈습니다.
아까보다 얼굴이 더 창백했습니다.
곧 3월이지만 한 겨울 같은 찬바람이 어깨를 움츠리게 했습니다.
keyword
교육
청소년
학교
Brunch Book
토요일
연재
연재
성장하지 못한 아이들
01
익숙하지만 낯선 곳
02
2월의 첫 만남
03
중학교 교사의 근무환경
04
그냥 하고픈데로
05
왜 지도를 안 하세요?
전체 목차 보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