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들과 교직원 식당에 가서 점심을 먹던 중 지난번 경찰을 부르며 소동을 피웠던 학생의 소식이 듣게 됩니다.
그 학생의 아버지는 학교 방문을 차일피일 미루다 입학식날 아침에야 학교를 찾아왔습니다.
교감선생님이 교사에 대한 언어폭력과 정상적인 학교 생활이 의심되는 폭력 행위로 징계 사유가 될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듣는 내내 대수롭지 않다는 표정으로 앉아있던 아버지는 한마디를 남기고 출근해야 한다고 사라졌습니다.
"앞으로 고생 좀 하실 겁니다."
오후 2시
대강당에서 입학식이 시작됐습니다.
집에 한두 명 밖에 없는 아이의 입학식을 보기 위해 엄마, 아빠 뿐만 아니라 할머니 할아버지까지 오셨습니다.
기나긴 6년의 초등생활을 마치고 교복을 입은 진정한 청소년이 되는 날입니다.
입학식이 모두 끝나고 무대에 있었던 교장 교감선생님이 내빈들과 학부모 대표들과 함께 무대를 내려가 중앙에 난 길로 퇴장합니다. 퇴장하는 길에 4반 앞을 지나갈 때였습니다. 4반 한 여학생이 교장 선생님을 향해 큰소리로 외칩니다.
"너~~~ 무 예쁘세요!!!"
3월 5일
입학식 다음날.
본격적인 중학교 생활이 시작되었습니다.
조회전 아이들을 같은 초등학교 출신들끼리 복도에 한 무더기씩 모여있습니다.
그냥 서있는 게 아니라 서로 밀치고 때리고 도망가고... 동네 놀이터보다 더 분주합니다.
아침 교직원 회의를 마치고 1학년 층으로 올라오던 나민경 선생님은 덩치가 큰 남학생과 부딪칠뻔했습니다. 생경한 장면에 놀라며 소리 지르며 뛰어다니는 학생들을 피해 교무실로 들어왔습니다.
첫 수업 시간입니다.
떨리는 마음으로 교실에 들어갔습니다.
담임 선생님과 계속 함께 있었던 초등학교와 달리 매시간 다른 교과 선생님이 들어오는 중학교가 낯설기만 합니다. 첫 시간은 아이들의 수준을 파악하기 위해 간단한 테스트를 했습니다. 중학교 1학년의 영어 수준은 개별적으로 차이가 크기 때문에 수업의 방향을 잡기 위해 필요한 과정입니다.
한 명씩 불러 같은 영어 문장을 읽게 했습니다.
'My name is Minsu. I'm in the first year of middle shchool.'
25명의 학생들 중 반은 소리조차 내지 못합니다.
대부분은 수줍어하고 몇몇은 당당히 '저 영어 몰라요.'라고 말합니다.
나머지의 반은 떠듬떠듬 읽어가는데 발음이 부정확합니다. 아주 기초적인 발음 원리를 모르는 수준이었습니다. 겨우 5~6명 정도의 아이들만 막힘없이 주어진 문장을 읽었습니다.
고등학교에서 고난도 수업에 영어 토론 대회를 진행했던 민경샘에게는 참으로 난감한 상황입니다.
예상했던 것보다 더더더 수준을 낮춰서 수업을 준비해야겠다고 다짐합니다.
첫 수업을 마치고 복도를 나오니 남학생 20명 정도가 남자 화장실 문 앞에 다닥다닥 붙어서 몸으로 문을 밀고 있습니다.
아마도 화장실 안에 비슷한 명수의 아이들과 문을 사이에 두고 이유 없는 몸씨름을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복도 구석구석에서 아이들이 몸으로 놉니다. 논다고 표현하기에는 다소 위험한 상황도 많이 있습니다.
놀린 친구를 잡으러 전속력으로 뛰어가는 학생들도 있습니다.
벌써부터 지친 민경샘이 교무실에 앉자 복도에서 커다란 욕설이 들려옵니다.
'씨발 XXXX!'
'미친년아 XXX 말라고'
'엄마 없는 년이 XXXXX'
글로 담기 힘든 온갖 욕설이 복도를 채웁니다.
이 아이들보다 훨씬 많이 살았지만 듣지도 보지도 못한 신선한 비속어가 매 시간 들립니다.
나한테 하는 욕이 아닌데도 민경샘은 가슴이 철렁하고 머리가 어지럽습니다.
연달아 뇌에 충격이 가해지는 것 같습니다. 순간 식물에게 부정적인 이야기와 욕을 하면 몇 달 내에 시들어 죽는 한 다큐에서 봤던 실험이 생각납니다.
학교에서 이때껏 겪어보지 못한 언어폭력의 상황에 놓였습니다.
학기가 시작한 지 이제 2주
나민경 선생님은 너무나 혼란스럽습니다.
반 아이들은 쉬는 시간마다 끊임없이 다른 학생을 이르러 찾아옵니다.
별거 아닌 걸로 욕하고 싸우다 교무실로 잡혀오는 일도 허다합니다.
남자아이들은 몸으로 여자 아이들은 말로 싸우고 서로 죽일 듯 씩씩 거리고 울고 불고
교무실이 난장판입니다.
더 난감한 것은 지도 방법이 없다는 것입니다.
화난 아이들을 진정시키고 '학생 확인서'를 쓰게 하고 말로 어떤 게 잘못한 것을 설명합니다.
그리고 학부모에게 사실을 알립니다. 그걸로 끝입니다.
수업시간을 제외하고는 하루종일 싸움을 말리고 화해시키고 지도하는데 씁니다.
딱히 해결방법이 없는 이 과정이 도돌이표처럼 하루에도 몇 번씩 반복됩니다.
가끔은 수업 중에도 하던 수업을 멈추고 싸움을 말리고 지도합니다.
도대체 수업이 본업인지 싸움을 말리고 혼내는 게 본업인지 헷갈리기까지 합니다.
수업시간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수업시간에 책을 가져오지 않는 아이는 있을 수 있다고 해도
대부분의 아이들이 교사가 교실로 들어와도 아무것도 꺼내놓지 않고 멍하게 앉아있습니다.
책을 펴라고 하면 어디를 피는지 모릅니다.
펴라는 한 마디에 2~3명만 책을 폅니다. 모든 아이들이 책을 펴게 하기까지 많은 시간이 듭니다.
책 펴고 진도 확인하고 본격적으로 공부를 시간 하려면 10분 이상의 시간이 걸립니다.
수업 중간에 멀리 있는 친구와 큰소리로 사적인 대화를 합니다.
혼나도 계속합니다.
수업과 상관없는 개인적인 이야기를 늘어놓는 아이들도 있습니다.
시작할 때 '샘~ 너무 예쁘세요~'하고 맥락 없는 칭찬을 하다가도 끊임없이 주변 친구를 이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