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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nsylvia Nov 16. 2024

그냥 하고픈데로

공공질서와 공동체 의식을 잃은 아이들


4월, 유독 추웠던 복도에도 봄의 기운이 찾아오고 있습니다.

나민경 선생님은 좋아하는 브랜드의 라테를 뜯어 텀블러에 넣고 따뜻한 물을 부으며 생각합니다.

'그래도... 3월이 어떻게 지나갔네...'



중학교에서의 하루는 어떻게 흘러가는지 모를 정도로 정신이 없습니다.


학급 조회 시간에 자리에 없는 아이들을 체크하고 휴대폰을 걷습니다.

왜 이리 지각이 많은지 출석 체크만으로 조회시간이 다 갑니다.

그래도 1교시 전에 등교한 학생들은 양호합니다.

점심시간이 다되도록 문자하나 없는 지각생 부모에게 연락을 하다 보면 하루가 다 갑니다.

한 달 내내 한 번도 학교를 나오지 않은 학생도 있습니다. 자퇴가 없는 중학교라 유예 조건이 될 때까지 학부모와 연락하고 기간에 맞춰 결석 신고서를 받아야 합니다.


업무 틈틈이 수업에 들어갑니다.

종이 쳐도 복도에 나와 있는 학생들을 교실로 들어가게 하며 해당반으로 갑니다.

선생님이 왔어도 학생들은 여전히 교실을 뛰어다니고 소리 지르고 뒹굽니다.

교탁으로 가서 책을 가지고 오라고 소리칩니다. 10번은 소리쳐야 겨우 책이 책상 위로 나와 있습니다. 수업할 페이지를 20번은 반복해서 말해도 '어디라고요?'라고 외치는 학생은 반드시 있습니다.


이렇게라도 수업이 시작하면 다행입니다.

교실에 들어가자마자 싸우고 있던 두 학생이 다른 사람의 잘못을 이르기 바쁩니다.

'얘가 문 쾅 닫았어요.' '얘가 저보고 엄마 없데요.' '얘가 저한테 물 뿌렸어요.'

말도 안 되는 언쟁을 겨우 수습해도 서로 계속 쨰려보고 수업 내내 큰소리로 서로에게 소리를 지릅니다.

아무리 지적해도 분이 풀릴 때까지 누그러지지 않습니다.


종이 친지 10분이 지나서 겨우 수업을 시작했습니다.

맨 뒷자리에 앉은 남학생이 빈 페트병으로 계속 책상을 내리칩니다.

하지 말라고 계속 주의를 주지만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도저히 안 되겠어서 페트병을 뺏고 복도로 내보냅니다.

수업을 다시 진행하려니 교실밖 창문에 붙어 다른 친구들에게 큰소리로 이야기하다가 갑자기 안에 있던 다른 남학생과 싸움이 붙었습니다.


싸움을 수습하고 겨우 다시 수업이 시작됐습니다.

2과 본문을 제목의 의미를 알려주고 제목 아래 쓰라고 한 후 교실을 한 바퀴 돕니다. 교과서를 한 달째 안 가져오는 학생은 오늘도 가져오지 않았습니다. 쓰지 않고 멍하게 앉아있는 학생에게 펜을 꺼내라니 필통이 없답니다. 옆자리 학생의 교과서는 반이나 뜯겨있습니다. 교과서 표지가 날아간 학생은 반마다 5~6명은 됩니다.

펜이 없는 학생에게 자신의 펜을 빌려주고 앞으로 온 민경샘은 본문 글씨가 보이지 않도록 가득히 낙서하고 있는 맨 앞자리 학생을 발견합니다. 책을 뺏어 넘겨보니 이미 책은 온통 낙서로 가득합니다.


낙서하지 말라고 당부한 후 디지털 교과서를 넘기고 있는데 여학생들의 작은 웃음소리가 들립니다.

수업시작할 때부터 계속 다른 분단의 친구와 눈빛을 교환하고 키득거렸던 학생입니다.

가만히 있으라고 하니 '제가 뭘요... 떠들지도 않았잖아요~'라고 대듭니다.

어떤 날은 왜 자기한테만 그러냐며 갑자기 아기처럼 큰소리로 울기도 합니다.


교과서 한 페이지를 채 나가지 못했는데 이미 지치고 화가 난 채 멘붕에 빠진 민경샘에게 한 학생이 갑자기 묻습니다. '선생님~ 오늘 점심 뭐예요?'


수업을 시작하고, 수업 방해하는 학생을 혼내고, 헛소리하는 학생들 대응하다 보면 뭘 가르쳤는지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민경샘은 자신이 영어 선생님인지 아이들을 혼내는 사람인지 싸움을 말리는 경찰인지... 여전히 혼란스럽습니다.

영어 학습법에 대해 공부하고 열정적으로 지도했던 날들이 아스라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갑니다.




오늘 유일하게 있는 공강시간입니다.

아침에 걷은 가정통신문이 3개. 얼른 번호대로 정리해서 교무부에 제줄해야 합니다.

아! 수업 자료 인쇄도 해야 합니다.

바쁜 일 투성이지만 지난 쉬는 시간 싸움난 반 아이들을 수습하느라 화장실을 못 간 민경샘은 일단 급한 볼일을 해결하러 화장실로 뛰어갑니다.

아래층에 있는 교직원 화장실까지는 멀어서 같은 층에 있는 학생 화장실로 갔습니다.

청소해 주시는 도우미 아주머니가 화를 내며 화장실에서 나오다가 민경샘에게 하소연하듯이 말씀하십니다.

"아... 선생님... 얘네들 왜 이래요? 제가 여기서 청소일 오래 했지만 갈수록 너무 심해요."


화장실 세면대 거울에는 휴지를 물에 묻혀 던진 뭉치가 매달려있습니다. 세면대에는 뭘 먹다가 버렸는지 빨간 물이 흐르고 있습니다. 여성용품을 버리라고 벽에 설치한 통에서 갈색 국물이 뚝뚝 떨어집니다. 아이들이 그 통에 먹다만 아이스크림을 버린 것입니다.

화장실 바닥에 짓이겨진 귤이 굴러다닙니다. 오늘 점심에 급식으로 나왔던 귤인 거 같습니다.  

남자 화장실은 소변기에 먹다 남긴 과자와 쓰레기를 버려서 소변과 뒤섞인 쓰레기를 아주머니가 매일 치우신다고 합니다. 바닥은 침과 가래가 붙어있어 눈뜨고는 볼 수가 없고요.

2년 전에 리모델링해서 백화점 화장실 버금가게 청결한 화장실은 아이들의 만행으로 매일 엉망진창이 됩니다.



몇 주 뒤

화장실 휴지는 공급이 중단됐고

여성용품 통의 입구는 사용할 수 없게 단단히 봉해졌습니다.











종례시간입니다.

아이들이 하루종일 기다렸던 휴대폰을 나눠주고 있는데 맨 앞자리에 앉은 소라가 민경샘에게 다가옵니다.

"선생님.... 주제 시간에 다른 교실 갔다 오니 제 서랍에 쓰레기가 가득해요. 제 자리에 누가 앉았어요?"다른 반 아이들이 각자 선택한 수업을 하려고 교실을 이동하는 날이면 항상 있는 일입니다.

남의 자리에 쓰레기를 버리기도 하고 책을 찢어 놓기도 합니다. 책상을 칼로 난도질하기도 하고요. 한 번은 책상 위 필통에 모든 연필을 부러트리고 간 적도 있습니다. 이런 일을 몇 번 겪고 나서 민경샘은 자리 확인을 위해 이동 시간마다 교실 사진을 찍습니다.



중학교 1학년에게는 청소시간도 난항의 연속입니다.

초등학교 때 청소해 본 적이 없다는 아이들은 빗자루 사용법을 모릅니다.

청소하는 방법까지 한 달 내내 가르쳐 줬습니다.

청소를 하다 보면 갈기갈기 찢어 흩뿌린 종이 쪼가리, 발에 짓이겨진 가정통신문과 수업 프린트는 아주 흔하게 발견됩니다. 학기 초에 깨끗했던 책상 중 몇 개는 칼로 난도질이 되어 있습니다.

한 한생의 책상 위는 모든 과목의 교과서가 그대로 나와 있습니다.


어이없는 마음을 꾹꾹 누르며 청소를 지도하고 있는데 청소하던 학생이 가방을 메고 교실 밖으로 나갑니다.

아직 끝나지 않아 어디 가냐고 물으니 '저는 빗자루질 다 했는데요'라고 합니다.

민경샘은 다 같이 끝내고 검사받고 가는 거라고 알려주고 특별구역 청소를 살펴보러 중앙 계단으로 갔습니다.

2명의 학생이 청소를 하고 있고 한쪽 구석에 쓰레기가 모아져 있습니다.

이건 뭐 내고 물으니 오늘 결석해서 청소를 못한 주연이 몫이라고 합니다.

한 명이 없어도 나머지 사람들이 청소를 마쳐야 한다고 설명하니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묻습니다.

"왜요?"





'휴......'

학생들을 다 보내고 겨우 교무실 자리에 앉은 민경샘은 조용히 한숨을 쉽니다.

중학교에서 근무하며 수준차이가 많이 나는 수업환경도, 쉴틈 없는 수업 시수도, 끊임없이 밀려오는 행정업무도.... 다 쉽지 않지만

민경샘을 가장 힘들게 하는 건 그동안 견고하게 쌓아왔던 자신의 도덕적 잣대입니다.

학창 시절 크게 말썽 없이 잘 보냈고 교사가 되고 나서는 사회적 시선이 더해져 선량한 시민으로 살아가려고 나름 애쎴습니다. 물론 자잘한 규칙을 위반하거나 마음속으로 누군가를 미워하고 뒷담화를 한 적도 있었지만 적어도 자신의 상식과 기준이 옳다고 믿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초등학교를 졸업한 지 얼마 안 되는 이 어린 학생들이 민경샘의 마음을 흔들고 있었습니다.

당연한 것을 당연한 것으로 모르고

그게 언제든 하고 싶은데로 말하고 행동하는 이 아이들에게

매일매일 당연한 이야기를 반복해서 설명하고 지도해야 하는 이 상황이

민경샘에게는 고역이며 무척이나 난감하기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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