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분주함과 노곤함
뭔가를 계속하고 있지만 뭐를 하고 있는지 정리는 안되고
특별할 것도 없는데 피곤하고
소음 속에 이따금 찾아오는 정적 안에서 느껴지는 우울감
역할 때문에... 수입 때문에...
꼭 해야 하는 일이 아닌
그냥 하고 싶은 일... 머물고 싶은 장소...
20대에는 그런 곳이 도서관이었는데
40대가 된 나에게 그런 곳은 재래시장
그중에서도 이제는 한 달에 한 번은 꼭 가는
꽃 도매시장
서울 한복판 남대문 후미진 골목길
익숙한 오래된 계단을 오르면 나타나는 오래된 파란 간판
이곳에 서면 지난날 모든 것에 열심히였던 내가 잠시 숨을 고르러 들어간 도서관의 두꺼운 유리문이 떠오릅니다.
조화와 만들어 놓은 꽃바구니 섹션을 지나면 펼쳐지는 은은한 향기
지난여름에는 유독 날이 덥고
원래 여름에 꽃이 빨리 시들기 때문에
한 다발에 3~4천 원 밖에 안 했는데
겨울이 되니 가격은 조금 올랐지만 그래도 여전히 합리적인 가격으로 맞이하는 각양각색의 꽃들
한참을 구경하다가 눈에 띄는 이름 모를 꽃
밝은 색과 향기로 자신을 뽐내는 꽃들 사이에서 이름을 알 수 없지만 독특한 겨울 분위기의 꽃
차가운 날씨에 어울리는 분위기에 덥석 구매했네요.
평소 같으면 꽃이름을 물어볼법한데도
그냥 비용을 이체하고 바로 들고 나왔습니다.
솔잎 같은 나무도 같이 다발로 묶여 있어 여리여리한 다른 꽃들보다는 오래 보기를 바라면서요.
집에 돌아와 분홍색 화병에 꽂으니 찰떡~
밖에 있는 소나무와 겨울바람에 흔들리는 꽃을 집안으로 가져온 느낌이네요.
아무리 오래간다 해도 꽃은 시들기 마련...
그래서 그림으로 영원히 간직해보려 합니다.
되도록이면 단순하고 가볍게
굵은 펜으로 강하게 선을 그으며 깊이를 주고
스케치북 안에 담았습니다.
몇 주가 지나 꽃은 사라졌지만
분위기와 감정은 이름 모를 꽃그림과 함께 남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