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여행

[KTX매거진] 꿀맛 가득여름 손님

강원도 춘천 멜론

by 우주

초여름의 온기가 키운 멜론을 맛보러 김유아 셰프와 강원도 춘천에 다녀왔다.


지난해 여름, 춘천의 한 토마토 농장에 갔다가 옆 농장에서 키운 멜론을 맛봤다. 토마토는 상큼하고, 멜론은 무척 달다는 것이 그날의 기억이었다. 이후 가수 김현철의 ‘춘천 가는 기차’를 부르다가도, 닭갈비를 먹다가도 “춘천은 과실이 진짜 맛있어”라는 말을 나도 모르게 내뱉곤 했다. 춘천 농산물에 대한 애정은 올여름 또 하나의 결실로 돌아왔다. 초여름 햇살에 멜론이 탐스럽게 익어 간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춘천으로 향했다. 세상에 이렇게 맛있는 멜론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제대로 알려야겠다는 마음뿐이었다. 타이 요리를 만드는 김유아 셰프와 춘천행 ITX-청춘 열차에 올랐다.


한여름 밤의 꿈만큼 싱그러운 과실

춘천역에서 소양강을 건너 차로 20분쯤 달리면 한적한 농촌에 다다른다. 용화산 능선을 병풍처럼 두른 들판에 비닐하우스가 나란하다. 아프리카·중동 지역이 원산지인 멜론을 기르기엔 하우스가 제격일 것이다. 과실의 단내를 은은하게 풍기는 하우스로 들어서자 후덥지근한 열기가 몰려온다. 하나당 길이 100미터, 폭 5.4미터 규모의 하우스가 총 17동, 그 안에 푸른 잎이 넘실댄다. 입구에서 내부를 살피는 잠깐 사이에도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힌다. 도시 사람이 높은 온도에 당황하는 모습을 보고는 농장 주인 심명섭 대표가 웃는 얼굴로 인사를 건넨다. “덥죠? 그래도 작년보단 견딜 만한 거예요.” 출하를 코앞에 둔 멜론은 태양의 뜨거운 기운을 듬뿍 받아야 한다. 올해는 예년보다 기온이 다소 낮아 성장이 더딘 편이라지만, 6월 초순 오후 2시경 하우스 내부 온도는 40도를 육박했다.

손님을 맞이한 심 대표가 안쪽으로 들어가 멜론 두어 개를 따 오더니 투박한 손으로 숭덩숭덩 썰기 시작한다. 그 모습을 보면서 내심 초조했다. 1년 만의 재회에 설레는 한편, 기대한 만큼 실망할까 봐 걱정스러웠다. “일단 한번 잡숴 봐요.” 복잡한 마음으로 눈앞에 놓인 과실 한 쪽을 집어 들었다. 조심스레 한 입 베어 물자마자 모든 근심이 사라진다. 말랑말랑한 과육에서 감미로운 과즙이 흘러나와 입안을 풍요롭게 한다. 분주한 바깥세상과 달리 한결같은 맛을 선보이는 열매가 새삼 고마웠다. 멜론 농장 첫 방문이자 춘천 멜론 첫 경험자인 김유아 셰프도 호기심 가득한 표정으로 시식에 임했다. 셰프의 커다란 눈이 더욱 동그래지더니 “맛있다!”라는 감탄사가 이어진다. “이 정도면 13~14브릭스예요. 지금부터 하루에 1브릭스씩 올라서 출하할 때쯤엔 20브릭스는 될 거예요.” 당도를 나타내는 단위인 브릭스는 100그램에 함유한 당의 양을 나타낸다. 보통 수박이 10, 참외가 11~12, 복숭아가 12가량이다. 20브릭스, 이토록 달콤한 열매의 정체는 바로 ‘하니원 멜론’이다.


초여름의 푸릇함을 가득 품은 열매

하니원 멜론은 강원대학교 농과대학 이태익 교수가 개발한 국내 품종으로 2009년부터 춘천에서 독점 재배하고 있다. 다른 품종보다 크기는 작아 보여도 속은 실하다. 씨가 있는 중심부부터 껍질에 붙은 열매살까지 과육 전체가 연해, 버리는 부분 없이 알차게 먹는다. 후숙 과정을 거치지 않아도 충분한 맛을 내니 이곳 멜론만 찾는 마니아도 많다. “어떤 손님은 100통씩 사 간다니까요. 그래서 어떻게 보관하느냐고 물어봤죠. 그랬더니 하나하나 썰어서 냉동실에 넣어 두고 여름 내내 먹는대요, 아이스크림처럼.” 단골손님 이야기를 하는 심 대표의 표정에서 30여 년 농부 인생 중 10년 이상을 함께한 멜론에 대한 자부심이 느껴진다.

지난 3월 말에 심을 땐 한 뼘 높이도 되지 않던 모종이 어느새 성인 남성 평균 키를 훌쩍 넘어섰다. 춘천의 맑은 물과 비옥한 토양, 따사로운 햇살과 농부의 애정을 양분 삼아 쑥쑥 컸다. 기다란 줄기마다 동그란 과실이 주렁주렁 매달렸다. 허리를 숙여 자연의 결실을 가만히 들여다본다. 멜론은 크게 네트 멜론과 무네트 멜론으로 나뉘는데, 하니원 멜론은 네트 멜론 중에서도 무늬가 연한 편이다. 열매가 몸집을 키울 때마다 하나둘 늘어나는 네트는 멜론이 성실히 성장했다는 증거다. 농부의 설명을 듣던 김유아 셰프가 고생했다는 의미로 과실 하나를 살며시 토닥인다. 이번에는 밑동에 코를 대고 냄새를 맡아 볼 차례다. “어때요? 밑동에서 단내가 올라오면 ‘이제 다 컸구나’ 생각해요. 그 후에 잎이 노랗게 변하면 멜론이 완전히 익었다는 신호예요.”


달디달고 귀하디귀한 하니원 멜론

푸릇푸릇하던 잎에 노란빛이 도는 6월 중순, 하니원 멜론이 세상 밖으로 나온다. 모종을 심은 지 75일 만이다. 그동안 농부는 밤낮없이 하우스를 오가며 애를 태웠다. 모종이 뿌리내린 후에도 온도, 수분, 바람을 체크하며 과실 하나하나에 애정을 기울였다. 춘천 전역에서 약 23만 주. 연중 딱 한 번 재배하는 하니원 멜론은 출하 후 한 달 안에 물량을 소진한다. 그마저도 서울과 경기 지역의 대형 마트를 중심으로 해 하니원 멜론 맛보기가 하늘의 별 따기다. 올해부터는 새벽 배송을 하는 온라인 플랫폼에서도 소비자와 만난다. 이제 여름날의 춘천으로 여행을 떠나는 사람에겐 이렇게 인사하자. “올 때 메로나, 말고 하니원 멜론.”


INFORMATION

농부의 구슬땀을 먹고 자란 멜론은 춘천원예농협이 운영하는 산지유통센터에서 세척, 분류, 포장 작업을 거쳐 유통된다.

문의 춘천원예농협 033-243-6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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