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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 Oct 24. 2022

[10.02 텃밭일지] #비움

미련 없이 버리는 법

5평 밭에서 자라는 작물은 모두 소중하다. 그래서 잘 버리지 못했다. 지난 봄, 벌레가 시식하고 남은 케일을 수확할 때부터 그랬다. 벌레와 동고동락하는 기분으로 벌레 먹은 잎 하나도 버리지 못하고 집에 가져오곤 했다. 그런데 벌레 먹은 잎이 아니라 바이러스 묻은 잎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깻잎 뒷면에 주황색 점이 우수수 생겼다. 환기가 원활하지 않아 생기는 녹병이란다. 고구마순이 마구마구 자라 깻잎 자리를 침범하는 데다, 깻잎끼리도 오밀조밀한 편인 듯. 간격을 넓게 심어줘야 한다는데, 초보 농사꾼에겐 어려운 일이다. 밭에 빈 자리를 두면 왠지 아까운 마음이 든다. 게다가 모종일 때는 커서 얼마나 자리를 차지할지 감이 오지 않는다. 깻잎뿐 아니라 가지와 고추도 이런저런 병을 얻은 관계로 버려야 할 때 과감하게 처리하기 어렵다. 병든 부분을 피해 어떻게든 먹어보려 애쓰는 마음. 

텃밭 1년차, 망한 수확물을 버리는 일이 아직은 어렵다. 


내일 지구가 멸망하더라도 나는 오늘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

스피노자가 진짜 이 말을 했는지 아닌지는 모르겠다. 다만 스피노자가 지구 종말 하루 전날,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지 않더라도 식물은 계속해서 번식에 성공해낼 것 같다. 

근거1. 몇 주 전 처분한 자색 깻잎이 한쪽 고랑에 새로 터를 잡았다. 뿌리 째 뽑은 후, 고랑 쪽에 잠시 쌓아뒀었는데 그 사이 씨가 떨어지기라도 한 모양이다. 인적이 드물어서인지 나름 잘 크고 있다. 

근거2. 밭 앞쪽에 쌓인 흙에 방울토마토가 자라고 있다. 누가 일부러 이곳에 방울토마토 씨를 뿌리진 않았을 터. 사람들이 오가며 떨군 열매, 혹은 씨앗을 품은 흙이 이곳에 쌓이면서 싹이 난 모양이다. 지반이 단단하지도, 수분이 풍족해 보이지도 않은데 말이다. 

잡초조차 자라지 않는 척박한 땅에서 잘 자라는 작물을 보면서 그저 자연의 생명력에 감탄할 뿐.

가을 무

8월 24일에 뿌려둔 무 씨의 결과물. 1종류 씨앗을 뿌린 걸로 기억하는데 왜 보라색, 흰색 두 종류인지는 모르겠다. 싱싱하게 잘 자라는 중. 올 초에 열무를 키워보겠다고 애썼으나 그 결과는 썩 좋지 않았는데, 가을 무는 성공할 것 같은 예감. 함게 뿌린 배추 씨앗은 수줍어서인지 아직 땅 밖으로 얼굴을 많이 내밀지 않았다. 싹이 하나 났는데, 아주 작다. 다른 사람들의 밭에는 배추가 아주 큼직큼직하게 자랐다. 모종으로 심었어야 하나. 아쉽게도 배추전은 못해 먹겠다. 대신 무청, 무를 활용한 요리를 검색해 본다.   


요약

-오전 10시 30분~11시 40분

-오늘의 한 일: 수확, 물 주기, 호미 질 등

-오늘의 수확물: 깻잎, 고추, 고구마순, 가지(풍년~.~)

매번 가지 2-3개를 겨우겨우 수확하곤 했는데 이번에 아주 많이 수확했다. 대충 10~12개 정도. 

한 가지 더 기쁜 소식은 자잘하게 맺힌 열매가 많아 다음 방문 때도 꽤나 수확할 것 같다는 것. (아님 말고)

추운 날씨에도 가지가 쑥쑥 자라주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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