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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곱창 Feb 18. 2021

비극을 기다리는 마음

마지막 기억

 약 한 달 전에 외할머니가 돌아가셨다. 작년에 치매가 심해지다가 화장실에서 넘어져 입원하셨다. 나이도 96세로 고령이셨고 치매도 심해져 2020년 말에 요양병원에 입원했다. 의사는 이제 걷기도 힘드시고 치매도 점점 심해져 길어야 3개월이라고 했는데 입원 후 딱 3개월 만에 돌아가셨다.

 외할머니가 화장실에 넘어져 입원하기 시작하면서부터 가족들이 점점 우울해졌다. 특히 엄마가 많이 우울해했다. 고령이시고 당연히 언젠간 돌아가실 걸 알지만 그래도 헛헛한 마음은 어찌할 수 없나 보다. 3개월이라는 시한부 판정을 받고 엄마와 편안한 식사나 모임도 마음 편히 못 가졌고 가벼운 당일치기 여행도 부담스러워하셨다. 매일 병원에서 건 전화 소리가 울리지는 않을까 불안해하셨다. 언젠가 올 비보를 매일 마음 졸이며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1월 19일, 새벽에 연락을 받고 3일간 장례를 치렀다. 엄마의 슬퍼하는 모습 끝에 후련함도 보였다. 분명 비극이었는데 모두가 기다리던 비극이 왔고 결국에 그 비극이 다가오니 다들 후련해하기도 했다. 비극을 맞이하는 것보다 기다리는 게 더 고통스러웠나 보다.

 장례가 끝나고 생각해봤다. 다음 비극, 다음 장례는 누구인가. 이젠 엄마, 아빠 소식이었다. 그 비극은 정말 가슴 아플 것 같고 사람은 언젠가 모두 죽는다는 말로는 위로가 되지 않을 것 같다. 할머니의 장례를 기다리는 3개월 시한부가 아니긴 하지만 이제 나도 비극을 기다리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35년간 계속 나를 지켜줄 것 같은 당연함을 뺏길 생각에 벌써 두렵다. 한편으론 할머니처럼 시한부 비극이 덜 고통스러울까 하는 생각도 한다.


 입관식 때 가만히 누워계신 마지막 할머니 모습을 봤다. 결국 삶의 끝에 남는 건 남은 자들의 기억밖에 없는 것 같다. 96년의 인생 끝에 흰 가루가 되어버린 한 사람의 역사가 남긴 건 영하 10도에 안치된 항아리와 남은 자들의 기억과 추억이다.

 이제 부모님의 육체도 20여 년 안에 사라지겠지만 그들이 살아있는 동안, 그리고 평생 내 머릿속에 남겨둘 추억을 많이 남겨두라고,

할머니가 큰 가르침을 주시고 그렇게 떠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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