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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촌자 Aug 25. 2020

천사가 내려온다는 그곳, 엔젤스 랜딩

자이언 국립공원 두 번째 이야기

http://dennis-ernst-blogs.blogspot.com/2016/06/the-subway-in-zion-national-park.html

사방이 암벽으로 둘러싸인 캠핑장. 그 대신 일출 일몰은 그림자만 구경할 뿐이다. 별 기대 없이 카메라 둘러메고 나섰더니 몇 걸음 가지 않아 자이언 캐년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 웨스트 템플에 걸린 아침 햇살을 건진다. 

그 옆으로 펼쳐진 희생의 제단(Altar of Sacrifice)에도 아침 햇살이 문안인사 중이다. 이 봉우리는 옆에서 보니 이름 맛이 살지 않는다. 나중에 멀리서 제대로 한번 살펴봐야겠다.

캠핑장 바로 뒤로 올라오는 해를 보니 오늘 하루도 엄청난 열기를 뿜어낼 듯 벌써 벌겋게 달아오른다.

오늘 일정은 엔젤스 랜딩 트레일 입구에서 출발하여 냉장고 캐년을 지나 바위산을 올라가는 일정. 


엔젤스 랜딩은 1916년 탐험대가 처음 이곳을 지나면서 “여긴 천사나 내려앉을까 사람은 올 수 있는 곳이 아녀!”라고 이야기한 데서 그 이름이 유래하는데 10년 뒤 국립공원 관리소장을 지낸 월터 아저씨가 바위산 스위치백 21개의 공사를 마무리함으로써 일반인들에게도 정상 접근이 가능하게 되었다. 


한 번에 올라가기에 경사가 심해서 지그재그 방식으로 도로나 열차 선로를 설치하는 것을 스위치백이라고 부른다.  도로의 경우엔 차량 후진이 필요 없지만 열차의 경우 후진과 전진을 번갈아가며 오르막을 올라가기에 스위치백이라고 부른다. 

버스에서 내려 트레일에 들어서는 순간. 어라? 뭣이여? 엔젤스 랜딩 클라이맥스 체인 섹션이 출입금지. 한여름 기온이 너무 올라가니 체인이 너무 뜨거워져서 체인을 놓칠 경우 생길 사고를 방지하고자 한 것은 알겠다. 장갑을 챙기라고 하면 될 것을… 애석하지만 오늘은 체인 섹션 전까지만 인연이 닿았나 보다. 암튼 가는 데까지 올라가 보자. 

왼쪽으로 보이는 바위산이 엔젤스 랜딩. 2.5마일의 짧은 트레킹 코스지만 고도차가 커서 2번의 스위치백 구간을 통과해야 한다.

하지만 오늘은 체인 섹션이 문을 닫았으니 첫 번째 스위치백 지나서 보이는 저곳까지만 올라가는 일정. 

길을 따라 올라가니 조금씩 천사가 내려오는 길이 보인다. 

암벽 중간 어디쯤엔 천사들이 쉬어감직한 테라스가 보이고 그 위로는 아기를 품에 안은 엄마의 모습이 보인다.

올라온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되돌아보니 아득하다. 지나온 길은 다 그렇다. 길이라는 것이 알고 나면 그보다 더 쉬운 것이 없고 모르면 평생을 찾아 헤매게 된다. 

벽돌과 담벼락이 잘 어우러진 구간. 1차 스위치백이 이곳에서 마무리된다.

바위 치고는 연약한 사암지대라 폭약을 쓰지도 못하고 경사가 심해서 중장비를 쓰지도 못한 채 오롯이 정과 망치로 월터팀이 이 길을 터준 덕분에 편하게 올라왔다.  그나저나 경치는 갈수록 금상첨화로구나.

그냥 내려가기 왠지 허전한 마음에 안쪽 계곡으로 들어가 본다.

낮에 본 새가 부엉이였음을 알겠고 그 둥지가 이곳에 있었던 것.

야행성이라 낮에는 잘 돌아다니지도 않는 놈이다. 새끼 먹인다고 낮에 저리도 바삐 날아다닌 것. 


날아가는 새를 렌즈에 담으려면 셔터스피드가 최소한 1/1600초는 되어야 한다. 어찌나 빠르던지 셔터 스피드를 만질 틈조차 찾지 못했다. 지금 보니 독수리에 비해서 부엉이 머리가 크긴 하다.  

고맙게도 잠시 날개를 펼쳐주니 그나마 속도가 느려져서 한 장 더 담을 수 있었다.

혹시라도 부엉이 둥지가 보일까 싶어 두리번거리지만 잘도 숨겨놓았는지 LA촌놈 눈에 띄진 않는다. 아쉽지만 여기서 발걸음을 돌린다.

이 사진 한 장 담았으니 오늘은 다 얻었다. 체인 잡고 올라가서 보는 광경은 또 다를 테니 사진으로 대신 구경이라도 하자.

Photo by Kelsey Johnson from Pexels

정상에서 바라보는 자이언 캐년은 탁 트인 시원함이 호쾌하다.

내려오는 길에 풀 뜯는 사슴을 발견하고 렌즈를 들이대는데 이 녀석이 한참이 지나도 꼼짝을 하지 않는다. 알고 보니 한참 전 그 자리에서 화석이 된  듯, 무심하게 덩그러니 놓인 사슴 바위. 

자이언 마운틴 카멜 하이웨이라고 쓰고 고갯길이라고 읽어도 되는 시닉드라이브 위에서 바라본 웨스트 템플 마운틴. 아침 일출 구경하다가 햇살 걸린 모습을 구경한 바로 그 산이다.

고갯길을 조금 더 올라오면 웨스트 템플 산 바로 옆에 있는 희생의 제단이 보인다. 산에서 피가 흐르는 것처럼 보인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 잘 안 보이신다구요? 

이제 잘 보이시쥬? 산화철이 저리 흐른 덕분에 저 산은 홀리한 이름을 갖게 된다.

카멜 하이웨이 두 번째 터널. 첫 번째 터널과 마찬가지로 사암지대의 취약한 지반으로 인해 폭약이나 중장비를 사용하지 못하고 수작업으로 터널을 뚫었다. 


첫 번째 터널은 터널 입구가 좁고 높이도 낮아 캠핑카와 버스는 별도 통행료 $15을 내야 하고 차선도 한가운데로 이동해야 한다. 그래서 번갈아가며 일방통행으로 운영되고 있다. 

출처:http://dennis-ernst-blogs.blogspot.com/2016/06/the-subway-in-zion-national-park.html

터널을 보니 생각나는 곳이 있다. 출입 인원이 제한되어 있어 추첨을 통해서 허가증을 받을 뿐만 아니라 왕복 9마일, 14.4킬로미터의 트레일이라 이번 일정에선 포함시키지 않았던 서브웨이 트레일. 어느새 나도 모르게 다음 기회에 렌즈에 담아볼 요량으로 추첨 신청서를 만지작거린다. ^^

이스트 게이트 바로 옆, 원주 옆면에 장기판 모양의 무늬가 있는 체커보드 메사. 여기까지 오면 자이언 국립공원 동쪽 끝까지 다 본 것. 이제 다시 방향을 돌려 터널 쪽으로 향한다.

길가에서 겸손하게 나선형 회전에너지 보르텍스(vortex) 모양을 하고 있는 사암 덩어리. 보르텍스 하면 단연 세도나가 으뜸이다. 그곳은 또 언제 어떻게 인연이 닿을지 궁금하다.

진흙으로 발라놓은 듯한 사암의 연약함은 몇 번의 비바람에 언제든 모양을 바꿀 태세다.

커다란 아치(The Great Arch) 위로 보이는 캐년 오버룩 전망대. 

지온 캐년을 마지막 날 브리지 마운틴을 배경으로 열심히 웨스트 템플을 렌즈에 담고 있는 걸 애들 엄마가 한 장 챙겨준다. 고맙구로.


https://www.youtube.com/watch?v=uqEn-1Uv6ls&feature=youtu.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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