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녹차라떼샷추가 Oct 05. 2020

내 삶을 허투로 쓰고 싶지 않아 육아일기를 쓴다.

직장인 아빠의 1년간 육아기록 『아빠, 토닥토닥』 연재물 - 2/100

시작된 진통, 이렇게 기쁠 수가


늦은 오후, 만삭 아내는 집에서 무화과잼을 만들고 있었다. 출산 예정일을 꽉 채운 상황이라 언제 진통이 시작되도 이상하지 않았다. 나는 긴장되고 초조해서 아내에게 편히 쉬라고 했지만, 아내는 출산 전 나에게 무화과잼을 꼭! 선물로 주고 싶다고 했다. 아내는 출산하면 2주간 산후조리원에 들어갈 예정이었다. 그동안 집에서 혼자 밥 챙겨 먹을 남편이 걱정이 되었나 보다. 그런데 아내의 사랑이 담긴 무화과잼은 먹을 수 없었다.


진통이 시작됐다. 병원에서는 진통 주기가 7분 내로 들어오면 출산 준비하러 오라고 했는데, 무화과잼 만드는 사이 아내의 진통 주기는 5분대로 줄어 있었다. 우리는 바로 택시를 부르고 미리 준비해둔 가방을 챙겼다. 병원에 기쁜 목소리로 전화를 했다. "이제 아기가 나올 것 같아요!"


돌이켜 보면 임신 기간 40주를 채운 건 우리 부부에게 기적과도 같은 일이었다. 임신 사실을 알고나서 기쁜 마음으로 병원을 찾았는데, 병원에서는 태반이 자궁벽에 위태위태하게 붙어 있는 상황이라 유산될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그날 아내와 나는 고통스러운 마음을 안고 돌아왔다. 그렇지만 한번 희망을 가져보기로 했다. 태명도 '찰떡이'로 지었다. 태아가 엄마 자궁에 찰떡하고 붙어 있으라는 의미였다.


희망을 붙드는 과정은 결코 쉽지 않았다. 아내는 임신 초기 4개월간 하루종일 침대에 누워 생활했다. 침대에서는 머리, 팔, 다리만 움직일 수 있었고, 허리와 엉덩이는 움직일 수 없었다. 옆으로 돌아누울 수도, 뒤척일 수도 없었다. 자궁이 흔들리면 유산될 확률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하루에 한 두번 화장실만 겨우 다녀왔을 뿐 식사도 침대에 누워서 해야했다. 몸이 건강하고 운동을 좋아하는 아내에게 이 기간은 그 어떤 세월의 흐름보다 길게 느껴졌을 것이다.


희망이 이뤄질 수 있다는 기대가 와르르 무너지기도 했다. 아내 극도로 안정을 취했는데도 임신 기간 동안 유산 조짐이 여러번 나타났다. 병원에 입원해 유산방지주사를 맞고 며칠간 입원하기를 몇 차례 반복했다. 그럴 때마다 아내와 나는 초조했고, 불안했고, 걱정했다. 무엇보다 부모로서 아이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무력함을 느꼈다. 그저 하나님께서 이 상황을 견딜 힘을 주시길 기도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지막까지 희망을 붙잡는 수밖에 없었다. 임신 36주가 지나자 담당의사는 가능한 빠른 시일 내에 아기를 꺼내는 게 좋겠다고 권유했다. 태반이 떨어지면 아기의 생명이 위험할 수 있기 때문에 조금 이르긴 하지만 안전하게 출산하자고 얘기였다. 나와 아내는 가능하면 아기가 스스로 나올 때까지 기다리고 싶다고 했다. 의사는 대신 언제든지 병원에 올 수 있도록 준비를 하고, 매주 상황을 확인해 보자고 했다.


한울이는 우리 부부가 바라던 희망처럼 40주를 엄마 자궁에 찰떡 붙어 있었다. 초음파를 볼 때면 아내와 나는 한울이가 어디 잘못되지는 않았을까 불안한 마음이 먼저 들었다. 다행히 한울이는 엄마 자궁 속에서 건강하게 잘 자라주었다. 그리고 오늘, 이제 자기는 다 자랐으니 세상 밖으로 나가겠다고 엄마에게 신호를 보낸 것이다. 아내가 정상적으로 진통을 느낀 것 그 자체가 우리 부부에게 큰 기쁨이었다.


생명을 바라는 마음은 절실하다. 부모인 우리는 한울이를 살리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쏟아 부었다.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한울이도 살기 위해 최선을 다했으리라. 태어날 생명뿐만 아니라 죽어가는 생명도 마찬가지이다. 살아 있는 모든 생명은 내일을 갈망한다. 우리의 삶은 그런 절실함을 통해 유지되고 있다.


삶을 허투로 쓰고 싶지 않아졌다. 살아 있는 동안 내게 가장 중요한 것들에 집중하기로 했다. 내 삶을 부를 축적하는 데에 쓰고 싶지도, 다른 사람 위에 군림하는 데에 쓰고 싶지도 않았다. 회사에서 상사 눈치보며 시간낭비하는 일 하지 않기로 했다.


무엇보다 내가 이룬 가족과 가능한 시간을 많이 보내고 싶었다. 아내와 한울이와 함께 보내는 시간 속에 내 삶의 이유와 기쁨이 있다고 믿어졌다. 그래서 육아일기를 쓰게 되었다. 내 삶의 이유와 기쁨을 발견하기 위해. 그리고 내 삶은 가치있고 기쁨이 가득하다는 사실을 기록으로 남기기 위해.

매거진의 이전글 출산한 아내를 대신해 육아의 고통은 내가 견뎌보겠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