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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녹차라떼샷추가 Oct 11. 2020

출산한 아내를 대신해 육아의 고통은 내가 견뎌보겠다.

직장인 아빠의 1년간 육아기록 『아빠, 토닥토닥』 연재물 - 3/100


2019년 9월 8일 저녁 7시 즈음, 병원에 도착했다. 자궁문이 열리면서 아내는 진통을 더 강하게, 더 자주 느꼈다. 진통을 측정하는 기기는 측정 범위를 넘어선 진통을 기록하고 있었다. 아내는 극심한 진통을 소리 한 번 지르지 않고 참아다. 간호사가 진통 기록을 보고는 아내에게 무통주사를 놓았다. 그제서야 아내 얼굴이 조금 편안해졌다. 아내 옆에서 긴장하고 있던 나도 한숨 돌릴 수 있었다. 마침 장인어른과 장모님이 병원에 오셔서 밖으로 마중을 나갔다.


아내가 혼자 있는 사이 응급상황이 발생했다. 자궁 속에 있는 한울이의 심박수가 두 번이나 급격히 떨어졌다고 했다. 아기한테 산소가 제대로 공급되지 않아 한울이가 질식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당시 병원에는 5명의 간호사가 근무하고 있었는데, 모든 간호사들이 아내에게 달려와서 응급조치를 취했다. 아내는 산소호흡기를 착용했고, 심호흡을 하는 등 한울이에게 가능한 많은 산소를 보내려고 노력했다. 아내는 걱정스러운 마음에 간호사들에게 "우리 아기 괜찮은거죠?"라고 물었다고 한다. 그런데 간호사들은 대답없이 한울이 심박수만 심각하게 지켜볼뿐이었다. 아내는 출산 직전까지도 아기가 잘못될지도 모른다는 불안을 겪었다. 다행히 얼마 지나지 않아 한울이의 심박수는 정상 수준으로 돌아왔다.


밤 11시 30분 경, 분만이 시작됐다. 분만대 위에서 아내가 진통을 느끼고, 힘을 주고, 숨을 고르 과정이 반복되었다. 아내의 고통이 맞잡은 손을 통해서 내게 전달되었다. 아내는 눈을 감고 있었는데, 이마에는 땀이 맺혀 있었고, 입술은 바짝 말라 있었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상황 속에서 아내는 진통이 느껴질 때마다 모든 힘을 쥐어 짜내고 있었다. 분만실에 들어간지 20여분이 지났을 무렵, 의사가 "자 이제 한번만 더! 조금만 더!! 이제 다 나왔어요!!!"라고 외쳤다. 아내도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걸 직감한 듯 이를 악물었다.


아내의 출산 과정을 지켜보는 건 힘든 일이었다. 무엇보다 아내가 고통을 느끼는 걸 보면서도 남편인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내가 아내의 진통을 대신 느껴줄 수도, 출산을 대신 해줄 수도 없었다. 그저 아내 손을 잡아주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아내에게 출산할 때 얼마나 아팠냐고 물어본 적이 있다. 아내는 지금까지 경험했던 신체적 고통 중 가장 극심한 고통이긴 했는데, 정신이 혼미해서 아픈 줄도 모른 채로 지나갔다고 했다. 나는 그 말을 정신줄 놓을 정도의 고통이라고 이해했다. 아내는 고통스러웠을 임신과 출산 과정을 씩씩하게 버텨냈다. 고마웠다.


아내가 출산하는 순간 한 가지 다짐을 했다. 그 어떤 핑계로도 육아에서 오는 고통을 아내에게 미루지 않겠다는 다짐이었다. 임신과 출산 과정에서의 고통은 아내가 견뎌냈지만, 육아를 시작하고 나서의 고통은 내가 더 견디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아내의 임신과 출산을 보며 감동스러웠던 건 고통 없이 기쁨만을 느꼈기 때문이다. 앞으로 아내에게 육아가 감동스러운 경험이라는 걸 느끼게 해주고 싶다. 현실적으로 직장생활을 하는 내가 육아의 모든 걸 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절반의 역할은 해야겠다 생각다. 그게 소중한 생명을 낳아 준 아내에게 내가 줄 수 있는 유일한 보답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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