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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녹차라떼샷추가 Oct 17. 2020

이제 나는 어떤 아빠가 되어야 하나?

직장인 아빠의 1년간 육아기록 『아빠, 토닥토닥』 연재물 - 4/100


2019년 9월 8일 밤 11시 57분, 한울이가 태어났다. 간호사는 능숙한 손길로 한울이 겉에 묻은 체액과 피를 닦고, 탯줄을 잘라냈다. 손가락과 발가락, 입 천장, 척추뼈 등을 살펴보는 신체검사와 손가락을 움켜쥐는지와 같은 반응을 보는 반사검사가 이어졌다. 마지막으로 키와 몸무게를 쟀다. 키는 53cm, 몸무게는 3.3kg였다. 간호사는 한울이가 눈에 띄는 이상은 없어 보인다고 했다. 검사를 마친 후 한울이는 깨끗한 천으로 꽁꽁 싸매졌다. 천에 감싸여진 느낌이 엄마 자궁에서의 느낌과 비슷했는지 한울이도 울음을 그치고 안정을 되찾았다. 한울이는 아직 분만대에 누워 있던 아내의 젖 냄새를 맡고는 바로 신생아실로 옮겨졌다. 이 모든 과정이 5분 안에 이뤄졌다. 분만실에서 한울이와 첫 만남은 그렇게 짧게 지나갔다.


아내가 임신했을 때에도 나는 한울이의 존재를 받아들이지 못했다. 아내는 먹는 것 하나를 골라도 한울이에게 영향을 미친다며 어떤 성분이 들어가는지 꼼꼼히 확인을 했다. 나는 아무거나 먹어도 괜찮다고 했다. 내가 잘 알아서 그런 소리를 한 게 아니라, 사실 귀찮았기 때문이다. 아내가 임신한 10개월간 매일 같이 한울이가 어떤 아이일지 상상해 봤지만, 그 아이는 내 머릿 속에만 머물러 있었다. 아빠가 되었다는 걸 이해했지만, 가슴 깊이 차오르는 감동은 없었다.


한울이를 두 눈으로 본 순간, 나는 비로소 아빠가 되었음을 실감했다. 갓 태어난 한울이는 입술을 파르르 떨며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한울이의 팔다리도 갈 곳을 잃은 채 허공을 휘젓고 있었다. 마치 겁에 질린 개구리 같다고 생각했다. 한 생명으로 이 세상을 살아가기에 너무나 연약해 보였다. 그 연약함을 두고 볼 수 없어 내 품에 안고 싶었다. 그리고 겁에 질린 한울이의 마음을 위로해 주고 싶었다. 두려워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나는 너를 축복한다고, 네가 태어나길 간절히 기다렸다고, 그리고 무사히 태어나줘서 고맙다고 그런 말들을 해주고 싶었다. 머리가 아닌 가슴 깊숙한 곳에서부터 해주고 싶은 말이 차올라왔다.


이제 나는 한울이에게 어떤 아빠가 되어야 할까? 고민이 되었다. 내 아버지는 내게 어떤 아버지였는지 돌이켜 보았다. 내 아버지는 항상 나를 믿어 주셨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은 적극적으로 응원해 주고, 내가 힘들 때는 괜찮다고 다 지나가는 일이라며 위로해 주셨다. 내가 잘못했을 때는 스스로 잘못을 깨달을 때까지 기다려 주셨다. 중학생 때 락음악을 하겠다고 아버지께 말하니, 아버지는 할 맘이 있으면 제대로 해보라며 기타에 앰프에 마이크까지 셋트로 사주며 응원해 주셨다. 중학생 때 주말마다 친구네 집에서 잔다고 거짓말하고 PC방에서 밤 세워 게임을 했을 때도 아마 다 알고 계셨을 것이다. 그런데도 나무라지 않으셨다. 대학생 때 술 마시고 싸움에 휘말려 경찰서에 갔던 적도 있는데 그때도 나무라지 않으셨다. 아버지가 항상 나를 신뢰한다는 것을 알기에 어느 순간부터는 나 스스로 올바로 생각하고 행동해야 겠다고 다짐하며 살아 왔다. 또한, 나를 가장 아껴준 아버지가 나를 신뢰해 준 덕분에 나도 나 스스로를 믿을 수 있게 되었다.


내 아버지가 내게 그랬듯이 나도 한울이를 믿어 주는 아빠가 되고 싶다. 시장에 파는 물건처럼 스스로의 존재 가치를 증명하도록 강요하는 이 세상을 물건이 아닌 자기 자신으로 살아내려면 아무런 조건 없이 자신을 믿어 주고 응원해 주고 기다려 주는 사람이 필요하다. 한울이에게 내가 그런 존재가 되어 주면 좋겠다. 그런데 내가 그런 존재가 되어 줄 수 있을까? 솔직히 자신은 없다. 새삼 내 아버지는 내가 느꼈던 것보다 더 많이 나를 사랑했었겠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이제 시작이다. 용기를 내 보자. 한울이 아빠, 잘 할 수 있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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