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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녹차라떼샷추가 Oct 18. 2020

아빠와 자녀의 관계는 신생아 때부터 시작된다.

직장인 아빠의 1년간 육아기록 『아빠, 토닥토닥』 연재물 - 5/100


출산 전 아내한테 꼭 산후조리원에 들어가야 하는 거냐고 은근슬쩍 물어본 적이 있다. 산후조리원이 정확히 뭐하는 곳인지도 모르겠는데, 비용은 2주에 300만 원이 훌쩍 넘었다. 상당한 부담이었다. 아내는 차가운 눈초리로 나를 째려보고는 "응"이라 짧게 답했다. 산후조리원은 우리나라에만 있는 거라느니, 외국에서는 여자들이 출산하고 몇 시간 뒤에 바로 활동한다느니 그런 소리를 해볼까 하다가 등짝을 한대 세게 맞을 것 같아서 그만두었다. 그렇게 병원에서 퇴원한 우리는 생후 3일 된 한울이를 안고 조리원에 들어갔다.


산후조리원은 산모들을 위한 공간이었다. 모든 서비스가 산모들이 출산 후에 아무런 걱정없이 몸 회복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맞춰져 있었다. 산모들 대신 24시간 신생아를 돌봐주고, 산모들 아침/점심/저녁에 간식까지도 챙겨줬다. 붓기가 빠지는 마사지, 골반 교정 마사지, 모유가 잘 나오는 마사지 등 다양한 마사지 프로그램들도 준비되어 있었다. 산후조리원에 들어가 보니 아내가 왜 산후조리원에 들어가고 싶어했는지 이해했다. 산모가 산후조리원에 들어 가는 것은 임신/출산으로 고생한 자신에게 주는 2주간 휴가를 주는 것과 같았다. 그리고 보통 남편들도 아내를 산후조리원에 보내고 2주간 집에서 자유시간을 만끽한다고 한다.


아쉽게도 나는 회사 휴가까지 내고 산후조리원에서 아내와 함께 꼬박 2주를 같이 생활했다. 아내는 남편인 내게 시시콜콜한 얘기들을 재잘재잘 말해야 기력이 회복되는 사람이다. 그리고 잠을 잘 때도 나와 연결되고 싶다며 발가락이라도 맞대고 잠 드는 사람이다. 그런 아내는 내게 산후조리원에서 같이 있어주면 좋겠다고 했다. 내게 직접적으로 요구한 건 아니지만, 눈치가 그랬다. 8년을 함께 살면 아내가 말하지 않아도 아내 마음을 알게 되더라. 아내가 산후조리원에 들어가면 못 만났던 친구들도 만나고, 보고 싶었던 전시회도 가고, 저녁 약속도 갖고 술도 마시려고 계획했었다. 모두 헛된 꿈으로 끝나버렸지만.



산후조리원에 있으면서 신생아 한울이와 단둘이 시간을 보내곤 했다. 아내는 마사지 받으러 가고, 좌욕하러 가고, 식사하러 가고, 다른 산모들하고도 모임을 갖느라 바빴다. 나는 할 일이 없었다. 신생아실에 한울이를 맡겨두고 쉴 수도 있었는데 그러지 않았다. 혼자서는 심심하기도 했지만, 한울이하고 같이 있다보면 재밌는 일이 생겼다. 한울이가 눈을 껌뻑 뜨고 나를 쳐다보기도 하고, 살짝 미소를 짓기도 했다. 웃는 모습 한번 사진으로 찍어보겠다고 20분간 가만히 앉아 카메라 뷰파인더로 한울이를 관찰하기도 했다. 오물조물 젖병 무는 모습은 사랑스러웠고, 토닥토닥 등을 두드려주면 꺽!하니 작고 귀여운 트름 소리도 들을 수 있었다. 똥을 싸서 기저귀를 갈아줘야 할 때가 가장 당황스럽긴 했지만, 차츰 요령을 터득해 갔다. 나중에는 아내한테 한울이 기저귀 갈아주는 요령을 전수하는 수준까지 올라갔다.  


산후조리원 생활을 하면서 내가 아빠로서 한울이와 온전한 관계를 맺어가고 있음을 느꼈다. 무엇보다 한울이와 단둘이 시간을 보내는 게 두렵지 않았다. 오히려 그 시간들이 즐거웠다. 내가 젖이 없는 게 안타까울 정도였다. 나는 한울이와 친구 같은 사이가 되고 싶다. 그러려면 신생아 한울이와도 친구가 되어야 했다. 만약 내가 신생아 한울이가 똥 싸고, 울고할 때마다 아내한테 한울이를 맡기게 된다면 나와 한울이의 관계는 아내 없이 유지되지 못할 것 같았다. 누군가 있어야만 유지되는 관계는 온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어쩌면 산후조리원 생활이 직장인 아빠들에게 자식과 온전한 관계를 형성할 수 있는 처음이자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르겠다. 직장 생활을 하다보면 주양육자가 되지 못하고, 육아의 대부분을 아내 혹은 다른 사람에게 의존할 수 밖에 없다.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에는 내 자식에게 아빠 역할을 하고 싶어도 뭘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는 상황이 발생한다. 가정 생계를 책임지는 많은 아버지들이 자식과 멀어지게 된 이유가 마음이 없었기 때문은 아닐 것이다. 그보다는 아빠로서 자식에게 무엇을 어떻게 해야할지 몰랐기 때문이 아닐까. 아빠와 자식의 관계는 신생아 때부터 시작된다고 믿는다. 똥 기저귀 갈고, 트름시키고, 울음 달래고, 젖병 물릴 줄 모르는 아빠가 나중에 자식이 커서 자식의 마음을 알아주는 아빠가 되지는 않을 것 같다.  


<산후조리원 생활 타임랩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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