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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녹차라떼샷추가 Oct 29. 2020

육아는 자녀의 온전함을 발견하는 과정이다.

직장인 아빠의 1년간 육아기록 『아빠, 토닥토닥』 연재물 - 9/100


한울이는 며칠 전까지는 하루종일 잠을 잤다. 신생아 같이 잔다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었다. 모유 먹다가도 금세 잠이 들곤 했다. 그럴 때면 팔다리를 주물주물, 귀를 만지작만지작 잠을 깨워가며 모유를 먹여야 했다. 간혹 살짝 힘겹게 눈커플을 들러올리기도 했다. 아내와 나는 "이것 봐바~ 한울이가 눈 떴어!"라며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한울이에게 얼굴을 들이밀었다. 눈 뜬 한울이한테 우리 얼굴을 가장 먼저 보여주고 싶었나 보다.


이제는 한울이가 눈을 뜨고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30분씩 눈을 뜨고 있기도 했다. 눈을 뜨면 둘 중 하나의 상황이 벌어진다. 칭얼대거나, 멍 때리거나. 칭얼대면 안아서 달래주면 됐다. 그런데 멍 때리고 있을 때는 뭘 해줘야 할지 고민이 되었다. 그냥 멍 때리고 있도록 두자니 한울이가 너무 심심해 보였고, 그때마다 내 얼굴을 보여주자니 내가 힘들었다. 그래서 아내에게 어떻게 하면 좋을지 조언을 구했다. 아내는 보통 이맘때부터 아기에게 흑백초점책을 보여준다고 했다. 초점책에는 단순한 도형 그림이 그려져 있다.


한울이 눈 앞에 초점책 하나만 펼쳐놨을뿐인데 혼자서도 잘 논다. 정말 초점책을 뚫어져라 쳐다본다. 초점책을 보여주면 칭얼대지도 않았다. 가끔은 초점책을 보다가 혼자서 웃기도 했다. 단순한 모형 그림일뿐인데 오랫동안 응시하고 있는 한울이 모습이 신기했다. 거기다가 재밌어 하기까지 하다니. 초점책 보는 것이 한울이의 인생 첫 놀이였던 셈이다. 누가 알려주지 않아도 한울이는 이미 혼자서 노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신생아 한울이에게 하나부터 열까지 다 아내와 내가 가르쳐줘야할 것 같지만, 한울이는 이미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건 대부분 갖고 태어난 것 같다. 한울이가 즐겁게 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한울이는 내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이미 혼자서 재밌게 노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걱정했던 것보다 부모로서 내 역할이 중요하지 않겠다는 생각을 했다.


미켈란젤로가 다비드상을 조각할 때 "나는 대리석 안에 들어있는 천사를 보았고, 그가 나올 때까지 돌을 깎아냈다."고 말했다고 전해진다. 부모 역할도 이와 비슷하리라. 분재를 하듯 한울이를 나와 아내의 욕망 속에 가두면 안될 것 같다. 그보다는 한울이가 온전히 가지고 태어난 것들이 발견될 수 있도록 먼저 관찰해야 되겠다. 부모의 역할은 자녀의 삶에 불필요한 것들을 걷어내는 것만으로 충분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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