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울이는 며칠 전까지는 하루종일 잠을 잤다. 신생아 같이 잔다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었다. 모유 먹다가도 금세 잠이 들곤 했다. 그럴 때면 팔다리를 주물주물, 귀를 만지작만지작 잠을 깨워가며 모유를 먹여야 했다. 간혹 살짝 힘겹게 눈커플을 들러올리기도 했다. 아내와 나는 "이것 봐바~ 한울이가 눈 떴어!"라며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한울이에게 얼굴을 들이밀었다. 눈 뜬 한울이한테 우리 얼굴을 가장 먼저 보여주고 싶었나 보다.
이제는 한울이가 눈을 뜨고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30분씩 눈을 뜨고 있기도 했다. 눈을 뜨면 둘 중 하나의 상황이 벌어진다. 칭얼대거나, 멍 때리거나. 칭얼대면 안아서 달래주면 됐다. 그런데 멍 때리고 있을 때는 뭘 해줘야 할지 고민이 되었다. 그냥 멍 때리고 있도록 두자니 한울이가 너무 심심해 보였고, 그때마다 내 얼굴을 보여주자니 내가 힘들었다. 그래서 아내에게 어떻게 하면 좋을지 조언을 구했다. 아내는 보통 이맘때부터 아기에게 흑백초점책을 보여준다고 했다. 초점책에는 단순한 도형그림이 그려져 있다.
한울이 눈 앞에 초점책 하나만 펼쳐놨을뿐인데 혼자서도 잘 논다. 정말 초점책을 뚫어져라 쳐다본다. 초점책을 보여주면 칭얼대지도 않았다. 가끔은 초점책을 보다가 혼자서 웃기도 했다. 단순한 모형그림일뿐인데 오랫동안 응시하고 있는 한울이 모습이 신기했다. 거기다가 재밌어 하기까지 하다니. 초점책 보는 것이 한울이의 인생 첫 놀이였던 셈이다. 누가 알려주지 않아도 한울이는 이미 혼자서 노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신생아 한울이에게 하나부터 열까지 다 아내와 내가 가르쳐줘야할 것 같지만, 한울이는 이미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건 대부분 갖고 태어난 것 같다. 한울이가 즐겁게 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한울이는 내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이미 혼자서 재밌게 노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걱정했던 것보다 부모로서 내 역할이 중요하지 않겠다는 생각을 했다.
미켈란젤로가 다비드상을 조각할 때 "나는 대리석 안에 들어있는 천사를 보았고, 그가 나올 때까지 돌을 깎아냈다."고 말했다고 전해진다. 부모 역할도 이와 비슷하리라. 분재를 하듯 한울이를 나와 아내의 욕망 속에 가두면 안될 것 같다. 그보다는 한울이가 온전히 가지고 태어난 것들이 발견될 수 있도록 먼저 관찰해야 되겠다. 부모의 역할은 자녀의 삶에 불필요한 것들을 걷어내는 것만으로 충분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