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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녹차라떼샷추가 Nov 08. 2020

수다쟁이 아내는 아기에게 끊임없이 말을 건다.

직장인 아빠의 1년간 육아기록 『아빠, 토닥토닥』 연재물 - 13/100



아내는 특별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 10분간 있었던 일을 1시간도 넘게 설명할 수 있는 수다능력이다. 게다가 말을 할수록 에너지가 충전되는 사람이다. 아내가 말을 할 때 도통 지치는 법이 없다. 평소에는 아내 말을 잘 들어주지만, 가끔 피곤할 때는 혼자서 좀 쉬어야겠다고 아내에게 양해를 구한다. 그러면 아내는 못내 아쉬운 표정을 짓는다. 그렇지만 3분이 채 지나지 않아 "여보~ 이제 다 쉬었어?" 라며 말을 시작한다. 내가 아내를 피해 방으로 들어가면 방까지 쪼르르르 쫓아와서 말을 건내곤 한다.


다행히 아내는 밝은 사람이다. 말은 많아도 어둡고 힘든 얘기보다는 그날그날 있었던 신기하고 재밌는 얘기를 주로 한다. 결혼한 지 8년 가까운 지금까지도 다른 사람을 욕하거나 흉을 본 적도 없다. 그래서 일단 아내와 대화를 시작하고 나면 항상 꺄르르꺄르르 유쾌하고 재미있다.


아내는 말도 못 하고 듣지도 못 하는 신생아 한울이에게도 꾸준히 말을 걸어주었다. 아내가 모유수유할 때면 "한울아~ 엄마 방금 사과 먹었다. 엄마 쭈쭈 맛있어? 엄마 쭈쭈에서 사과 맛 나?" 라고 얘기하곤 했다. 기저귀를 갈아줄 때는 "한울아~ 엄마가 기저귀 갈아줄게~ 지금 바지를 벗길거야~ 아이고! 오줌도 많이 쌌네~ 이제 뽀송뽀송하지? 기분 좋겠다~" 이런 사소한 대화(사실은 독백)를 끊임없이 이어갔다.


한울이를 데리고 집에 온 뒤로 2주간 산후관리사의 도움을 받았다. 산후관리사는 동네에서 소위 '베스트 이모'라 불리는 베테랑이었다. 하루는 산후관리사가 아내에게 말을 건냈다. "제가 여러 엄마들하고 같이 있어봤지만, 아기한테 이렇게 말을 많이 걸어주는 엄마는 처음 봤어요." 산후관리사가 말하기를 엄마들 대부분은 신생아한테 말을 많이하지는 않는다고 했다. 엄마들은 아기가 대답을 하지 않으니 혼자서 말하는 상황을 어색해 한다고 했다. 산후관리사는 엄마가 아기에게 말을 많이 걸어줘야 엄마도 아기도 서로 가까워질 수 있다고 믿고 있었다.


아내는 육아가 처음인데도 본능적으로 아기를 대하는 방법을 알고 있는 듯 했다. 한울이한테 말을 많이 거는 이유를 아내에게 물어 본 적이 있다. 아내는 한울이가 말은 못 하지만 자신의 말을 다 듣고 있는 것처럼 느낀다고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한울이를 하나의 인격체로 존중해 주고 싶다고 했다. 아내가 한울이를 인격체로 존중하는 방법 중 하나는 한울이에게 어떤 행동을 하기 전에 미리 설명해 주는 것이라고 했다. 나는 그저 아내가 워낙 수다스럽기 때문에 말 못 하는 신생아에게까지도 말을 많이 한다고 생각했다. 아내 말을 들으니 내가 완전 잘못 생각하고 있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아내가 내 아이의 엄마여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내는 밝은 에너지를 가지고 있고, 다른 사람을 존중하고 배려할 줄도 아는 사람이다. 한울이는 엄마와 함께 생활하며 자연스럽게 엄마의 모습을 닮아가게 될 것이다. 주변 어른들이 한울이를 어떻게 키우고 싶냐고 물어보곤 하는데, 그럴 때면 아내를 닮으면 좋겠다고 대답을 한다. 한울이가 나중에 커서 아내처럼 수다쟁이가 되는 상황은 조금 두렵긴 하지만, 집에서 웃는 일은 더 많아지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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