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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녹차라떼샷추가 Nov 05. 2020

하하하. 아기가 새벽에도 잠을 안 자.

직장인 아빠의 1년간 육아기록 『아빠, 토닥토닥』 연재물 - 12/100


새벽 2시. 한울이가 울기 시작했다. 벌써 며칠째 밤마다 숨 넘어갈 듯 운다. 아내는 자고 있었다. 한울이를 안고 조용히 거실로 나갔다. 아내는 하루 종일 한울이를 돌보느라 지쳤을 것이다. 조금이라도 아내가 편히 잠들게 해주고 싶었다. 그래야 아내가 오늘 또 하루 한울이를 돌볼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회사에 가서 틈틈이 쉬면 된다고 생각했다.


한울이를 달래 보려 토닥토닥 등을 두드렸다. 마음에 안정이 되도록 자장가도 불러줬다. 한울이한테 사랑한다는 말도 해줬다. 그리고 조심스레 부탁도 해봤다. '오늘은 아빠가 너무 피곤해서 그러는데 그만 울고 잠들어 주면 안 될까?' 그러나 한울이는 좀처럼 진정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한울이 울음소리는 날카로운 화살이 되어 내 고막을 뚫고 지나갔다. 그때마다 뇌가 위아래로 흔들리는 느낌이 들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내 정신은 혼미해져 갔다. 자장가를 부르며 불쑥불쑥 올라오는 짜증과 화를 겨우 가라앉혔다. 현실 육아는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매콤했다.


인내심이 바닥날 무렵 아내가 잠에서 깼다. 아내는 나 대신 한울이를 달래 보겠다고 했다. 괜찮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내 상태가 괜찮지 않았다. 아내한테 한울이를 맡기고 다시 이불속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아내라고 별 다른 방법이 있는 건 아니었다. 한울이는 아내 품에 안겨서도 계속 울었다. 이불을 머리 끝까지 올려 울음소리를 막아보려 했지만 소용없었다. 결국 나도 잠들지 못했다. 아내와 내가 몇 번을 번갈아 가며 한울이를 달랜 끝에 겨우 한울이를 재울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한울이 속싸개를 풀어준 것이 문제였다. 태어난 지 3주가 되던 날 한울이 속싸개를 풀어줬다. 팔다리를 고정시킨 속싸개 안에서 한울이는 인상을 쓰며 몸을 꿈틀거렸다. 내 눈에는 한울이가 속싸개를 답답해하는 것처럼 보였다. 육아책에도 아기가 싫어하면 속싸개를 굳이 해주지 않아도 된다고 적혀 있었다. 속싸개를 벗어난 한울이는 기지개도 켜고, 팔다리도 쭉쭉 뻗었다. 한울이의 자유로운 몸짓을 보니 내 마음도 한결 평안해졌었다. 그때는 몰랐다. 한울이가 밤마다 울었던 이유가 속싸개 때문이었다는 것을.


아직 한울이는 속싸개가 필요했다. 속싸개 다시 감싸준 뒤로 한울이는 한결 편안해 보였다. 밤에도 잠을 잘 잤다. 한울이는 팔다리를 마음껏 움직일 수 있는 자유보다는 어디로 뻗어나갈지 모르는 팔다리를 포근하게 감싸주는 안정이 더 필요했던 것 같다.


한울이 속싸개를 풀어주었던 건 순전히 내 생각이었다. 억압과 규칙을 답답해하고 자유와 유연함에 집착하는 내 성향으로 한울이가 속싸개를 답답해할 것이라고 단정했다. 한울이가 필요로 하는 것을 주기보다는 내가 주고 싶은 것을 강요했다. 태어난 지 3주밖에 안된 신생아에게 허공에 붕 떠 있는 듯한 불안감으로 내몰았던 셈이다.



"잘 모르고 무식한 사람이 신념을 가지면 무섭습니다” 2006년, KBS2의 '불량아빠클럽'이라는 예능에서 이경규 씨가 했던 말이다. 부모가 아기를 키우는 방법에 정답은 없다. 그렇지만 부모의 양육방식이라는 이름으로 까딱 잘못하면 아기가 원하지 않는 것을 강요하게 될 수 있을 것 같다. 내가 생각하는 좋은 부모는 명확한 양육방식을 가진 부모라기보다는 아기를 세심하게 관찰하고, 아기의 표현을 경청할 줄 아는 부모이다. 아기가 우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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