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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녹차라떼샷추가 Oct 19. 2024

도쿄에서 아내에게 보내는 편지 (5일차)

5살 아들과 아빠, 둘만의 일본 여행

항상 고마운 아내에게,


오늘은 제 인생에서 정말 뜻깊은 날이었어요.

이제 막 한울이를 재우고 일어났는데

한울이가 잠들기 전에 뭐라고 말했는 줄 알아요?

"아빠 사랑해"라고 말했어요.

불 꺼진 방 침대 위에 나란히 누워 있었는데

갑자기 배에 올라타 사랑한다고 말하더라고요.

제가 물어보지도 않고 시키지도 않았는데도요.

너무 놀라한울이에게 다시 확인했어요.

"한울아~ 뭐라고? 다시 한번 말해줘!!"

한울이는 지못해 "사랑한다구"라고 답했어요.

한울이가 먼저 사랑한다고 말한 건 처음이에요!

당신한테 사랑고백받을 때보다는 못하지만

아직도 그 감동과 설렘의 여운이 가시질 않네요.

한울이 아빠라서 너무 행복하네요!!


어제까지만 해도 나쁜 아빠라며 자책했었어요.

특히 어제 욱! 해서 한울이 뒷통수를 때린 일이

저한테도 꽤나 큰 충격으로 남아 있더라고요.

한울이에게 어떤 아빠가 되어야 할지

고민하느라 새벽까지 잠을 못 잤어요.

오늘도 한울이와 하루를 보내는데

순간순간 그 기억이 떠올라서 미안한 마음에

한울이를 보며 웃음 짓기가 어렵더라고요.

그렇게 하루종일 마음 고생 하고 있었는데...

조금 전 한울이의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에

아빠로서 부족함을 용서받은 기분이에요.

완벽한 아빠가 니라도

사랑한다 말해주는 한울이가 그저 고맙네요.


다행히 한울이는 건강을 회복하고 있어요.

이제 체온도 더 이상 오르지 않고요.

해열제 안 먹여도 37.5를 넘진 않더라고요.

잠도 잘 자고, 밥도 잘 먹고 있어요.

이제야 한시름 덜 수 있겠네요. 휴우.

한울이 아플까 봐 얼마나 걱정했던지요.

이제 저만 잘 쉬면 될 것 같아요.

저는 아직 몸살 기운이 조금 남아 있요.

항상 걱정하고 응원해 줘서 고마워요.

당신 덕분에 용기를 내서 버틸 수 있었어요.




오늘도 <이노카시라 공원>에 다녀왔어요.

아침에 도시락이랑 과일 사 가지고

공원에서 피크닉 분위기를 만끽했답니다.

오늘은 평일이라 오전에 사람이 많지 않았어요.

이 넓은 공원의 나무와 들꽃, 열매, 호수, 하늘

모두 저와 한울이를 해 존재하는 것 같았어요.

공원에 가만히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풍요로워지는 느낌이 들었어요.

한울이도 마음껏 자연을 탐구해서 좋아했고요.

여기저기 뛰어다니며 도토리도 주었는데요.

예쁜 도토리 몇 개는 엄마 주겠다며 가져왔어요.

식물이라 한국에 가져갈 수는 없겠지만

일본에서도 엄마 생각하는 마음은 알아주세요.


아노카시라 공원에도 보트를 탈 수 있더라고요.

우에노 공원에서는 백조보트를 탔는데

오늘은 날씨가 선선해서 노 젓는 배를 탔답니다.

고요한 호수 위에서 한울이와 단둘이 앉아

노를 저으며 물 위를 거니는 기분이 좋았어요.

한울이가 보트 위에서 장난칠까 봐 걱정했는데

생각보다 제 말을 잘 따라줬어요.

위험한 장난도 하지 않고요.

저한테 호숫물을 뿌리긴 했지만요... (부글부글)

한울이가 노 젓는 배는 무섭다고 하더라고요.

특히 제가 보트 위에서 양옆으로 움직일 때마다

보트가 물 위에서 휘청휘청 흔들렸는데

한울이는 보트가 물에 빠질 것 같았나 봐요.

그래서 저한테 움직이지 말라고 하더라고요.

본인도 조금 얼어붙었는지 얌전히 있었고요.

덕분에 안전하게 뱃놀이를 잘했어요.


아참. 한울이한테 서운한 일도 있었어요.

뱃놀이 마치고 아이스크림을 사줬는데

저는 한 입도 안 주고 혼자 다 먹은 거 있죠?

아이스크림 콘이었는데 자기는 콘 싫다며

콘만 먹어달라고 아이스크림 내밀더니

아이스크림 한 입 먹으려니까

"안돼!!!!!!! 내 거야!!!!!!"라며 소리를 쳤어요.

주변에 사람들이 몇 명 앉아 있었는데

그 모습을 보고 다들 웃더라고요.

저도 웃었죠. 어이가 없어서.

한울이가 기특한 면이 많지만

앞으로 엄마아빠한테도 감사한 마음을

가질 수 있도록 잘 가르쳐야 할 것 같아요.

한울이한테 엄마아빠가 해주는 것들이

당연한 게 아니라는 걸 깨닫게 해 주자고요.

그래야 엄마아빠한테 고마워할 테니까요.

당신도 같이 도와주세요.




공원에서 잘 놀고 오후 늦게 호텔로 돌아왔어요.

한울이는 또 목욕하자며 재촉하더라고요.

제가 짐 정리하는 사이에 한울이는

혼자서 옷을 다 벗고 이미 탕에 들어갔더라고요.

제가 짐 정리마저 하고 들어간다고 하니까

한울이가 제게 나름 협박을 했는데 귀여웠어요.

"열까지 센다! 그때까지 아빠 안 들어오면

오늘 한울이 혼자서 목욕한다~ 하나~"라면서요.

마음속으로는 '아주 좋은데?'라고 생각했지만

사랑둥이 한울이에게 어떻게 그럴 수 있겠어요.

협박에 못 이기는 척하던 일 멈추고 들어갔죠.

"안 돼! 아빠는 같이 목욕할 거야!" 라면서요.

한울이 협박이 통한 것처럼 일부러

우당탕탕 거리며 급하게 들어가는 척도 했고요.

제가 욕실에 들어오니까 한울이는

"아빠~ 오늘 한울이랑 목욕 못 할 뻔했어~"라며

한번 봐준 것처럼 말하더라고요.

협박이 통했다고 생각했는지 좋아하더라고요.

그런데 한울이와 목욕은 언제나 기분 좋네요.

하루에 쌓인 피로가 싸악 풀릴 정도로요.


오늘 저녁도 도시락을 먹었어요.

본의 아니게 일본 와서 도시락을 많이 먹네요.

한울이 컨디션은 괜찮아졌는데

아직 식당 가서 먹는 건 좀 불편한가 봐요.

숙소에서 밥 먹고 싶다고 여러 번 말하더라고요.

오늘은 보양식을 좀 먹고 싶었는데... 어쩔 수 없죠.

다행히 호텔 근처 재래시장에 가보니

포장해 올 수 있는 음식이 많이 있었어요.

한울이는 오니기리와 튀김을 사

저는 장어덮밥 사케를 사 왔어 먹었답니다.

장어를 먹으니 기운이 좀 나네요.

사케를 마셔서 취해서 그런가 싶기도 하고요.

여하튼 편지를 쓰는 이 순간에도 기분이 좋네요.




저는 참 복 받은 사람이에요.

모두 당신과 한울이 덕분이에요.

저라는 사람은 부족하고 보잘것없지만

당신은 저를 남편으로서 항상 존중해 주고

한울이는 를 아빠로서 항상 사랑해 주네요.

두 사람 덕분에 행복이 무엇인지 깨닫고 있어요.

그런 두 사람이 제 삶에는 무엇보다 소중해요.

두 사람도 저로 인해 행복을 느낄 수 있도록

늘 최선을 다할게요.


내일은 이노카시라 동물원에 갈 예정이에요.

원래 오늘 다녀올까 했는데

더 이상 다른 활동을 하지 않아도

부족함이 없이 느껴지더라고요.

한울이와 보내는 하루가 너무 짧게 느껴져요.

그만큼 밀도 높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증거겠지요.

기치조지에는 당신과도 함께 오고 싶어요.

저랑 한울이가 느꼈던 모든 감각을

당신에게도 전해주고 싶네요.

그만큼 오늘 하루는 만족스러웠어요.

비록 몸은 서로 떨어져 있지만

당신을 생각하는 마음만은

한시도 잊은 적이 없답니다.


오늘 편지는 이만 줄일게요.

내일 또 연락할게요!

당신도 수고 많았어요.


언제 어디서나 당신을 생각하는 남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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