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는 결과가 아니라 확률을 관리한다.
신입사원 시절, 회사의 신사업 검토에 참여했어요. 여러 후보 중 ‘스마트팜’이 가장 유망하다고 판단됐죠. 회사는 로봇과 빅데이터 기술을 보유하고 있었고, 5년 치 투자 자금도 확보한 상태였어요. 마침 정부는 스마트팜을 신성장 동력으로 밀고 있었어요. 게다가 중동 시장에서도 수요가 급증할 것으로 예상됐어요. 역량, 정책, 수요. 모든 신호가 긍정적이었어요. 그렇게 기대감을 가지고 사업을 시작했죠.
하지만 결과는 실패였어요. 농민 단체의 강한 반발 때문이었어요. 대기업이 농민의 수익마저 빼앗을 것이라는 인식은 쉽게 바뀌지 않았죠. 회사는 생산품 전량을 해외 수출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여론은 돌아서지 않았어요. 정부는 농민 단체 반발을 극복하지 못하고 정책 지원을 철회했어요. 회사 역시 평판을 지키기 위해 사업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어요.
결과는 실패였으나 의사결정 과정은 합리적이었어요. 데이터와 논리를 근거로 체계적으로 검토했고, 리스크 대응 방안도 준비했었어요. 농민 반발 가능성도 인지했지만, 실현 가능성이 낮다고 판단했죠. 당시 실무팀은 체감상 사업 실패 확률을 20% 미만으로 생각했어요. 실패 확률이 존재했지만 성공 가능성이 높았기에 당시에는 합리적인 선택이었어요.
의사결정을 게임에 비유하면, 바둑보다는 포커에 가까워요. [1]
바둑은 모든 정보가 공개돼 있어요. 자신의 선택과 상대방의 선택이 고스란히 드러나게 되죠. 게다가 게임 내에 운이 작용할 부분도 없어요. 즉 실력과 연산 능력이 승패에 미치는 영향은 절대적이라는 의미예요. 예를 들어 이창호 9단의 승률은 약 80%로 압도적이에요. 2017년 은퇴한 인공지능 알파고의 승률은 99%였고요.
반면 포커는 운과 불확실성이 결과를 크게 좌우해요. 처음 받은 카드, 상대의 카드, 그리고 앞으로 나올 카드 모두 예측할 수 없어요. 유리한 카드를 받는 건 운에 달려있죠. 그렇기에 세계 챔피언이라도 일반인과 붙으면 승률이 55~60%에 불과해요. 아무리 실력이 좋아도 5~10%의 차이밖에 만들지 못하죠. 인공지능 프로그램도 비슷한 수준이에요. 실력이 결과에 미치는 영향이 크지 않은 셈이죠. 그렇기에 포커 챔피언은 승률보다 매 순간의 '베팅'에 집중해요. 승리 확률이 높을 때는 판돈을 키우고, 낮을 때는 줄이는 식이죠.
현실의 의사결정 역시 통제할 수 없는 요소가 훨씬 많아요. 아무리 잘 판단해도 실패할 수 있어요. 물론 그 반대로 운이 좋아 성공할 수도 있어요.
좋은 의사결정은 성공을 보장하지는 않지만, 성공 확률을 높이는 과정이에요. 포커 챔피언은 수천 가지 상황을 반복 학습하며 감각처럼 베팅 확률을 익히는 훈련을 해요. 그렇게 일반인보다 5~10% 높은 승률을 만들어내죠. 리더도 마찬가지예요. 의사결정자로서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감정과 편견을 배제하고, 가능한 대안 중 성공 확률이 높은 선택을 반복적으로 연습해야 해요.
의사결정을 확률적 관점으로 바라보면 결과를 대하는 태도가 바뀔 수 있어요.
첫째, 다양한 결과를 전제로 대비할 수 있어요.
의사결정은 성공 확률이 가장 높은 대안을 선택하는 과정이에요. 그렇지만 성공 확률이 100%가 아닌 이상, 실패 확률도 존재해요. 그리고 실제로 낮은 확률의 사건도 현실에서는 종종 발생해요. 예를 들어, 영국이 EU에서 탈퇴하는 브렉시트(Brexit)를 앞두고 도박사들 중 오직 20%만이 국민투표 통과를 예상했었어요. 확률적 관점에서는 이런 예외적 결과를 '예상 밖의 사건'이 아니라 '발생 가능한 사건'으로 인식해요. 그래서 기대와는 다른 결과가 나오더라도 당황하기보다는, 그 가능성을 전제로 대응 전략을 세우게 돼요. 즉, 결과를 관리할 준비로 시선이 옮겨가는 것이죠.
둘째, 불필요한 책임 추궁이 줄어요.
결과가 좋지 않으면 특정 인물에게 책임을 묻는 경우가 많아요. 조직에서는 이런 방식이 가장 단순하고 명확해 보이기 때문이에요. 실패의 원인을 ‘사람의 잘못’으로 규정하면 문제의 복잡성이 줄어들고, 조직 전체의 책임도 피할 수 있죠. 하지만 실제로는 시장 변화나 예측 불가능한 변수처럼 개인이 통제할 수 없는 요인이 작용하는 경우가 많아요. 확률적 관점은 성공과 실패가 운과 불확실성의 결과일 수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게 해요. 따라서 결과만으로 누군가의 판단을 단정하는 방식은 비합리적이라는 걸 깨닫게 되죠. 그 대신 “그 당시의 판단이 주어진 정보 속에서 최선이었는가?”라는 질문이 자리 잡아요. 이런 기준은 구성원을 방어적으로 만들기보다, 학습하고 개선하려는 태도로 이끌어요.
셋째, 결과에 초연해져요.
확률적 관점에서는 의사결정의 결과를 성공이나 실패로 단순하게 나누지 않아요. 다양한 결과는 확률적 사건의 일부로 이해되죠. 의사결정 경험이 적을 때에는 한두 번의 결과가 지나치게 크게 느껴져요. 그렇지만 경험이 쌓일수록 결과는 점차 자신이 가진 ‘성공 확률’에 수렴한다는 걸 깨닫게 돼요. 따라서 기대에 못 미친 결과를 마주하더라도, 그때 최선의 선택을 했고 앞으로도 그렇게 할 능력이 있다면, 장기적으로 더 많은 긍정적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게 돼요. 이런 사고방식은 리더가 단기적인 결과에 휘둘리지 않고 꾸준히 더 나은 의사결정을 이어갈 수 있도록 돕는 마음의 안전장치가 돼요.
리더의 의사결정은 포커의 베팅과 같아요. 가장 높은 확률에 조직의 자원을 거는 행위죠. 좋은 의사결정을 통해 성공 확률을 단 5%만 높여도 장기적으로는 엄청난 차이가 생겨요. 예를 들어 한 해 100건의 결정을 내린다면, 5%의 개선으로 5건을 더 성공시킬 수 있어요. 10년이면 그 차이는 50건으로 벌어지죠. 작은 차이 같지만, 이런 미세한 차이가 쌓이면 조직의 성과는 완전히 다른 궤도를 만들어낼 수 있어요.
리더의 자리에 오르면 수없이 많은 결정을 마주하게 돼요. 기억해야 할 점은, 의사결정은 한 번의 정답을 맞히는 일이 아니라 수많은 시행 속에서 더 나은 확률을 만들어가는 과정이라는 거예요. 눈앞의 결과에 일희일비하기보다 매번의 판단을 통해 의사결정 수준을 조금씩 높여가는 훈련이 중요해요. 결과가 좋다고 방심하지 말고 나쁘다고 좌절하지 말아요. 장기적으로는 조직의 성과가 결국 리더의 의사결정 역량에 수렴하니까요.
[1] Duke, A. (2018). Thinking in bets: Making smarter decisions when you don’t have all the facts. Portfolio/Pengu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