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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진우 Aug 13. 2018

집나간 20번 펭귄

아델리펭귄을 잡아라.

    로거를 달아 바다로 내보낸 펭귄 중 마지막 20번은 사나운 녀석이었다. 나는 성격이 온순한 펭귄보다 사나운 녀석들을 좋아하는데, 로거를 달 때의 미안함이 상대적으로 덜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성깔있는 개체들이 위험한 바다에 나갔다가 다시 돌아올 가능성이 높다고 믿기 때문이다. 

    2017/18 남극 연구 시즌에는 바이오로거(Bio-logger)라 불리는 장비를 펭귄의 몸에 부착하는 연구를 수행했다. 로거는 GPS 위성추적장비와 잠수깊이 측정 장비 두가지를 부착했다. 이러한 로거를 통해 조사지역의 펭귄들이 얼마나 먼거리까지 이동하고, 얼마만에 둥지로 복귀하는지 알 수 있을 뿐더러, 얼마나 깊이 잠수하고 먹이활동을 하는지 알 수 있다. 조사지역인 Cape Hallett은 12월경에도 바다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해빙이 녹지않아 펭귄들은 해빙위로 수십km를 걸어서 바다에 나가야 했다. 로거를 수거해 데이터를 확인하면 해빙의 분포범위에 따라 펭귄들의 행동영역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알 수 있을 터이다. 2017년 12월 21일 하루동안 교대중인 20마리의 펭귄에게 로거를 부착했다. 

아델리펭귄의 등에 로거를 부착중인 필자. 펭귄은 눈을 가리면 얌전해진다. 부착동안 펭귄을 고정하기 위해 펭귄 몸에 딱 맞는 주머니를 이용했다.
바이오로거를 부착한 아델리펭귄. 좌측의 펭귄 등에 작은 로거가 부착되어 있다.


    그 마지막 20번 펭귄은 20마리 중에서도 가장 성깔이 있어서 유독 기억이 남았다. 로거를 부착하기 위해 포획했을 때 강하게 반항하면서 부리로 쪼고 날개로 때리는 통에 포기하고 다른녀석에게 부착해야하나 하는 생각을 했을 정도였다. 그 녀석이 로거를 달고 바다로 나간지 4일이 지나도 집에 돌아오지 않고 있었다. 대부분의 펭귄들은 이미 두 번 넘게 교대하고도 남을 시간이다. 총 20개의 로거를 펭귄의 등에 달아 보낸 후 아직 돌아오지 않은 건 20번과 8번 두 녀석 뿐이다. 녀석들이 돌아오지 않아 캠프철수일도 늦어진 상황이다. 바다에는 펭귄을 잡아먹는 무서운 표범물범이 기다리고 있고, 하루에도 수십마리의 펭귄들이 표범물범에게 희생된다. 간혹 새끼가 굶어죽은 둥지는 바다로 나간 짝이 돌아오지 않은 경우가 많았다. 아직 돌아오지 않은 두 펭귄이 불행히도 표범물범에게 희생되었을지도 모른다. 제발 그 상황만은 아니길 바라며, 캠프 철수일도 몇일 늦추었다. 가능한 녀석들이 돌아올때까지 기다려볼 생각이었다. 


바다에 나갔던 펭귄들이 배속에 먹이를 가득 담고 돌아오고 있다.
둥지로 돌아온 펭귄이 새끼에게 배속의 먹이를 토해주고 있다.

    그 녀석들 중 한마리가 지금 바다에서 돌아오고 있다. 해빙위를 걸어오는 20번 펭귄을 멀리서 쌍안경으로 발견했을 때는 환호성이라도 지르고 싶은 심정이었다. 둥지까지 걸어오는 몇 분이 일년처럼 길게 느껴졌다. 보통 바다에 나갔다 돌아온 펭귄은 둥지에서 기다리던 짝과 바로 교대하고 배에 가득 채워온 먹이를 새끼에게 토해 주기 시작한다. 때문에 펭귄이 얼마나 많은 먹이를 먹고 왔는지 알기 위해서는 교대하기 전에 잡아 무게를 재고 로거를 회수하는 것이 좋다. 자칫 재포획이 늦어져 교대를 해버리면 짝이 바다로 나가버리기 때문에 새끼를 돌보고 있는 펭귄을 잡아야해서 부담이 크다. 우리가 펭귄을 잡아 로거를 제거하고, 측정하는 동안 둥지를 비워 놓으면 어디선가 보고있을 도둑갈매기가 새끼를 채가버릴 수도 있다. 영악한 도둑갈매기들은 사람들 주위를 맴도는데, 사람을 피해 펭귄이 도망갔을 때 빈 둥지의 알이나 새끼를 사냥하기가 좋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때문에 펭귄번식지 내에서 이동할때는 주변에 도둑갈매기가 없는지, 둥지를 버리고 도망가는 펭귄이 없는지 주의깊게 살펴야 한다. 도둑갈매기에 의해 희생당하는 새끼 펭귄들은 내가 어쩔 수 없다지만, 자칫 나 때문에 새끼가 잡혀간다면 죄책감에 그날은 내 기분도 엉망이 되버리니까. 

호시탐탐 펭귄 알과 새끼를 노리는 도둑갈매기. 사람주위를 맴돌며 펭귄이 둥지를 비우기를 기다린다. 


    20번 펭귄은 우리를 매우 경계하고 있었다. 아마도 몇일 전에 한번 잡혔던 기억이 남아있는 모양이다. 둥지근처까지 다 와서도 한동안 둥지로 돌아가지않고 해안가에서 서성이고 있다. 맘을 졸였지만, 다행히 슬금슬금 둥지로 다가오는 녀석을 뒤에서 조용히 다가가 다리를 낚아 챘다. 둥지에서 떨어진 곳으로 옮겨 무게를 재고, 등에 달고있는 짐(로거)을 떼주었다. 아직 남은 펭귄이 한마리 더 있지만, 작업을 마치고 나니 한결 홀가분한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마음이 안일해졌던 모양이다. 되도록 둥지 옆에 펭귄을 놓아주고 새끼와 짝의 소리를 들려준 다음 놓아 줬어야 했는데, 얼른 자기집에 찾아가리란 마음으로 포획했던 곳에서 바로 펭귄을 놓아주었다. 대부분의 펭귄들은 그 많은 펭귄 둥지들 사이에서도 기가막히게 자기의 둥지를 찾아가곤 했으니까.

    

    당연히 이녀석도 바로 둥지로 찾아가리라 생각했던게 실수였다. 녀석은 내손에서 벗어나자마자 바다로 향해 가기 시작했다. 어라? 이건 뭔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할 찰나 녀석은 이미 해빙위를 걷고 있다. 아마도 사람에게 잡혔던 순간의 공포가 둥지로 돌아가야 한다는 마음보다 컸던 모양이다. 안되겠다 싶어 동료들을 둘로 나눠 해빙을 앞질러가 둥지방향으로 몰아가기로 했다. 이 녀석이 바다로 나가버리면 언제 돌아올지도 모르고, 그사이 배가 고픈 새끼들이 어떻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다행히 해빙 한구석에 쉬고 있던 녀석을 앞질러 더 이상 바다로 가지 못하게 막을 수 있었다. 조심조심 둥지방향으로 펭귄을 몰아갔지만, 녀석은 집요하게 바다방향으로 가려고 우리를 피해 다녔다. 넓은 해빙위에서 포위를 할 수도 없었다. 한쪽에서 잠시 쉬는 녀석을 발견하고는 일단 진정되기를 기다려 보기로 했다. 녀석이 우리를 볼 수 없는 장소로 이동해 숨어서 녀석의 행동을 지켜보았다. 10분. 20분.30분...시간이 지나도 도통 움직일 생각을 안한다. 도저히 안되겠다 싶어 다시 두조로 나누어 슬금슬금 녀석을 둥지방향으로 몰아갔다. 


    아뿔싸. 잘가던 녀석이 돌연 방향을 틀어 우리쪽으로 달려오기 시작했다. 잘못하다가 바다로 나가버리면 낭패인 상황. 그물도 가져오지 않아 맨손으로 잡기도 어려운데, 어째야하나 하는 순간 같이 있던 연구원 후배가 그 녀석을 붙잡았다. 잡았다기 보다는 다리 사이로 도망가던 녀석이 후배의 가랑이에 낀 상태였다. 재빨리 녀석의 다리를 잡아올렸다. 그리고 펭귄의 두 눈을 가려 둥지로 데려갔다. 짝과 새끼의 소리를 들으면 안정이 되리라. 둥지근처에서도 처음엔 눈을 가린채 새끼들 소리가 들리도록 잡고 한동안 가만히 있었다. 조금 안정이 되었다 싶을 때 펭귄을 둥지앞에 내려놓고 눈을 가린 주머니를 풀어 새끼를 볼 수 있도록 했다. 잠깐 발광하던 녀석은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새끼에게 다가가 둥지에서만 보이는 특유의 행동을 했다. 다행이다.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같이 있던 동료들과 하이파이브를 하고, 멀찍이 떨어져 한동안 지켜보니, 새끼에게 먹이를 주느라 정신이없다. 이정도면 완전히 정신을 차린 모양이다. 한순간의 실수로 둥지의 새끼들을 위험에 빠지게 할 수도 있던 상황이었다. 그런 일이 생기면 연구자들 또한 한동안 트라우마를 겪을 수 밖에 없다. 좀 더 주의깊게 행동해야겠다는 다짐을 하고 캠프지로 복귀했다. 긴장이 풀리며 다리에 힘이 빠졌다.  

새끼에게 먹이를 주는 20번펭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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