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진우 Aug 07. 2018

4차원 아델리펭귄

캠프지에 놀러온 아델리펭귄

    남극에서 내가 만난 펭귄은 젠투, 턱끈, 아델리, 황제, 마카로니, 임금 등 총 5종이다. 마카로니펭귄과 임금펭귄은 우연히 한두마리를 만났던 터라 성격까지는 알기 어려웠다. 두 종을 제외한 나머지 펭귄들은 번식지에서 자주 보다보니 저마다 다른 성격을 가지고 있음을 알게되었다. 사람에 대해 호기심이 가장 많은 펭귄은 황제펭귄이다. 사람들이 다가가면 그 육중한 몸으로 한걸음씩 다가와 조심스레 쳐다보곤 했다. 육상에서는 천천히 걸어다니며 그 덩치만큼이나 온순해서 사람이 접근해도 크게 놀라거나, 당황하는 기색이 없다.  다가가면 다가가는 만큼 멀어지고, 가만히 있으면 또 일정거리 다가오기도 했다. 한참을 쳐다보다가도 흥미가 떨어지면 그자리에서 가만히 엎드려 자거나, 슬금슬금 다른 지역으로 멀어지곤 했다. 젠투펭귄, 턱끈펭귄, 아델리펭귄은 동일 속(Genus Pygoscelis)의 펭귄이다. 크기도 비슷하고 사는 곳도 비슷하다. 이 세 종은 서로 번식지도 공유하는 경우가 많고, 동일지역에 세 종이 모두 번식하기도 한다. 분포범위는 세 종 중 아델리펭귄이 가장 남쪽까지 번식한다. 진정한 남극 펭귄은 황제펭귄과 아델리펭귄이라고 할 수 있다.  두 종만 남극 대륙의 깊숙한 지역까지 번식하기 때문이다.  턱끈펭귄은 남극반도에서부터 아남극권까지 번식하고, 젠투펭귄은 남극반도의 끝부분에서 아남극의 섬들까지 번식한다. 젠투펭귄과 턱끈펭귄은 번식 반경이 대부분 겹치지만, 턱끈펭귄이 젠투펭귄보다는 남극지역에 더 가까이 번식한다.

    

    남극에서 세 종의 펭귄을 만나면 금세 세 종의 펭귄이 저마다 다른 성향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세 종 중 가장 온순한 종은 젠투펭귄이다. 생김새만 봐도 온순하게 생긴 이 종은 사람이 다가가도 크게 반응하지 않고, 번식지에서도 별다른 공격반응이 없거나, 머리를 흔드는 경계반응만 할 뿐이다. 이와는 다르게 턱끈펭귄은 매우 사나운데, 번식지에서 만나면 부리와 날개로 공격을 하는 통에 자칫 무릎 주변으로 물리고 맞아서 피멍이 드는 경우도 많았다. 포식자인 도둑갈매기가 번식지로 날아들면 젠투펭귄은 집단전체가 고개를 흔드는 무리방어(Mobbing)를 하는 반면, 턱끈펭귄은 개별적으로 부리로 쪼는 (pecking) 공격행동을 보인다. 두 종의 포식자에 대한 방어행동이 차이를 보이는 것이다. 물론 젠투펭귄도 둥지에 위해를 가하는 경우 쪼는 행동을 하기도 하지만, 턱끈펭귄의 그것과는 차이가 있었다. 아델리펭귄의 번식지에서의 행동은 젠투보다는 턱끈펭귄과 비슷하다. 접근하는 사람에 대해 직접 공격하는 개체가 많기 때문이다. 다만, 거의 모든 개체가 공격하는 턱끈펭귄에 비해서 공격하지 않거나 경계만 하는 아델리펭귄 또한 많다. 어쩌면 젠투펭귄과 턱끈펭귄의 중간적이라고 얘기하는게 더 정확할수도 있겠다.


    지난 겨울 남극 Cape Hallett 아델리펭귄 번식지에서 장기캠프를 하며 아델리펭귄의 번식생태를 관찰했다. Cape Hallett은 한국사람으로는 최초로 방문하는 지역으로 장보고기지에서 북쪽으로 약 350km 떨어져있어 기지에서 오가며 연구하기가 어렵다. 우리팀은 이곳에서 연구활동을 하기위해 캠프를 설치하고 10일씩 3차례에 걸쳐 캠프를 운영했다. 첫번째 캠프는 11월 말이었는데, 이때는 아델리펭귄이 모두 알을 품고 있는 시기였다. 이 시기에 알을 품고 있는 개체들은 대부분 수컷이다. 암컷은 알을 낳은 후 바다로 떠나 먹이활동을 하다 부화시기가 가까워지면 둥지로 돌아온다. 둥지를 지키는 수컷 아델리펭귄들은 사람이나 포식자가 둥지로 다가오면 매우 사납게 방어하지만, 알을 품지 않고 돌아다니는 펭귄들은 공격적이지 않고 사람에게 호기심을 느껴 다가오기도 한다. 장보고기지는 11월부터 1월까지는 백야기간이라 해가 지지 않는다. 한밤중에도 대낮처럼 환하지만, 기온은 급속히 떨어져 펭귄들의 활동도 뜸해지고, 낮보다 돌아다니는 개체가 적다. 낮기온은 영하 10도정도지만, 밤에는 영하 20도가 넘게 떨어지기 때문에 대부분 동물들의 활동도 줄어든다. 둥지를 지키지 않는 펭귄들도 번식지 근처에서 배를 깔고 바닥에 누워 자거나, 몸을 웅크리고 체온을 유지한다. 


둥지에서 알을 품는 아델리펭귄
11월경 번식지의 아델리펭귄들이 알을 품고 있다. 이 시기에 알을 품는 개체들은 대부분 수컷이다. 


    자정에 가까운 시간에 하루를 마무리하고 내 텐트로 돌어가던 길이었다. 아델리펭귄 한마리가 텐트사이로 걸어오고 있었다. 펭귄 번식지와 캠프지 사이의 거리는 약 300미터 정도 떨어져있고, 바다와는 반대방향이기 때문에 캠프지에서 아델리펭귄을 보는 일은 흔치 않다. 낮 동안에는 사람들의 왕래가 잦으니 잘 오지 않다가, 조용한 밤에 처음보는 텐트에 호기심을 느낀 아델리펭귄이 다가왔던 모양이다. 나를 바라보고 두리번거리던 아델리펭귄은 가만히 서 있자 슬금슬금 나에게 다가왔다. 한참을 서로 대치하며 바라보다가, 궁금증을 해결이라도 했다는 듯이 무심히 오던길을 돌아 캠프지를 유유히 빠져나갔다. 볼일 끝났어~ 하는 느낌이었다. 

아델리펭귄 한마리가 캠프지에 다가왔다.

    사람이 남극에 진출한 것은 100년 남짓. 수천년동안 이곳에서 번식하던 아델리펭귄에게 사람은 아직은 익숙하지 않은 신기한 동물일 터이다. 원래 없던 새로운 물건들이 자신들의 번식지와 가까운 곳에 생겨나자 호기심을 느끼고 다가왔을 것이다. 2년전 처음 이곳에서 캠프를 할 때는 번식지와 500미터 이상 떨어진 곳에서 캠프를 했다. 꽤 먼거리에도 불구하고, 텐트의 화려한 색깔 때문인지 많은 수의 아델리펭귄들이 수시로 캠프지에 다가왔다가 쓱 쳐다보고 다시 번식지로 돌아가곤 했다. 이런 아델리펭귄들을 바라보면 호기심에 가득한 어린아이들을 보는 느낌이다. 둥지를 지키는 펭귄들은 잠재적 위협요인이 될지도 모를 사람들을 경계하고 공격하는데 반해, 돌아다니는 펭귄들은 사람을 딱히 겁내하지 않고 궁금한듯 다가왔다. 

2016-17시즌 캠프지에 아델리펭귄들이 다가왔다. 
텐트에서 식사중에 밖을 내다보니 아델리펭귄들이 캠프지 앞에까지 다가와 있었다.


    2013/14년시즌 세종기지에서 펭귄 조사를 하던 해에 기지로 복귀하는 도중 자고있는 아델리펭귄을 만났다. 눈 위에서 자던 아델리펭귄이 사람이 지나가는 인기척에 벌떡 일어나더니 갑자기 날개를 퍼덕이며 나에게 달려들었다. 오히려 당황한 내가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다. 녀석은 한동안 경계음을 내면서 우리를 쳐다보며 언제라도 달려들 것처럼 으르렁 거렸다(펭귄의 경계음은 약간 으르렁 거리는 느낌이 난다). 우리가 딱히 해코지를 한것도 아니고, 그냥 지나가던 길인데 자고있던 녀석이 어지간히 놀랐던 모양이다. 화가 가라앉지 않는지 우리가 지나갈때까지 계속 경계하면서 쫒아왔는데 그 모습이 재미나서 한동안 사진을 찍었던 기억이 난다. 

눈위에서 자던 아델리펭귄이 인기척에 놀라 달려왔다. 그바람에 가까이 있던 나는 엉덩방아를 찧었다.


    인터넷에 아델리펭귄의 특이 행동에 대한 글들이 많다. 지나가던 사람을 공격해 사람이 넘어지는 유명한 영상이 있고, 과거 아델리펭귄을 연구했던 연구자의 수기에 의하면 죽어있는 펭귄에게 짝짓기를 시도하거나, 이미 짝이 있는 암컷에게 짝짓기를 시도하기도 했다고 한다. 나도 지난해에 비슷한 광경을 보았다. 아델리펭귄의 사체 하나를 발견해 연구시료로 사용하기 위해 캠프지로 가져가는 도중 땅바닥에 잠시 내려놨는데, 지나가던 아델리펭귄 한마리가 갑자기 그 펭귄의 위로 올라가더니 짝짓기 행동을 하는 것이 아닌가. 순간 경황이 없어 사진을 찍어놓진 못했는데, 같이 있던 일행들과 여간 놀란것이 아니었다. 지난해 조사중에는 돌보다는 펭귄의 뼈를 주로 물어다가 둥지를 만든 아델리펭귄도 발견했다. 펭귄마다 둥지에 물어다 놓는 돌크기가 조금씩 다른데, 어떤 둥지는 큰 돌을 주로 물어다 둥지를 지은 반면, 어던 둥지는 아주 작은 돌만 물어다 둥지를 만들기도 한다. 그런데 이렇게 뼈를 집중적으로 물어다 놓은 둥지는 처음 보았다. 그것도 펭귄의 다리뼈 위주로만 물어다 놓은 것을 보니 취향도 독특하다. 가히 뼈 수집가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였다. 장보고기지 주변은 워낙 기온이 낮고 건조하다보니 동물들의 사체는 썩지않고 대부분 미라로 남는다. 이런 미라들은 오랜시간동안 풍화되어 결국 뼈만 남아 번식지 곳곳에 굴러다니는데, 이런 미라에서 다리뼈만을 집요하게 골라 둥지로 물어왔을 펭귄을 생각하니 오싹한 기분마저 들었다. 

돌과함께 펭귄의 뼈를 물어다 둥지재료로 사용한 아델리펭귄. 

    아델리펭귄을 보다보면 요즘말로 4차원이라는 생각이 든다. 개체마다 행동이 다르고 젠투펭귄, 턱끈펭귄을 조사할 때보다 신기한 행동이나 다른 개체와 유난히 구별되는 개체들이 많이 보인다. 사람에게 호기심을 보이는 펭귄도 많을 뿐더러, 가끔은 공격을 하기도 하고 어떤 녀석들은 다가와 바짓단을 물어보기도 한다. 재밌기도 하지만 나에게 달려들때는 깜짝깜짝 놀라기도해서 아델리펭귄 번식지를 돌아다닐 때는 내 뒤에 다가오는 펭귄이 없는지 항상 주의를 기울여야 했다. 

    올해 한국의 여름이 유난히 덥다. 이렇게 더웠던 적이 있었는가 싶을 정도이다. 더운 한국의 여름에 추운 남극의 여름을 생각한다. 벌써 다음 남극출장 준비가 시작되었다. 입출남극 일정과 아라온 운항일정이 나왔고, 출장일정에 맞추어 아델리펭귄 번식지에서의 캠프일정을 구상중이다. 올해는 또 어떤 특이한 녀석들을 만나게 될까..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작가의 이전글 세종기지의 어느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