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극가마우지와 펭귄
"저기봐 펭귄이 날아왔어"
몇몇 사람들이 세종기지앞 부두에서 소리쳤다. 카메라를 들고 연신 사진도 찍는다. 한 두번 겪었던 일이 아니라 슬쩍 미소지으며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다. 잠시 후 자연스레 사람들이 나를 쳐다봤다. 무슨 펭귄이냐고 묻는다. 벌써 여러차례 해왔던 똑같은 대답을 했다. "남극가마우지입니다. 펭귄과 닮았지만, 펭귄은 아니에요~" 사람들이 의아하다는 얼굴로 나와 남극가마우지를 번갈아 쳐다봤다. 이게 펭귄이 아니라고? 검은등, 하얀배, 뾰족한 부리, 물갈퀴가 있는 발. 당신 연구자 맞아? 하는 얼굴이다. "네. 죄송하지만, 펭귄은 아니에요..저도 날아다니는 펭귄보고 싶습니다 하하" 웃으며 말했다.
2008년 만우절날 BBC는 진화의 기적이란 제목으로 날아다니는 펭귄 영상을 올린적이 있다(https://www.youtube.com/watch?v=UNEuIZ0Vwmg). 아직까지도 회자되는 이 영상에서 아델리펭귄들은 얼음을 박차고 하늘을 날아 남극에서 열대우림까지 비행한다. 그 모습이 광활한 풍경과 함께하니 영상미가 대단하다. CG를 이용한 영상이겠지만, 사실처럼 멋졌다. (그들의 유머에 반했다).
펭귄은 매년 엄청난 거리를 이동하는 철새이다. 비록 날지는 못하지만, 남극에서 번식을 마친 후 얼음이 얼지않는 바다를 헤엄쳐 수천키로를 이동한다. 번식지인 남극 바다는 겨울동안 얼어붙기 때문에 남아있어도 먹이를 구할 수 없다. 또한 기온이 너무 낮아 체온을 유지하기 어렵다. 물론 이 시기에 거꾸로 남극으로 들어가는 황제펭귄은 예외다. 황제펭귄을 제외한 남극 펭귄들은 날지 못하는 몸으로 바다를 헤엄쳐..아니 바다 속을 날아 남극의 바깥쪽으로 이동한다. 하지만 영상에서 처럼 남미대륙을 지나 열대까지 이동하지는 않는다. 다만 얼지않은 바다를 찾아 남극의 바깥쪽으로 밀려났다가, 이듬해 얼음이 녹기 시작하면 다시 번식지로 돌아오는 것이다.
세종기지에는 펭귄을 닮은 새가 있다. 바로 남극가마우지다. 한국에서 볼 수 있는 가마우지들과 제일 큰 차이점은 배가 하얗다는 것이다. 새하얀 배, 검은 등을 가지고 있어 얼핏보면 펭귄과 꼭 닮았다. 거기다 유연한 몸매에 발바닥에는 물갈퀴도 있다. 다만 비행조류이기 때문에 날개가 크고, 펭귄보다 몸이 더 날씬하다. 날개를 접고 앉으면 펭귄과 정말 닮아보인다. 세종기지 주변에서 이 새는 비교적 흔하게 관찰되는데, 해안가 바위에 앉아있는 경우가 많다. 또한 먹이를 잡을 때는 바다에 들어가 잠수도 하고, 물위에 오리처럼 떠있기도 한다. 처음 남극을 방문해 펭귄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충분히 펭귄으로 오인할만하다.
한국에서도 가마우지를 볼 수 있다. 가마우지 하면 가장 일반적인 광경은 바위 위에서 날개를 말리고 있는 모습이다. 물속에 들어가 먹이를 먹고 난 가마우지는 날개가 젖기 때문에 햇빛과 바람에 날개를 말려야한다. 이 때문에 가마우지가 다른 물새들에 비해 기름샘이 덜 발달했다는 이야기가 있지만, 그건 아니다. 가마우지도 다른 물새와 유사한 크기의 기름샘을 가지고 있고, 몸 깃털의 대부분은 방수가 된다. 방수가 되지 않는 부분은 날개가 유일하다. 이는 가마우지의 진화의 선택이다. 날개깃털이 방수가되면 물에 젖지 않을 수 있고, 공기층을 그대로 유지할 수 있어 찬 물이나 추위에 강할 수 있다. 그러나 가마우지는 잠수를 해서 물고기를 잡아먹는 새이다. 잠수능력이 좋을수록 많은 물고기를 잡을 수 있으며, 더 깊이 잠수하기위해서는 부력을 줄여야한다. 이때문에 가마우지는 날개가 그냥 물에 젖도록 놔둔 것이다. 날개가 젖으면 부력을 감소시켜 더 깊이 잠수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잃는 법이다. 펭귄은 그런 점에서 가마우지보다 더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더 깊은 잠수를 위해 날기를 포기한 것이다. 날개는 작아지고 단단해 졌으며 날개에는 깃털이 거의 남아있지 않다. 겨우 1~2mm 길이의 깃털만 남아 색깔만 보이는 정도이다. 이렇게 잠수능력을 극대화시킨 펭귄은 몸의 크기를 불리고 지방을 축적했다. 차가운 바닷속에서 체온을 유지하고, 더 깊은 잠수를 위해서이다. 비록 육상에서는 뒤뚱거리는 펭귄이지만, 물속에서는 누구보다 빠르고 깊게 이동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런 진화의 바탕에는 남극이라는 위치의 특성도 작용했을 것이다. 남극에는 육상포식자가 존재하지 않는다.(기존편의 도둑갈매기를 제외하고). 때문에 펭귄은 비행하는 능력을 포기할 수 있었던 것이다. 육상에서는 비록 뒤뚱거리지만, 포식자가 없기 때문에 위험이 적으며 높은 곳에 둥지를 틀지 않아도 공격받지 않는다. 날개가 없더라도 생존에 지장이 없는 것이다. 그런데 만약 펭귄의 번식지에 늑대, 개, 고양이, 쥐, 북극곰 같은 육상포식자가 들어간다면 어떤일이 벌어질까... 펭귄은 얼마못가 멸종할 지도 모른다. 펭귄에게는 육상의 포식자에 대응할 수 있는 수단이 딱히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부디, 장난으로라도 북극곰을 남극에 가져다놓자는 말은 하지말자..(이런 얘기를 실제로 하시는 분들이 의외로 많다...)
마치 펭귄인양 사람들의 관심을 끌다가 유유히 날아가는 남극가마우지도 날지못하는 시기가 있다. 바로 번식기가 끝나고 털갈이를 하는 시기이다. 털갈이 시기에는 한꺼번에 많은 깃털이 빠져 평소보다 잘 날지 못하는 상태가 된다. 그래서 이 시기에는 해안 절벽지역에 모여 털갈이가 끝나기를 기다린다. 만약 이 새를 잡고 싶다면 이때가 기회이다. 포획망을 가지고 살금살금 다가가 덮치면 어렵지 않게 잡을 수 있다. 몇년전에 남극동물의 유전자 연구를 위해 혈액시료를 채취한 적이 있다. 남극가마우지는 워낙 얘민해서 평소엔 잡기가 어려워 샘플을 얻는것을 포기한 상태였다. 그런데 어느날 같이 연구하는 후배연구자가 이 새를 5마리나 잡아서 혈액을 채취하고 놓아줬다는 것이다. 알고보니 운좋게도 방문한 지역에서 털갈이 중인 남극가마우지 무리를 만났던 모양이다. 이때 채취한 샘플이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이 새의 유일한 샘플이다. 아마 앞으로도 남극가마우지를 잡는 일은 쉽지 않을것 같다. 펭귄도 비슷한 시기에 털갈이를 한다. 털갈이 중인 펭귄도 남극가마우지와 마찬가지로 잠수를 하지 못한다. 약 2주이상의 털갈이 기간 동안 새로운 깃털이 자라날때까지 물에 들어가지 않고 육상에서 기다린다. 그리고 새로운 깃털이 모두 돋아나면 추워진 남극을 벗어나 여행을 떠났다가, 다시 남극의 바다가 녹는 이듬해 여름에 번식을 위해 남극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그 일년동안 새로 돋아난 깃털이 펭귄을 차가운 물과 추위에서 지켜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