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식기간 펭귄들은 매일 바다를 오간다. 둥지를 만들고 알을 낳은 펭귄들은 새끼가 태어나면 바빠진다. 새끼에게 줄 먹이를 구하러 암컷.수컷이 교대하며 매일 바다를 오간다. 바다에서 번식지까지는 가까운 곳도 있지만, 수십킬로미터가 떨어져있기도 했다. 바다에서 번식지까지 거리에 상관없이 펭귄들은 오가기 편한 장소를 찾아다니고, 때문에 펭귄들이 자주 다니는 곳에 길이 만들어졌다. 길에 눈이 많이 쌓여있는곳은 펭귄의 이동으로인해 다른곳과 구별되는 뚜렷한 길이 생기고 반듯하게 만들어진 길로 펭귄들은 줄을지어 이동했다. 이런 길을 펭귄고속도로(Penguin highway) 라고 불렀다.
재미있는것은 바다로 나가는 길이 넓은 곳에서는 나가는 길과 들어오는길이 분리되었다. 남극 케이프할렛에서는 우리나라 도로와 마찬가지로 펭귄들이 좌측통행을 했다. 바다로 나가는 펭귄은 왼쪽으로 모여 나가고, 들어오는 펭귄은 오른쪽에 모여 돌아왔다. 펭귄 나름대로 규칙이 있는것처럼 보였다. 바다로 나가는 길이 매우 넓은 경우는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았지만, 오가는 길이 한정적인 곳에서는 이런 경향이 더 뚜렸했다. 간혹 길을 헛갈려 반대방향으로 잘못들어선 펭귄은 돌아오는 펭귄과 길에서 마주치면 길을 비켜주었다. 가는길에 물 웅덩이가 있으면 새끼를 품는 중에 더러워진 몸을 씻고 나갔다. 포식자가 없는 물 웅덩이는 펭귄들이 마음편하게 씻고 쉴수있는 곳이었다. 바다에서는 포식자인 표범물범이 어디에 있는지 알지 못하기때문에 한번 바다에 뛰어든 펭귄은 쉴수 있는 기회가 많지 않다. 고속도로의 휴게소처럼 물웅덩이에는 많은 펭귄들이 편하게 몸을 씻고 물장난을 치며 쉬었다.
펭귄고속도로의 펭귄들은 그러나 대부분 마음이 급해보였다. 둥지에서 기다리는 새끼가 굶지 않기위해 펭귄들은 도로에서 발걸음이 빨라졌다. 걸어서 나가는 펭귄이 대부분이지만. 길이 곧게 뻗어있거나 편평한 눈길에서는 누워서 가는 경우도 있었다. 썰매타는 것과 비슷한 이런 이동방식을 영어로도 썰매타기 (Tobogganing)라고 불렀다.
가다가 목이마르면 펭귄은 눈이나 얼음조각을 먹었다. 담수가 부족한 눈의 사막인 남극에서 펭귄들은 눈을 먹을 수밖에 없었다. 눈을 먹는 펭귄을 보면 배가 아프지않을까 걱정도 되었지만, 차가운 영하의 수온에서 먹이를 잡는 펭귄에게 그정도는 문제가 안되는것 같았다.
해빙위의 얼음길은 때론 미끄러운 곳도 많았다. 사람들이 신발에 아이젠을 끼는 것처럼 펭귄들은 발톱을 직각으로 세워 얼음을 찍으면서 이동했다. 그래도 가끔은 미끄러지는 펭귄도 많았다.
펭귄고속도로에서 지켜보면 펭귄들의 고달픈 삶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날씨가 좋은 날도 블리자드가 불어 걷기조차 어려운 날에도 펭귄들은 펭귄고속도로를 지나 바다로 향했다. 해안가에 가만히 앉아있으면 저벅저벅 펭귄의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몇번이나 펭귄을 따라 바다방향으로 걸어보았다. 사람이 가기에도 어려운 길을 작은 펭귄들은 쉬지않고 나아갔다. 눈이 푹푹 빠져 숨이 가파지고 빨리 걷기가 어려웠다. 잘 닦여진 펭귄들의 길을 따라가면 편할터이다. 그러나 사람이 밟으면 길이 파여 펭귄들이 다니기 어렵게 될것이다. 고생하는 펭귄들의 길을 밟을 수는 없었다. 힘이들어도 펭귄이 다니지 않는 험한 길로 돌아 걸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