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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과 전공의가 본 공연 <목소리와 기타>

어쩌면, 모두의 정신과 의사, 루시드 폴

by 파랑고래

유난히도 추웠던 지난 2월 중순, 평소 좋아하던 뮤지션인 '루시드 폴' 공연을 갔다. <목소리와 기타>라는 공연 제목에 걸맞게, 루시드 폴이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르는 형식의 공연이었다. 이번 공연은 다른 악기 없이 오직 3대의 기타로만 공연이 구성되어 있었다. 평소 루시트폴은 이러한 기타 트리오 형식을 꿈꿔왔다고 한다.


공연장은 고즈넉한 주택가 골목 한켠에 자리 잡고 있었다. 옛 교회로 쓰이던 건물이었다고 했다. 여전히 교회 간판이 달려 있었다. 소박한 루시드 폴의 성격을 닮아 있었다.

TINC 공연장, 예전에 '명성 교회'로 사용된 건물이라고 한다.



날씨는 꽤 쌀쌀했지만, 공연장 내부는 생각보다 따뜻했다. 세로로 길쭉한 창문을 통해 들어온 겨울의 햇빛을 머금고 있었다.


루시드 폴은 온풍기에 잠시 손을 데운 뒤 무대에 올랐다. 50개의 좌석만 가능한 작은 공연장 덕분에 그의 모습을 가깝게 볼 수 있었다. 항상 음원과 영상 속에서만 존재했던 사람을 직접 보는 것이 생경했다. 하지만 슈퍼 스타 같은 이질감은 느껴지지 않았다. 마치 오랜만에 봐서 데면데면한 친구 같았다.


손수 제작한 플랜카드를 흔들며 그에게 인사했지만, 그는 눈길 한번 주지 않은 채, 묵묵히 기타를 조율했다. 음악에 집중하는 모습이 참 멋졌지다. 그래도 한 번쯤은 봐주지.


그가 노래를 시작했을 때 묵직한 무언가가 나에게 전해지는 것 같았다. 이 느낌은 무엇일까. 기대했던 것보다 노래를 잘해서? 천장이 높아 소리가 웅장하게 들리는 공연장의 분위기 때문에? 한 동안 그의 노래를 따라가다 깨달았다. 그의 음악을 통해서 그가 살아온 삶의 에너지가 전달된다는 것을.


루시드폴의 이전 직업은 화학자였다. 국내 엘리트 코스를 밞아 외국 유명한 공대에서 박사 학위까지 취득하였다. 과학자로서 탄탄대로의 길을 걸을 수 있었을 그가 돌연 프로 음악가로 진로를 바꿔 지금까지 음악을 만들고 있다. 제주도에 살면서 귤을 수확하는 농부이기도 하다.


처음에는 그의 선택인이 그저 음악이 너무 좋아서, 그동안 자신이 이룬 것들을 포기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최근에 그가 쓴 <모두가 듣는다>를 읽고, 그는 포기한 적 없이 계속 그의 삶을 살아간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는 무언가를 '만들어서'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는 삶을 추구했다. 그가 만들어 내는 것은 화학자였을 때는 '화합물'이었고, 음악가가 된 지금은 '음악'으로 바뀐 것뿐이다. 그는 참 단단한 사람이다.


간단해 보이는 삶의 명제를 스스로 정의하기 위해 그는 얼마나 많은 고민과 노력을 해 왔을까. 그의 삶의 흔적은 온전히 음악에 담겨 있다. 음 하나, 가사 한 단어도 신중하게 고르는 그의 작업과정을 보면 삶에 대한 그의 태도가 얼마나 진지한지 가늠해 볼 수 있다. 하나하나 신중히 쌓아 올린 그의 마음은, 음악을 통해 청중에게 고스란히 전달된다.



그의 음악을 들으며, 마음속에 잔잔한 감동과 평온을 느꼈다. 공연이 끝나고 조명이 켜졌을 때, 관중들의 표정을 살펴보았다. 모두 온화한 표정이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좋은 음악은 정신 의학의 치료법 중 하나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기의 진동으로 전달된 음악은 누구도 알지 못하는 나의 가장 마음속 깊은 곳을 따뜻하게 어루만져 준다. 이러한 경험을 통해 우리의 마음은 정돈되고 다시 삶을 살아갈 힘을 얻게 된다.


어쩌면, 루시드 폴은 모두의 정신과 의사가 아닐까. 정신과 의사가 약물과 상담으로 아픈 마음을 치료하는 것처럼, 루시드 폴도 목소리와 기타로 사람들의 마음에 잔잔한 위로를 건넨다. 그의 음악은 누구든 들을 수 있기에, 그는 모두의 정신과 의사인 셈이다.


오랫동안 좋아하는 음악가이자, 한편으로 참 든든한 동료이기도 한 그의 앞날을 응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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