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간에 글을 올리지 않는 동안 많은 일이 있었다. 나는 기나긴 절망 속에서 손을 뻗었다. 2025년 말에 전시회와 플리마켓에 참여했다. 새로운 인연들이 이어지고 끊어지는 일들도 많았다. 오늘은 좀 더 두서없이 자유롭게 써봐야겠다.
전시는 어려웠다. 정답이 없는 것, 아니 다시 말하면 내가 정한 답이 정답이 되어버리는 것이 부담스러웠다. 애정하는 사진들로 골랐지만, 고르고 보니 사진들이 촌스러워 보이기도 하고 어딘가 뒤틀려 보이기도 했다. 마음속으로 한숨을 쉬며 그래도 하게 된 거 즐겁게 하자고 마음먹었다.
전시를 시작할 때 작품에 대한 설명을 하는 시간이 있었다. 다른 작가 분들의 설명을 듣고 있자니 머리가 빙빙 돌았다. 그들의 설명은 전문적이게 들리다가도 한껏 어설프게 들리기도 했고, 그것이 계속 반복됐다. 이유는 간단했다. 나는 자연스럽게 그들의 수준을 파악하려 한 것이다. 나는 내가 언제나 순수하게 작품을 감상하는 줄 알았다. 내가 너무 없어 보이지는 않을까 불안한 마음에 그랬나 보다. 본능적인 나의 사고가 너무 구리다는 생각을 겨우 삼켜내고, 내 차례가 다가와 많은 사람들 앞에서 발표를 했다. 초등학교 때 처음 발표를 했을 때처럼 여전히 긴장을 했다. 다만, 티를 안내는 법을 익혔나 보다. 무리 없이 발표를 끝내고 나니 전시 기간에는 의외로 할 일이 없었다.
그렇게 나는 조금 멍한 상태로 전시를 마치게 되었다. 뿌듯함과 허무함 사이에서 빠져있을 즈음에 플리마켓 제안을 받게 되었다. 한번 전시를 해본 나는 망설일 것이 없었고 신청을 하게 되었다. 고여만 있던 일상 속에서 새로운 관계가 생기는 것만 해도 기대가 되었다. 나는 마지막 여흥인 양 수익이나 팔로워 같은 결과에는 그다지 신경 쓰지 않고 가벼운 마음으로 마켓에 참여했다. 다리와 허리가 아팠지만, 새로운 사람들과 얘기하고 나를 소개하는 것이 즐거웠다. 그 와중에 플리마켓은 전시와는 다르다는 것을 느끼고 그냥 내 사진들을 무료로 퍼주기 시작했다. 친구들이나 주변 사람들이 놀러 오기도 했고, 새롭게 친해진 사람들도 있었다.
새로운 분야에서의 활동은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냈다. 여전히 듣기 거북한 ‘작가님’ 호칭을 서로 듣고 부르며 지내는 사람도 있고, 마켓에 손님으로 왔다가 친해진 사람들도 있었다. 이런 관계들 속에서 나는 피로함을 느끼기도 하고, 내 나이에서 새어 나오는 빛을 느끼기도 했다. 흔히 ‘좋은 나이’라고들 부르는 말의 어감을 비로소 이해하게 되었다. 뭐 그리 달갑지는 않지만 말이다.
작년부터 최근까지 나는 영화를 많이 봤다. ott를 제외하고도 영화관에서만 50편 정도의 영화를 봤다. 덕분에 롯데시네마 VIP가 되기도 했다. 무작정 상영하는 모든 영화들을 봤었다. 간절했다. 영화라도 보지 않으면 버틸 수가 없었기에 간절한 마음으로 모든 영화들에 심취하려 했다. 이 자리를 빌려 나에게 너무 큰 도움을 줬던 2025년에 봤던 모든 영화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하고 싶다.
얼마 전에는 별로 겪어보지 못한 유형의 이별을 했다. 내가 차갑게 단호해져야 하는 그런 유형 말이다. 마치 악역을 자처하는 것 같아 고통스러웠다. 나는 이미 정답을 알고 있었기에 미뤄두었던 단호함을 꺼내 들고 말았다. 애초에 존재하지도 않는 선을 찾기 위해 외면과 배려를 반복하는 것이 별로 건강한 방법이 아니었던 것 같다. 이별 후에는 일종의 안도감이 들더니, 이내 허탈함과 걱정이 생기기도 했다. 그러고는 익숙했던 나의 온도로 돌아왔다. 편안하고도 고요했다. 이게 정말 좋은 일인지 잘 판단이 서지 않았다.
내 예민함에 대해 더 관심을 가져야 할 것 같다. 이 하나 때문에 너무 많은 것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내 여정도 너무 달라졌다. 가볍게 여길 대상이 아니라는 것을 점점 더 체감 중이다. 진지하게 무뎌지는 방법을 강구해 봐야겠다.
2025년은 소중한 해였다. 아마 그 소중함의 이유를 아무도 모를 테니 조금은 슬프긴 하다. 오늘은 왠지 지나간 시간에게 명복을 빌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