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 19 아타카마 사막
전 날 별 투어를 끝내고 자정이 무렵이 되어서야 시내에 돌아왔다.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직장 후배와 회사 일로 통화를 했다. 후배가 알아서 잘하겠거니 하는 믿음이 애초 없었던 것과 업무에 대한 책임감만 있을 뿐 지루하고 보람 없는 일이라는 자각에 의한 자괴감으로 한껏 말랑해졌던 마음에 금세 날 선 뿔이 났던 기억이 난다. 그 하기 싫은 일을 그 이후에도 꼬박 3년을 더 했다. (그 3년 후에 나는 또다시 남미를 향하는데, 힘들 때마다 3년 주기로 남미를 가는 건가?)
어쨌든 이제 고산지대에서 완전히 벗어났고, 추위보다는 더위가 참을 만했고, 어딜 가든 와이파이가 잘 돼서 여러모로 긴장이 많이 풀려 어깨가 가벼워진 상태였다. 게다가 아타카마 사막의 일몰에서 느꼈던 감동, 별똥별을 보며 빌었던 소원들을 품었던 마음이 얼마간 넉넉해진 상태였다. 그날은 아주 오랜만에 푹 잤다. 이튿날 늦은 밤 비행기라 오랜만에 한가로이 카페에서 빵과 커피를 즐길 여유가 있었다. 체크아웃 이후에도 숙소의 정원 해먹에 누워 낮잠도 야무지게 챙겼다.
우리는 아타카마 사막에서 100km여를 달려 칼라마공항에 도착했다. 거기서 약 두 시간가량 비행 후 산티아고 공항에 내렸지만, 곧장 칠레 최남단에 위치한 도시 푼타아레나스까지 직행하기로 했다. 애초 계획은 칠레의 수도인 산티아고였는데, 볼리비아가 한창 반정부 시위를 벌이고 있었던 것처럼 칠레도 시위가 한창이었다. 지하철 요금 50원 인상에서 발발한 시위가 점차 격렬해지며, 19년 10월 정부가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군대와 탱크가 도심에 투입됐다. 정부가 요금 인상을 철회하고, 내각을 교체했지만 시위는 이어졌다. 근본적인 문제는 임금격차와 그로 야기되는 사회 불평등의 심화, 낮은 임금과 높은 물가 수준 등이었다. 나아가 시위대는 새 헌법을 요구했다. 한국에서 떠나오기 전부터 칠레의 시위가 발생했다는 건 인지하고 있어서, 산티아고 여행은 언제든 유보할 계획이었다. 시위는 우리가 지나갈 무렵인 11월 말경 더욱 격렬해져 수많은 사상자까지 내고 있었다.
수도 산티아고 공항 밖으로 나가는 사람은 없었다. 우리와 같은 선택을 한 사람들이 많은 지 새벽의 공항은 북적였다. 아직 오픈하지도 않은 체크인 데스크 앞에서 줄지어 앉았다. 비행기가 제시간에 출발할지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에 공항에서 첫 노숙이었다. 새벽에 인적이 드문 공항은 무섭기 마련이지만, 그 새벽에 앉을자리가 없을 정도로 사람들이 많아서 오히려 활기찬 기분마저 들었다. 이미 대폭 여행 계획을 수정하기도 했지만, 여행 내내 계속 예기치 않은 변수에 대응하고, 나은 선택이 뭘까 고민하고, 의견을 하나로 모으고 결정하는 과정이 이제는 즐겁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그리하여 다음 도시까지 무사히 갈 수 있을까 하는 걱정과 더불어 여행이 주는 불안감에 묘한 설렘까지 느끼는 중이었다.
**이후 칠레의 시위는 어떻게 됐을까? 격렬했던 시위의 열기를 꺾은 것은 코로나19의 확산이었다. 정부는 시위대의 요구를 받아들여 새 헌법 제정 국민 투표에 합의했다. 2020년 실시한 국민투표에서는 국민 대다수가 새 헌법 제정에 찬성했고, 21년 5월 새 헌법 초안을 공개했다. 원주민 자결권 확대 및 노동조합 권리 강화 등의 내용이 대거 포함되었지만, 새 헌법이 시행될 경우 발생할 급격한 사회 변화와 높은 사회경제적 비용에 대한 우려도 있었다. 개헌을 밀어붙이는 좌파 성향의 대통령까지 취임한 상태였지만, 오히려 급격한 변화에 반감을 가진 국민들은 반대표를 던져 22년 9월 최종 국민투표에서 부결됐다. (기사 참조: 칠레 ‘피노체트 군부 헌법’ 개헌 무산 https://www.khan.co.kr/world/america/article/202209052120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