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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jin Jan 03. 2024

2024년에는 뭐라도 되고 싶다

계획대로 살면 하루가 36시간이라도 모자랄 거 같은 2024년

2023년 굵직한 이벤트들이 많을 것으로 예상했지만, 내게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수동적인 표현보다 적극적인 표현이 더 어울리겠다. 나는 격렬하게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사실 나도 이렇게 오랜 시간을 허비하게 될 줄은 몰랐다. 한두 달이 서너 달이 되고, 반년이 되고 일 년까지도 순식간에 지나갔다. 어떤 때는 아예 사고가 마비된 것처럼 슬픔이나 속상함, 불안함 그 어떤 감정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이렇게 아무런 감정조차 느껴지지 않는 상태가 훨씬 위험한 게 아닐까, 하는 걱정만 기시감처럼 남았다. 아무리 샅샅이 뒤져봐도 작고 하찮은 성취 따위도 없다. 침대와 소파 사이 1m만 띄엄띄엄 왕복하다 보니, 한 해가 모두 지났다. 오늘이 어제 같고, 어제와 엊그제의 경계가 모호한 날들이 계속 이어지다 보니 시간의 흐름이 반으로 접혔었다고 해도 혹은 늘어났다고 해도 나는 전혀 눈치채지 못했을 거다. 


나는 단시간 내에 성취가 보이지 않으면 대부분 도망가버렸다. 그런 예를 굳이 찾으려고 노력할 필요도 없이 모든 게 다 그렇다. 달리기, 다이어트, 토익스피킹, 영어, 스페인어 등등. (*지난 20년 간 신년 계획에 [다이어트]를 적지 않은 해는 단 한 번도 없었다. 사실 나뿐만은 아니겠지만.) 달리기를 예를 들어보자. 꾸준히 달리다 보면 심장이 단련되고, 호흡에 익숙해지고 어느새 수월하게 달리기를 이어나가는 자신을 발견했다,라는 주변 사람들의 격려에 나도 여러 차례 시도 해봤지만 나는 좀처럼 익숙해지지도 실력이 늘지도 않았다. 게다가 뛰는 행위에 대한 즐거움, 뛰고 나서의 상쾌함도 못 느끼니 번번이 꾸준히 이어나가지 못했다. 지난주 5킬로보다 이번주 5킬로가 좀 더 수월했다면, 나는 여전히 달리고 있을까. 할 때마다 더 힘에 부쳤는데, 어제 많이 먹어서인지 그제 보다 몸이 무겁고 호흡이 더 가빴다. 발목이 아파서 이틀을 쉬었는데, 이번에는 러닝 시작하자마자 발목 통증이 시작돼서 끝까지 완주할 수 없었다. 늘 이런 식이다. 


포기하지 않고 그 고되고 정체된 과정을 넘어야 성장할 수 있다는 걸 (머리로는) 안다. 그런데 왜 나는 안될까의 수렁에 빠지고 단숨에 도망치는 선택을 한다. 핑계는 늘 많다. 잘못 달리면 오히려 발목에 무리가 생겨. 괜히 종아리만 더 두꺼워진다니까. 다른 대체할 만한 유산소 운동을 찾아보자. (*그리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내 심장은, 내 의지는, 내 실력은 단련되지 않았다. 단련되지 않아서 도망갔고, 도망갔기 때문에 더 이상 단련되지 않았다. 비단 러닝뿐만이 아니다. 연애에서도 그랬고, 직장 생활에서도 그랬다. 그리고 취업을 준비해야 하는 지금도 그렇다. 성공 경험이 절대적으로 부족해 어느 순간 열등감(심하게 말하면 패배감)으로 가득 찼고, 아무것도 해낼 수 없을 거 같은 불안은 아무것도 시도하지 않는 상태에 이르게 했다. 그게 2023년의 나였다.


그런데 스스로가 어이없을 정도로 여전히 잘 웃고, 많이 먹고, 사람들과도 잘 지낸다. 어느 날은 집 밖으로 한 발자국도 나가지 않고 유튜브 채널 시청 시간이 8시간을 넘어가고 있었는데, 그러면서도 뭘 보고 그렇게 웃겼는지 혼자서도 소리 내 웃는 나 자신을 발견하고 불현듯 한심하게 느껴졌다. '네가 인간이니?' (*물론 같은 일상이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사람들을 만나서도 언제 그랬냐는 듯 밝은 모습을 보이니, 내면의 열등의식, 자존감의 부재가 잘 드러나지 않는 모양이다. 스스로는 자존감의 밑바닥을 경험하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누군가는 나를 보곤 말했다. '정말 긍정적인 분이시네요.' 내가 정말 그런가. 아니면, 내가 여전히 그렇게 나를 포장하는데 열심히였던 걸까. '나 요즘 정말 인생 최악이야.'라고 말하면서도 깔깔깔 웃었다. 마침내 뇌의 인지와 감정 표현의 연결 고리도 고장 난 걸까. 혹 여전히 꽤 긍정적인 인간이니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걸까.


어떤 모습이 진짜 나인지, 내가 느끼는 자신과 타인이 보는 나 사이의 괴리감이 커서 당황스러웠다. 나를 알게 된 지 얼마 되지 않은 한 지인이 말하길, 내 긍정/자존감의 기준이 남들보다 월등히 높아서 본인이 느꼈을 땐 한없이 낮아진 것 같지만, 남들이 보기에 여전히 긍정적인 사람인 게 아닐까,라고 했다. 그 말이 묘하게 위안이 됐다. 그래, 나는 여전히 꽤 그럭저럭 해나갈 힘이 있는 사람이다. (제발) 나만 자신을 믿으면 된다. (*물론 긍정과 무조건 상황을 우호적으로 여기는 낙관을 구분할 줄 안다. 이것도 내 주관적인 기준이겠지만.)


어쨌든 나는 2023년을 힘겹게 살아냈다. 아, 힘겹다는 말은 어울리지 않는다. '힘겹다'는 뭔가를 뚫고 극복해 나가려고 하는데 힘에 부치는 뉘앙스가 있다. 그러나 나는 그 어떤 것도 뚫으려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버텼다'도 같은 맥락으로 어울리지 않는다. 딱 맞는 단어를 찾기 어렵다. 그저 살았다. 그 와중에 간간히 운동을 하려고 했고, 한없이 떨어진 활동에 비해 너무 많이 먹는 건 아닌지 절제하려고 종종 신경 썼고, 부모님이 걱정하실까 부러 밝은 척 철없는 소리도 지껄였다. 나를 걱정하는 친구들이 있었고, 나 또한 고마움을 전할 만큼의 여유는 있었다. 활력을 잃은 듯했지만, 누군가를 만났을 때 언제 그랬냐는 듯이 서너 시간 거뜬히 말을 쏟아낼 만큼 여전히 수다스러웠고, 또 힘들지만 내 상황에 대해 변명도 하고, 자기 객관화해서 설명도 할 수 있었다. 늘 부정적인 내용이긴 했지만.


메이저리거 오타니 쇼헤이가 학창 시절 작성했는 '만다라트'


그렇다면 올해는 어떻게 보내야 할까. 이번에도 달리기를 해 볼 생각인데, 물론 [7km를 630 페이스로 달리기]라는 구체적인 수치의 목표가 있지만, 그 목표에 닿기 전에 '일주일에 세 번씩, 두 달은 포기하지 않고 해 볼 것'이라는 계획과 실행이 선행돼야 할 거 같다. (*두 달 뒤에도 여전히 제자리걸음이고, 즐겁지도 않으면 또 포기할 수도 있긴 하지만, 일단 두 달 이상 달려 본 적이 없기 때문에 나에게는 이마저도 도전이다.) 물론 심장이 단련되고 있다는 게 느껴지고, 일정하게 발을 구르고 호흡이 최대한 흐트러지지 않는 그 지점을 찾아 하루에 10초씩이라도 더 오래 달릴 수 있게 되는 성취를 경험해 보고 싶다. 그러나 끝내 충분한 성취를 경험하지 못하더라도, 만족할 때까지 (그게 어느 지점인지는 모르겠지만) 해보고 싶다. (*아, 만족이 성취가 될 수도 있겠다.)


올해 달리기 말고도 목표가 많다. 욕심을 내봤다. 2023년을 허송세월했으니, 2024년에는 그 어느 때보다 성취가 많아야 그나마 2023년 빈칸에 대한 자괴감을 덜 수 있을 거라 생각해서. 그렇지만 그 목표를 다 이루겠단 건 아니고(이룰 수도 없을 걸 안다), 선택과 집중 보단 이 중 뭐라도 하나는 열심히 하지 않을까 싶은 마음이다. 뭐 이도 저도 아닌 게 될 가능성도 농후하지만, 의욕만큼은 칭찬받고 싶다(?) 사실 나의 목표는 여전히 생존이다. 나는 살고 싶다. 그저 그렇게 사는 게 아니라, 충분히 기능하면서 살고 싶다. 가족 구성원으로서 역할도 잘 해내고 싶고, 친구들과의 관계도 잘 유지하고 싶고, 나아가 사회적 책무도 해내고 싶다. 이 모든 전제 조건은 경제 활동의 시작이다. 이번 달 식비 걱정을 더는 데서부터 충분히 기능하면서 살아가기가 가능하니까 정말 그렇다. 


결론. 빨리 취업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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