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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자까 Sep 05. 2024

건축학도 1.

시작이 늦었지만, 다시 시작.


1. 늦음




"다녀올게요. 숙모"

어젯밤에 잠을 자지 못했다. 어제도 시험을 보았고, 오늘도 시험이 있다. 혜진이 사는 곳은 부산이지만, 시험을 보기 위해 오산에 계신 삼촌댁에 며칠 신세를 지기로 했다.

연고가 없다 보니 딱히 시험을 보러 올라와도 지낼 곳이 마땅치 않다. 편입 시험을 보기 위해서 원서를 접수한 곳은 5개의 대학. 모두 내가 원했던 건축학과를 지원했다. 원래 가고 싶었던 과였지만, 고3 때는 어려웠던 건축학과. 대학을 졸업하고 일을 하면서 나에게 변화가 필요했다. 그래서 무작정 가고 싶었던 대학교에 편입 원서를 넣었다. 시험 보기 불과 2달 전에....

-




2. 다음 정차역은 가산디지털역입니다.



"을지대역 안 멀어. 지하철 타고 금방 방송 나오니까, 잊지 말고 거기서 내려."


'분명 숙모가 얼마 안 걸린다고 했는데...'

30분이 지나도 지하철 역 이름이 불리지 않는다. 시험까지는 그리 시간이 넉넉지 않은 시간. 초조하게 손목시계를 들여다보았다.

이제 남은 시간은 45분인데, 아직도 내리지 못했다. 그제야 조금 이상하다는 생각을 하다니...

노선도 앞에 우물쭈물 서 있다 사람들에게 물어봤다.


"저 혹시.. 을지대역은 언제쯤 내려요?"

"을지대역은 지났어요. 지금은 가산디지털 단지 인데... 급행이라 거긴 안 섰어요."

"네? 그럼 어떻게 가야 해요?"

"내려서 반대편 수원방향으로 가는 걸 타셔야 해요."

"어머.. 어떻게 해.... 감사합니다." 진짜 울기직전이다. 감사 반 눈물 반 나는 소리로 대답을 했다.


가산디지털에서 문이 열리자, 부랴부랴 뛰어내려 달리기 시작했다.  제일 가고 싶었던 학교인데.. 왜 먼저 서두르지 않았는지, 사람들에게 왜 묻지 않았는지, 그리고 급행이라는 전철이 왜 있는지.. 누구에게도 하소연할 수 없고, 자신의 실수를 책임지고 싶지 않아 계속 탓할 무언가만 찾았다.

 반대편 방향으로 열심히 뛰어 드디어 반대로 가는 열차를 탔는데, 알고 보니 생각보다 많이 왔다.

급행이 아닌 전철만 가다 보니 오던 시간보다 가는 시간이 더 많이 걸린다... 갈까? 가지 말까? 잠깐 동안 선택을 고민한다.











"이번 정차역은 을지대역, 을지대역입니다."


드디어 도착했다.

뭔가 꼬이는 날은 이래나 저래나 안된다고. 하필 내린 칸이 출구에서 가장 먼 칸이라니.. 그래도 이대로 포기할 순 없다. 회사에도 이미 나는 시험을 보러 다녀오겠다고 얘길 해두었다. 그리고 어찌 될지 모르지만, 꼭 학교도 가고 싶었다. 그래서, 늦었지만, 시험을 보지 못한다고 해도 꼭 시험장에 가야 한다.

힐을 신은 채로 전력질주로 개찰구가 있는 1층 입구에 오른다.

'삑'

개찰구에 카드를 찍고 나왔다. 혜진은 정말 몰랐다. 을지대역 서울대역 수원대역 그렇게 학교 이름이 적혀 있으면 어디든 출구로 나오면 다 목적지가 있을 줄 알았는데, 출구를 나와도 학교는 보이지 않았다.

이리저리 둘러보아도 학교는 커녕, 큰 건물이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진짜 , 신의 개시인가? 가지 말라는?

물어볼 겨를도 없다. 앞에 내려 보니 이정표가 있다.



을 . 지 . 대. 학. 교



그렇게 부랴부랴 그 내리막길을 뛰어 달린다. 진짜 무작정 뛰었다. 학교가 보이겠지라는 생각 하나로 열심히 달렸다. 드디어 앞에 보이는 학교 문. 그때는 그곳이 정문인지 후문인지도 몰랐다.

물론 대학교가 크겠지만, 하필 또 시험장소는 그 입구에서 왜 그리 먼지..

시험장은 제대로 찾을 수 있을까 싶긴 하지만, 아직 남은 10분을 믿고 다시 또 뛰었다.

주변에 뭐가 있는지도 모르고 그냥 무작정 앞만 보고 달리며 시험장인 '제1공학관'만 찾아가본다.

'캠퍼스가 이쁘고 뭐고, 제1공학관이 어디야, 도대체 여긴 왜 이리 큰 거야.'


드디어 찾았다. 제1공학관

'드디어 왔어. '

그런데 또 건물 내에서 시험장 호수를 찾아야 한다. 내가 다니던 예전 학교와는 다르다, 건물이 굉장히 크다. 건물이 크니 호수가 많은 것도 당연하지만, 정말 속은 탄다.


'43109'


건물 4층까지 미친 듯이 오른다.

계단을 오르는데, 살짝 지나치는 학생들만 봐도 어찌나 부럽던지. 나도 여기 오고 싶긴 한데 올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그렇게 그 짧은 찰나에 부럽다는 생각이 어디서 드는지, 드디어 진짜 시험장에 도착했다.




조용한 고사장.

이제 남은 건 5분. 들여보내줄 수 있을까? 그게 관건이었다.

모든 학생들이 앉아있는 시험장. 여태 내가 이렇게 미친 듯이 뛰었던 게 안된다고 하면 모조리 사라지는 노력이었다. 하지만 , 어느 정도 마음의 준비는 했다.

생각보다 너무 늦었고 모두 준비가 마친 상태였다. 안된다고 해도 어쩔 수 없는 일. 뒤 돌아가며 다른 학교 시험을 준비해야지 라는 생각을 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그래도 마지막까지는 도전한다.

들고 있던 수험표를 들이밀며, 시험관에서 물었다.



"저 지금도 시험 볼 수 있어요?"

"몇 번 이세요?"

내 수험표를 확인하더니 자리를 확인한다.

"얼른 앉으세요."



'오! 예스! 이런 횡재가!'

"감사합니다!"

불쌍해보였을 지도 모른다. 얼굴을 시뻘개서 힐 신은 여자애가 종이 한 장 들고 헉헉 거리며 말하는 모습이..

그랬거나 말거나 (지금은 생각조차도 나지 않는 그 사람을), 저기 앉아 시험을 치를 수 있으면 되는 거다. 시험지에 이름을 써내면 되는 것이다.

진짜 등줄기에서 땀이 날 정도로 뛰었다. 편입시험은 한겨울이다. 겨울방학이 시작한 시기에 시작하는 편입시험이라 날이 따뜻하지 않다. 그 추운 날 점퍼에 운동화도 신지 않는 채 힐을 신고 뛰었다. 추위를 많이 타서 하루종일 히터만 찾아다니는 혜진은, 걱정과 달리기와 두려움이 정신은 이미 혼미하고 몸은 땀범벅이라니..

그렇게 앉아서 헉헉대며, 숨도 고르지 못했는데, 드디어 시험종이 울렸다.





3. 이걸 푸는 거야?



시험을 준비한 시기는 딱 2 달이다. 하고 싶긴 했지만, 두렵기도 했고, 해야 하나 라는 고민을 하며 우연히 생각한 날 대학교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니 편입생 입학전형이 떠 있었다.

혜진은 대학 4년제를 졸업한 학사편입을 지원했다.

사실 편입이 그리 어려운 건 줄도 몰랐다. 학원도 다니지 않았다. 주변에서 편입을 준비하는 사람을 본 적도 없다. 공부도 특별히 하지 않고, 졸업 후 2년이 지났다.

혜진이  했던 거라곤,  아침에 일찍 일을 하고 나면 남는 나머지 4시간 동안 하는 둥 마는 둥  YBM 토익 강좌를 끊어두고 조금씩 보는 거였다. 그렇게 한다고 성적이 크게 좋지도 않았다. 그냥 손만 놓지 않았다는 것 외에 공부한 게 없다.


그런 혜진은 무작정 편입도전을 한 것은, 영어시험과 수학시험만 보았기 때문이다.

학과성적은 그리 나쁘지 않았고, 장학금도 타고 다녔다. 그래서 학점에서는 그리 신경 쓰지 않았고, 영어야 하면 하겠지 라는 생각, 그리고 고등학교 때 배운 수학이 있으니 그것만 조금 공부해서 시험 볼래 라는 굉장히 단순한 생각으로 그렇게 시험 접수를 했다.


혜진이 접수 한 대학은 총 5 대학인데, 이곳에서 영어와 수학까지 보는 학교가 3곳, 그리고 영어만 보는 학교가 2곳이었다. 영어만 보는 학교 중의 한 곳이 바로 성균관대였다.



"시험 시작하십시오."

진짜 헉헉 거리는 숨소리가 난다. 아직도 몸이 풀리지 앉은자리에서 영어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고, 지문은 길다. 모르는 단어가 난무하고, 이해하지 못한 문항들이 많다.

아직 진정되지 않은 심장 덕분에 머리도 어질어질한데 시간 내에 지문 다 보려면 어떻게든 풀긴 풀어야 한다.


다들 어찌 그리 잘하는지, 차근차근 시험지가 넘어가는 소리가 들린다.

진짜 몰라서 여기저기 시험지를 왔다 갔다 하는데, 역시 공부한 사람들은 다른 것인가?

예진은 시험지를 보며 도통 무슨 소린지 모르겠다. 시간은 다가오고, 답안지는 내야 한다.  아는 단어 찾는 게 더 빠를 만큼 , 왜 이리 단어는 어려운지 , 진짜 정신없이 맞는지 틀리는지, 아는 거 반 모르는 거 반으로 OMR 카드를 작성 했다.

그렇게 혜진의 정신없이 푼 것 인지 찍은  것인지 모를 시간의 시험을 끝냈다.



"야~ 너 잘 봤어? 아쒸, 진짜 대박 어렵네."

시험이 끝나고 다들 삼삼오오 모인다.

나는 오롯이 혼자서 왔고, 혼자 공부했고, 혼자서 등록하다 보니 아는 사람이 당연히 없다.

지나고 나서 보니 , 편입학원이 있어서 다들 그곳에 모여 정보를 교류하고 서로 친할 뿐 아니라, 시험에 대해서도 서로 공유한다는 것이다.

그런 정보가 전혀 없는 혜진은 주변에서 들리는 소리 만으로도 가슴이 철렁했다, 사람들이 하는 얘기 들으며 그냥 계단을 터덜터덜... 뒤 돌아 설 수밖에 없다.


그렇게 제1공학관 계단을 내려와서 이제야 눈에 들어오는 대학교 캠퍼스.

달릴 때에도 보긴 했지만, 참 나무가 많다. 오르막도 없고 평지에 건물들도 큼직하고 넓다.

유독 마음에 들었던 빨간색 건물, 그리고 중앙에 잔디 한 중간에 있던 하얀 건물의 도서관 건물이 눈에 들어온다.

'여긴 캠퍼스도 참 예쁘네, 나도 오고 싶지만 안될 거 같아.'

'여기에 기숙사가 있구나. 기숙사도 예쁘네, 내가 있던 학교 기숙사보다는 좀 작네. 여긴 뭐 이리 건물이 길어 , 넓어' 사람이 없으니 혼잣말을 내뱉지는 못하고 머릿속에는 구경하는 소리가 가득 울린다.


그렇게 처음 왔던 길을 따라 들어왔던 그 문을 다시 나갔다.

드디어 눈에 들어오는 큰길, 그리고 학생들의 모습에 새삼 자신이 초라해 보인다.

공부를 조금 더 잘할걸 이란 생각은 안 한다. 그때 열심히 했어도 올 수 있는 학교가 아니었기에, 그런데 또 이렇게 둘러보고 나니 탐은 난다. 인간의 마음이란... 정말 간사하지?


'에휴, 나도 이런데 다니고 싶네.'


그런 생각으로 다시 지하철을 타러 가는 길에, 아까 지하철역에서 부랴부랴 뛰어 올 때에는 보지 못했던 쇼핑몰이 하나 있다.

1층에 다양한 스포츠 브랜드가 잔뜩 들어가 있는 쇼핑몰, 뭔가 미니 아웃렛 같은 느낌이다.

'못 쳤어도 그래도 잘했어. 없는 돈이지만, 날 위한 선물이다. 오늘 수고했어.'

라는 생각이 아디다스 운동화를 하나 사러 들어갔다.

마침 가격도 저렴하고 마음에 드는 운동화가 있어서 하나 파란 케이스에 담아 가격을 지불했다.

'그래 여기가 아니어도 돼. 다른 데도 시험 있으니 또 내일은 시험을 보러 가야지.'

지하철 역 입구에 서서 다신 못 올 것 같은 이 동네를 한번 더 둘러보았다. 마지막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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