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누구에게 이득일까?

세상에 공짜는 없다, 그리고 경제적 유인의 작동

by 와니 아빠 지니

어느 금요일 저녁, 아들과 흥미로운 거래를 시작했다.


“구몬을 하지 않고 씻으면, 구몬은 주말로 미뤄줄게. 대신 지금 씻지 않으면 바로 구몬부터 해야 한다.”


남자아이들의 특징일까? 나도 어렸을 때 씻는 걸 싫어했던 기억이 난다. 아들도 “땀도 안 났는데 왜 씻어야 해?”라며 버티는 일이 잦았다. 그런데 이번엔 게임이라는 강력한 인센티브를 던져보았다. 구몬을 미루고 바로 게임을 할 수 있다는 제안을 듣자마자 아들은 단숨에 옷을 벗고 욕실 앞으로 달려갔다. 이렇게 빨리 준비하는 모습은 처음이었다. 정말 강력한 유인은 행동을 민첩하게 만든다. 씻는 동안 욕실에서 아들이 갑자기 물었다.


2.jpg


“나는 이렇게 씻으면 바로 게임도 할 수 있고 이득인데, 아빠는 어떤 이득이 있어?”


그 질문에 살짝 놀랐다. 평소 내가 썼던 경제 만화책 ‘팔도와 친구들의 나도 경제왕’의 내용이 아이 머릿속에 남아있을까 궁금했는데, 그 한마디로 괜한 걱정이었다는 걸 깨달았다.


이 질문은 사실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에서 이야기하는 핵심 원리를 떠올리게 했다. 국부론의 한 대목은 이렇게 말한다.


1.jpg
우리가 저녁 끼니를 먹을 수 있는 것은 정육점, 양조장 또는 빵집 주인들의 선심 때문이 아니라 그들 자신의 사리 때문이다.


아담스미스의 이 한마디는 사람들은 모두 자신의 이익을 위해 행동한다는 뜻이다. 내가 아들에게 씻으면 게임을 허락하겠다고 한 것도, 결국 내가 원하는 ‘씻기’라는 결과를 얻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여기서 끝이 아니다. 아들도 단순히 내 말을 듣는 것이 아니라, 게임이라는 보상을 얻기 위해 스스로 이득이 되는 선택을 한 것이다. 이 거래는 강요가 아니라 서로의 필요를 채워주는 과정에서 성사된 셈이다.

“아빠는 어떤 이득이 있느냐고? 네가 씻으면, 나는 네가 깨끗하고 건강하게 지내는 걸 볼 수 있지. 그게 아빠한테는 가장 큰 이득이야.”


아들은 내 대답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뭔가 더 생각하는 표정이었다. 아마도 내가 얻는 이득이 보이지 않는 결과라는 점에서 신기했던 모양이다. 그 상황은 아들에게나 나에게나 작은 교훈을 남겼다. 경제적 유인은 단지 거래를 넘어서, 서로의 필요와 입장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도구가 된다는 것이다.


아들이 국부론을 읽었을 리는 없다. 아이의 질문 속에는 이미 경제학의 중요한 개념 중 하나인 ‘경제적 유인’이 담겨 있었다.


미국 경제학자 그레고리 맨큐는 그의 책 경제학 원론에서 ‘사람들은 경제적 유인에 반응한다’는 원칙을 제시했다. 이 원칙은 인간이 자신에게 주어진 보상이나 대가를 보고 행동을 결정한다는 것이다. 내가 게임이라는 보상을 제시했을 때, 아들의 행동이 즉각적으로 변화한 것도 그 원칙의 결과였다.


경제적 유인은 단지 행동을 바꾸는 동력은 아니다. 이것은 세상의 작동 방식을 이해하는 열쇠가 된다. 아들의 질문은 자신의 이득만이 아니라, 내가 얻는 이득까지 생각하려는 시도를 담고 있었다. 그건 단순히 거래를 넘어서, 상대방의 입장을 헤아리는 것이다. 이는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으로 확장될 가능성을 보여주는 태도였다.


부모라면 한 번쯤 느껴봤을 것이다. 아이들에게 무언가를 가르칠 때, "하지 마라"는 명령이 얼마나 효과가 없는지를. 반대로, 보상(당근)을 주겠다고 하면 아이들의 눈빛이 반짝이며 행동이 달라지는 모습을.


이런 모습은 가정에만 국한되어 있지는 않다. 실제로 당근이 사회적 문제 해결에 효과적임을 증명한 사례가 있다. 바로 1995년부터 전국적으로 시행된 쓰레기 종량제다.




그전까지는 쓰레기 처리비용이 재산세에 포함되어 있어, 가정마다 쓰레기를 줄이든 많이 배출하든 내야 하는 금액은 똑같았다. 그러다 보니 쓰레기를 줄이려는 동기가 없었다. 그런데 쓰레기 종량제를 도입하면서,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다. 많이 버릴수록 비용(쓰레기봉투 구입비)이 늘어나는 구조가 생긴 것이다. 결과는 어땠을까?


1994년 시범 단계에서부터 재활용품 수거량이 2배 이상 증가하고, 쓰레기 발생량은 30~40%나 줄었다. 이 성공에 힘입어 이듬해 환경부는 자신 있게 전국적으로 확대 시행했다. 가정마다 쓰레기를 줄일수록 실제 비용이 줄어드는 인센티브 효과 덕분이었다. 지금도 여전히 이 인센티브는 사회적으로 적응에 적응을 거듭해서 유지되고 있다.




씻고 나온 아들에게 말했다.


“너는 지금 게임을 얻었지만, 그 대가는 네가 씻는 행동이었어. 세상엔 진짜 공짜로 얻는 건 없어. 모든 일엔 대가가 따르거든.”

아들은 조용히 생각하더니 웃으며 말했다.


3.jpg


“그래도 게임할 수 있으니까 좋아!”


그날의 대화는 세상에 공짜가 없다는 사실과 더불어, 경제적 유인이 사람들의 행동을 어떻게 바꾸는지 보여준 생생한 사례였다. 동시에, 경제학이 단지 숫자와 계산을 넘어서 선택을 이해하고,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돕는 학문임을 다시금 떠올리게 해 주었다.


경제학을 배운다는 건 단지 돈의 흐름을 이해하는 게 아니다. 그것은 나와 다른 사람, 그리고 세상이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이해하고, 그 안에서 더 나은 선택을 해나가는 첫걸음이다. 아들의 작은 질문은 그가 앞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눈을 점점 더 넓혀갈 수 있으리라는 가능성을 보여준 순간이었다.


keyword
이전 02화삶은 선택의 연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