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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선택의 연속이다.

선택의 연속 속에서 삶과 경제를 배우다

by 와니 아빠 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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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우리는 왜 계속 선택을 해야 해?"


아들의 질문에 나는 한순간 멍해졌다. 평소라면 "그냥 그런 거야"라며 대답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날은 그럴 수 없었다. 왜일까? 그 물음은 예상 밖이었고, 동시에 예상 밖으로 깊었다.


"음… 왜냐하면…“


나는 말을 멈췄다. 정말 왜 우리는 끊임없이 선택을 해야 할까? 애써 적당한 답을 찾아보려 했지만, 떠오르는 말이 없었다. 아들은 답을 기다리며 나를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


“왜 계속 선택을 해야 하느냐고?” 나는 그저 그의 말을 되풀이하며 시간을 벌었다.


"응." 아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학교에서도 뭘 먹을지, 뭘 할지 계속 정해야 하고, 집에서도 게임할지 숙제할지 골라야 하고… 그냥 아무것도 안 하고 싶을 때도 있는데, 그건 또 선택을 안 하는 거니까 선택한 거래."


아들의 말에 나는 피식 웃었다. 생각보다 단단한 질문이었다.


"맞아." 나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선택을 안 하는 것도 결국은 선택이야. 예를 들어, 네가 숙제를 안 하고 게임을 하기로 하면, 숙제를 안 한다는 선택을 한 거고, 게임도 안 하고 그냥 누워 있기만 한다면, 아무것도 안 하겠다는 선택을 한 거지. 결국 선택을 피할 수는 없는 거야."


아들은 눈을 반짝이며 대꾸했다. "근데 왜 그렇게 해야 돼? 그냥 다 하게 해 주면 안 돼?"


"그럴 수 있으면 좋겠지."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하지만 우리에겐 시간이 한정되어 있어. 하루는 24시간뿐이고, 네가 뭘 하든 그 시간은 흘러가잖아. 그래서 중요한 거야. 뭘 하고 싶은지, 뭘 해야 할지 생각하고 정해야 그 시간을 제대로 쓸 수 있으니까."


아들은 잠시 생각에 잠긴 듯 보였다. 그러더니 다시 물었다.


"근데 만약 내가 게임만 하고 싶으면? 그럼 그렇게 하면 되는 거 아니야?"


나는 잠시 숨을 골랐다.


"그럴 수도 있지. 네가 게임만 하고 싶다고 해서 게임을 한다면, 그건 네 선택이야. 하지만 기억해야 할 게 있어. 네가 게임을 하면서 보내는 시간은 공부하거나 숙제를 하는 시간 대신에 쓰이는 거야. 그 결과는 결국 네가 책임져야 해."


"책임진다는 게 무슨 뜻이야?" 아들은 고개를 갸우뚱했다.


"쉽게 말하면, 네가 선택한 일의 결과가 좋든 나쁘든 받아들이는 거야. 예를 들어, 게임을 계속해서 숙제를 못 했다면, 다음날 선생님께 혼날 수도 있고, 학습이 뒤처질 수도 있겠지. 그건 네가 선택한 결과야. 반대로 숙제를 먼저 끝내고 나서 게임을 했다면, 숙제도 했고 게임도 해서 기분이 좋을 거야. 이것도 네가 한 선택의 결과고."


아들은 약간 불만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근데 게임만 해도 행복할 수 있잖아. 결과가 뭐든 간에, 그 순간이 좋으면 되는 거 아닌가?"


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아들의 말도 일리가 있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이 빠져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행복한 순간이 중요한 건 맞아."

나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하지만 우리가 기억해야 할 건, 선택은 단지 그 순간만의 행복을 결정하는 게 아니라는 거야. 선택은 앞으로의 너에게도 영향을 미쳐. 오늘 게임을 했던 행복한 순간은 잠깐일 수 있지만, 숙제를 놓친 결과는 내일 네가 더 힘들게 만들 수도 있어."

"그러니까, 선택을 할 때는 지금만 보지 말고, 조금 더 길게 보라는 말이야. '내가 지금 이걸 선택하면 나중에 어떤 결과가 올까?' 이렇게 생각하면 후회하지 않는 선택을 할 가능성이 더 커져."


아들은 한동안 대답하지 않았다. 내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곱씹는 듯 보였다. 나는 부드럽게 덧붙였다.


"사람은 누구나 실수도 하고, 때로는 잘못된 선택을 하기도 해. 그게 꼭 나쁜 건 아니야. 하지만 중요한 건 실수를 통해 배우고, 다음번엔 더 나은 선택을 하려고 노력하는 거야. 그게 후회하지 않는 선택을 만드는 방법이야."


아들은 여전히 뭔가 이해가 안 간다는 표정이었다. 나는 그의 마음을 조금 더 풀어주기 위해 말을 이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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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선택은, 너 자신을 만들어가는 과정이야."


"나 자신을 만든다고?"


"응. 네가 내리는 선택 하나하나가 결국 네가 어떤 사람이 될지를 정해. 예를 들어, 운동을 열심히 하면 몸이 건강한 사람이 될 거고, 공부를 열심히 하면 지혜로운 사람이 되겠지. 반대로 아무것도 안 하고 있으면, 아무것도 얻지 못하는 사람이 될 수도 있어. 결국 네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를 정하는 건 선택을 통해 이루어지는 거야."


아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러니까 내가 어떻게 선택하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거구나."


"맞아." 나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러니까 선택은 계속해야 해. 그게 바로 너 자신을 만들어가는 과정이니까."


아들은 더 이상 질문하지 않았지만, 생각에 잠긴 듯했다. 나는 그 모습이 기특하면서도, 스스로에게도 되뇌었다. 후회 없는 선택은 단순히 완벽한 결과를 기대하는 것이 아니라, 그 과정을 책임지고 배우는 태도에서 나온다. 그리고 그것은 끊임없이 연습해야만 얻을 수 있는 기술이었다.


그날 아들과 나눈 대화는 내가 잊고 있던 삶의 중요한 원리를 다시 일깨워주었다. 우리의 선택은 곧 우리의 삶이다.




선택은 곧 우리의 삶이다. 그리고 경제는 그 선택의 나침반이다.


나는 아들과의 대화를 되짚으며 생각했다. 선택이란 단지 순간의 결정을 넘어, 삶의 방향을 결정짓는 중요한 도구라는 사실을. 그러나 그 순간, 또 다른 물음이 떠올랐다. 그렇다면, 후회 없는 선택을 하기 위해 무엇을 배워야 할까?


바로 경제였다.


나는 오랫동안 경제교육을 해오며, 늘 한 가지 아쉬움을 느꼈다. 많은 사람들이 경제를 ‘돈’이나 ‘금융’과 단순히 연결 짓는다는 점이었다. 경제교육의 목표를 용돈 관리나 가계부 작성 같은 실용적인 주제로만 한정 짓는 경우가 많았다. 물론 이런 주제도 중요하다. 하지만 그보다 더 본질적인 질문이 빠져 있었다. 경제란 무엇을 배우는 학문인가?


경제는 단지 숫자를 다루는 기술이 아니다. 경제는 삶의 복잡한 선택 속에서 우리가 더 나은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돕는 학문이다. 고전 경제학과 행동경제학이 보여주듯, 경제는 인간의 합리적이고 비합리적인 모든 선택을 탐구하며, 그 선택의 본질을 이해하도록 돕는다.


고전 경제학에서는 인간을 철저히 합리적인 존재로 가정한다. 이른바 ‘경제적 인간(Homo Economicus)’이라는 개념이다. 이 이론에 따르면, 인간은 모든 선택에서 이익을 최대화하기 위해 이성적으로 행동한다. 우리는 제한된 자원 안에서 최선의 결과를 만들어내기 위해 계산하고 비교하며, 가장 효율적인 선택을 한다는 것이다.


이 관점은 경제를 마치 복잡한 퍼즐처럼 다루게 한다. 예를 들어, "어떤 상품이 더 가성비가 좋은가?" 혹은 "현재의 소비와 미래의 저축 중 무엇이 더 유리한가?" 같은 문제를 풀기 위해, 우리는 숫자와 논리를 사용한다.


하지만 현실의 선택은 항상 그렇게 합리적일까?


내가 경제를 가르치며 더욱 흥미를 느꼈던 부분은 바로 행동경제학이다. 행동경제학은 고전 경제학의 가정을 흔드는 질문으로 시작한다.


'인간은 정말로 합리적인가?'


현실 속 인간은 종종 감정, 환경, 그리고 습관에 의해 비합리적인 선택을 한다. 충동적으로 군것질을 하거나, 미래의 이익보다 지금의 즐거움을 택하는 것처럼 말이다. 행동경제학은 이런 비합리적 선택의 이유를 탐구하며, 인간이 왜 때때로 자신의 이익에 반하는 결정을 내리는지를 설명한다.


예를 들어, 유명한 '프레임 효과'를 보자. 똑같은 사실이라도 이를 어떻게 표현하느냐에 따라 사람들의 선택은 달라진다. "이 상품을 구매하면 10% 할인됩니다"와 "이 상품을 지금 안 사면 10% 손해입니다"는 본질적으로 같은 말이지만, 사람들은 후자의 문구에 더 민감하게 반응한다.


고전 경제학과 행동경제학은 각각 인간의 선택을 서로 다른 시각에서 바라보지만, 한 가지 공통점을 공유한다. 바로 경제는 인간의 선택을 탐구하는 학문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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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경제학자 알프레드 마셜(Alfred Marshall)은 이를 두고 “경제학은 인류의 일상적인 삶을 연구하는 학문”이라고 말했다. 그의 정의는 경제를 단순히 숫자나 시장의 법칙으로만 보지 않고, 우리의 삶과 밀접하게 연결된 학문으로 바라보게 한다.


생각해 보면, 경제는 늘 우리의 선택과 함께 있다. 점심 메뉴를 고르는 순간에도, 집을 구하거나 직업을 선택할 때에도 경제는 그 배경에서 작동하고 있다. 마셜의 말처럼, 경제는 일상의 작은 결정에서부터 인생의 중대한 선택에 이르기까지 모든 영역에 녹아 있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경제를 배우며, 우리의 선택을 이해하려고 할까? 그것은 결국 우리가 더 나은 삶을 살고자 하는 본능과 맞닿아 있다. 경제는 단순히 이익을 계산하는 도구가 아니라, 더 행복하고 만족스러운 삶을 만들기 위해 선택을 돕는 학문이다.


내가 경제교육에서 강조하고 싶은 것도 바로 이 지점이다. 경제는 단순히 '돈을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를 가르치는 데 그치지 않는다. 경제는 우리가 왜 선택을 하고, 그 선택이 어떤 결과를 낳는지를 이해하게 하며, 더 나은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돕는다.


합리적 선택을 위한 고전 경제학의 원리와 비합리적 행동을 다루는 행동경제학의 통찰은 우리 삶에서 조화를 이룬다. 우리가 이성적으로 사고해야 할 때도 있고, 때로는 우리의 감정과 습관을 이해하며 스스로를 제어해야 할 때도 있다. 경제는 바로 그 두 가지 경계에서 우리가 최선의 선택을 할 수 있도록 안내하는 나침반과 같다.


아들에게도 나는 이런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경제를 배운다는 건 단순히 돈을 잘 관리하기 위해서가 아니야. 경제는 네가 선택을 더 잘하고, 선택한 결과를 책임감 있게 받아들이는 법을 배우는 과정이야. 그리고 그 선택이 쌓여, 네가 어떤 사람이 될지를 만들어가는 거지."


"네가 내리는 모든 선택이 네 삶을 만들어 간다"는 내 말에, 아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마셜의 정의처럼, 경제는 결코 먼 곳에 있는 학문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매 순간 살아가며 마주하는 현실 그 자체다. 그리고 경제는 선택을 이해하는 언어다. 그리고 우리는 그 언어를 배우며, 점점 더 나은 선택을 향해 나아갈 수 있다. 아이들이 경제를 배워야 하는 이유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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