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배려가 남긴 두 얼굴

선택의 외부효과

by 와니 아빠 지니

요즘 학교에서는 학교 폭럭(학폭)이 늘 이슈라고 한다. 그래서 학생들도 선생님도 지친다고 했다. 어느 선생님은 학폭으로 불려 다니다 하루가 다 지나간다고 나에게 푸념한 적도 있다. 그래서 아들도 걱정이 되었다.


그런데 어느 날 문화센터의 줄넘기 교실에 데리러 갔더니 평소보다 기운이 없어 보였다.


“무슨 일 있었어?”


“아니야, 괜찮아.”


하지만 뭔가 있음을 알아차린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차를 타고 가던 아들은 결국 고백했다.


“아빠, 나 오늘 친구한테 맞았어.”


나는 순간 놀랐다. 아들은 덩치도 크고, 유도와 태권도를 배우고 있다. 자기 방어는 충분히 할 수 있을 텐데, 왜 맞고만 있었을까? 게다가 학교 친구인데, 학교에서도 때리지 않던 친구가 왜?


“그 친구는 왜 그랬데?”


“나도 모르겠어. 그냥 줄넘기 교실에서 2주 전부터 그랬어. 오늘은 좀 아파서 아빠한테 얘기하는 거야.”


나는 너무 속상했다. 아니 덩치도 커서 힘도 좋은 녀석이 왜? 너무 착해서 문제인 건가? 그래서 방어 후 공격을 주문해 보기로 했다.


유도로 엎어치기 한 번 하면 되잖아. 왜 가만히 있었어?


아들은 고개를 숙였다.


그림1.jpg



“그러면 친구가 다칠 것 같아서... 나도 그냥 싫었어. 때리고 싶지 않아.”


속상했다. 분명 착한 성격이지만, 그게 아들에게는 약점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대화를 더 이어가지 못하고 혼자 생각에 잠겼다. 힘이 있는데도 쓰지 않는 것, 이건 아들의 배려심 때문이지만, 그 선택이 옳은 걸까?


아들이 맞고도 친구를 다치게 하지 않으려 했던 이유는 단순했다. 자신이 가진 힘을 사용할 경우, 그로 인해 누군가가 입을 피해를 걱정한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단순한 배려 이상의 경제적 원리를 떠올리게 한다. 바로 자원의 선택적 사용이다.


경제학에서는 자원을 어떻게 사용할지를 결정할 때 비용과 효용을 따진다. 여기서 자원은 꼭 돈이나 물건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시간이든, 에너지든, 심지어는 아들이 가진 힘도 하나의 자원이 될 수 있다.


아들이 엎어치기를 한다면 분명 상대방을 제압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순간의 효용(자신의 방어)보다 비용(친구가 다칠 가능성)이 더 크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행동을 멈춘 것이다.


이는 일종의 기회비용과 연결된다. 아들은 힘을 사용하지 않음으로써 친구와의 관계를 유지하거나 다른 결과를 만들어낼 기회를 선택한 것이다. 경제학에서 말하는 합리적 선택은 바로 이런 식으로 이루어진다. 제한된 자원을 어떤 상황에 어떻게 쓸 것인가를 고민하고, 최선의 선택을 하는 것이다.




합리적 선택은 늘 정답일까?


그렇다면 아들의 선택이 무조건 옳은 것이었을까? 나는 여전히 마음이 편치 않았다. 아들이 친구에게 다치지 않기를 바랐던 것은 분명 좋은 의도였다. 그러나 그로 인해 아들이 자신을 지키지 못했다는 사실이 나를 괴롭게 했다.


경제학에서도 합리적 선택이 항상 모두에게 좋은 결과를 가져오지는 않는다. 때로는 효용과 비용을 따져 본 선택이 예상치 못한 문제를 낳기도 한다. 이를 외부효과라고 부른다. 외부효과는 내가 내린 선택이 나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이나 환경에 의도치 않은 영향을 미치는 것을 뜻한다. 그리고 그 영향은 긍정적일 수도, 부정적일 수도 있다.


아들이 친구를 다치게 하지 않으려 힘을 쓰지 않은 것은 친구에게 긍정적인 외부효과를 주었다. 친구는 아들로 인해 다치지 않았고, 그 덕분에 몸싸움이 더 심각해지지 않았다. 이런 선택은 상대방에 대한 배려와 도덕적 판단이 바탕이 되었기 때문에 더욱 가치 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같은 선택이 아들에게는 부정적인 외부효과를 낳았다. 스스로를 방어하지 못했다는 경험은 아들의 자존감에 상처를 줄 수도 있다. 심지어 비슷한 상황이 반복된다면 더 큰 심리적 부담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 이 선택은 친구에게 좋은 결과를 주는 대신, 아들에게는 예상하지 못한 대가를 치르게 만든 것이다.


외부효과는 힘을 사용하거나 사용하지 않는 문제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우리 삶의 수많은 선택에서 외부효과는 늘 존재한다. 예를 들어, 공장이 물건을 더 많이 생산하려고 연기를 내뿜는다면, 공장 입장에서는 이익(효용)을 얻을 수 있지만, 그 연기로 인해 주변 사람들이 겪는 공기 오염은 부정적인 외부효과로 작용한다.


반대로, 한 사람이 새로운 기술을 발명하거나 봉사활동을 하며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경우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는 자신이 얻는 효용 이상으로 주변 사람들에게 긍정적인 외부효과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어쨌든 힘은 그 자체로 중립적이다. 그걸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선이 될 수도, 악이 될 수도 있다. 경제학에서도 자원은 본질적으로 선악이 없다. 돈도, 시간도, 에너지조차도 마찬가지다. 다만 그것을 어떻게 사용하느냐가 중요하다.


아들의 선택은 힘을 사용할지 말지를 두고 효용과 비용을 저울질한 결과였다. 그러나 이 선택은 모든 결과를 균형 있게 만들지는 못했다. 하지만 그래도 우리가 선택을 내릴 때는, 그 선택이 누구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를 신중히 생각해야 한다.


힘을 사용하는 문제도 마찬가지다. 힘은 꼭 물리적인 것이 아니더라도, 우리에게 주어진 자원이다. 이 자원을 사용하지 않을 때 발생하는 긍정적인 외부효과와 부정적인 외부효과를 함께 고려해야 한다. 선택의 과정은 복잡할 수 있지만, 중요한 것은 자신뿐만 아니라 주변에 미칠 영향을 책임감 있게 이해하고 판단하는 것이다.

아들의 경험은 외부효과를 이해하는 데 좋은 예였다. 친구를 다치게 하지 않으려는 선택은 훌륭했지만, 이 선택이 아들에게 남긴 대가도 돌아봐야 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우리는 아이들에게 힘의 의미와 책임감을 함께 가르칠 수 있다. 무엇을 선택하든, 그 선택이 가져올 결과를 충분히 생각할 수 있도록 말이다.


나는 아들에게 다시 이야기를 꺼냈다.


“아들아, 네가 친구를 다치게 하고 싶지 않은 건 참 좋은 마음이야. 그런데 힘을 꼭 상대를 다치게 하는 데만 쓰는 건 아니야. 예를 들어, 친구가 계속 괴롭힌다면 매트가 있는 곳과 같은 곳이나 안전한 곳에서 엎어치기를 해서 상황을 멈추게 하고, 더 다치지 않게 주의하는 것도 방법이야.”


아들은 잠시 생각하더니 물었다.


“그럼 힘을 쓰는 게 나쁜 게 아닌 거야?”



그림5 복사.jpg


“그럼. 힘은 나쁜 것도, 좋은 것도 아니야. 어떻게 쓰느냐가 중요하지. 그 선택을 할 때 네가 얻는 효용과 다른 사람에게 주는 영향을 잘 생각하면 돼.”


아들이 가진 힘은 분명 소중한 자원이다. 경제학에서도 자원은 그냥 쌓아두는 것이 아니라, 올바른 순간에 적절하게 사용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아들이 자기 방어를 위해 힘을 사용할지 말지 고민했던 것은 단순한 갈등이 아니라, 자원을 사용하는 방법을 배우는 과정이었다고 생각한다.


힘은 필요할 때 쓰라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 사용은 상대에게만이 아니라 자신에게도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아들에게 이 이야기를 어떻게 전해야 할지 고민하며, 나도 내 자원인 말과 행동을 더 현명하게 써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된다.


-- 참고로... 선생님께 이 사실을 알리고 수업시간에 같은 행위가 반복되면 선생님이 불러서 주의를 주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선생님이 왜 그렇게 했는지 물어보니, 그 아이는 그냥 장난이었다고 했다. 그리고 그 이후로 그런 일이 발생하지 않았다.


0001.jpg
0002.jpg
0003.jpg


keyword
이전 06화달콤한 선택의 법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