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장. 아파트가 계급을 말해주는 사회

— 집값, 층간소음, 경비원까지 담긴 한국적 공간

by Jin Yang

외국 친구가 한국 드라마를 보다가 물었다.

“왜 다들 아파트에 살아? 그리고 왜 그 아파트가 그렇게 중요해 보여?”

단순한 질문이지만, 그 속에는 한국 사회의 뿌리 깊은 현실이 들어 있다.


왜냐하면 한국에서 아파트는 단지 주거 공간이 아니라

사회적 지위, 경제력, 자녀의 미래까지 품은 총체적 상징이기 때문이다.


SBS 드라마 《펜트하우스》는 이 구조를 가장 극적으로 보여준다.

드라마 속 ‘헤라 팰리스’는 상류층의 상징이며,

최상층에 사는 사람이 곧 가장 높은 권력을 쥔 인물로 설정된다.

주인공들은 더 높은 층, 더 넓은 평수, 더 나은 학군을 얻기 위해

거짓과 음모, 심지어 범죄까지 저지른다.

이 모든 것이 과장처럼 보이지만,

사실상 한국 사회에서 아파트는 단순한 ‘집’을 넘어

성공과 실패를 가르는 기준점으로 작동한다는 점에서

시청자들에게 낯설지 않은 현실을 보여준다.

서울을 비롯한 대도시에서는

어떤 아파트에 사느냐가 곧 학군을 결정하고,

학군은 자녀의 미래로 이어진다.

이처럼 위치, 브랜드, 평수는 부동산의 가치일 뿐 아니라

사회적 신분의 지표로 인식된다.


《스카이 캐슬》에서도 명문대를 목표로 하는 부모들이

입시 컨설팅, 고액 과외뿐 아니라

‘좋은 단지’에 입주하는 것 자체를 자녀 성공의 전략으로 여긴다.

그 공간은 보호막인 동시에 무대이며,

공동체인 동시에 경쟁의 장이다.

이처럼 아파트는 외부 세계와 분리된

일종의 내부 계급 커뮤니티처럼 작동한다.

같은 단지 안에서도 평형에 따라 계층감이 다르며,

입주민 회의, 커뮤니티 시설, 단지 내 카페와 헬스장 등은

사회적 서열감을 은근히 강화하는 장치가 된다.


드라마 《하이바이, 마마!》에서도

주인공 차유리가 죽기 전 살던 아파트 단지로 돌아와

이웃들과 다시 마주하는 장면이 나온다.

반가움보다는 어색함, 연대보다는 거리감이 우선이다.

공간은 같지만 마음의 거리는 멀다는 것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물리적 위계도 뚜렷하다.

한국에서는 고층일수록 햇빛, 전망, 소음 차단 등의 이유로 선호되고,

‘몇 층에 사느냐’가 곧 재력의 상징으로 여겨진다.

그래서 ‘펜트하우스’는 단순한 건축 구조가 아니라

권력과 부의 상징적 표현으로 자주 쓰인다.

이는 드라마에서도 반복적으로 활용되는 계급의 은유다.

아파트는 동시에 긴장이 응축된 공간이기도 하다.


《나의 아저씨》에서는 주인공이 사는 오래된 아파트 단지에서

좁은 복도, 얇은 벽, 이웃의 시선이

사람을 점점 무너지게 만드는 요소로 작용한다.

그곳은 북적이지만 외롭고, 함께 살지만 단절된 공간이다.

또한 아파트 단지는 경비원과 주민 간의 위계도 보여준다.

직접적인 충돌은 잘 묘사되지 않지만,

현실에서의 갈등을 연상케 하는 설정이

드라마 곳곳에 배치된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서는

우영우가 자취하는 소형 주택과

다른 인물들의 고급 아파트가 은연중에 대비된다.

말로 표현하지 않아도

공간은 곧 사회적 배경과 권력의 차이를 드러내는 장치가 된다.

그들이 어떤 공간에서 살고, 어떤 풍경을 마주하며 하루를 시작하느냐는

관계의 역학을 설명하는 또 다른 방식이다.

아파트는 폐쇄적이면서도

사생활이 빠르게 공유되는 특이한 구조를 가진다.

“누가 이사 왔대.” “몇 평이래.” “그 집 애는 어느 학원 다닌대.”

같은 단지에 산다는 이유만으로

삶의 다양한 정보가 공유되며,

이는 때로는 연대가 되기도 하지만

더 자주 감시와 비교의 대상이 된다.

그렇기에 아파트는 한국 드라마에서

비밀이 폭로되는 무대이자, 감정이 터지는 공간으로 자주 등장한다.

복도에서의 대립, 엘리베이터에서의 침묵,

커뮤니티 센터에서의 소문—

이 모든 장면이 ‘아파트’라는 공간 안에서 일어난다.

한편 최근 드라마는

이러한 아파트 중심의 가치관에 의문을 던지기도 한다.


《나의 해방일지》는 아파트가 아닌

경기도 외곽의 단독주택 마을을 배경으로,

집단성보다는 고립감과 해방에 대한 욕망을 조명한다.

아파트라는 공간에 기대지 않는 인물들의 이야기를 통해

‘사는 곳이 삶을 결정짓지 않는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결국 한국 드라마에서 아파트는

단순한 배경이 아니다.

그건 계층, 관계, 감정을 나누는 공간이고,

사람 사이의 거리와 시선을 조절하는 사회적 기호다.


같은 단지에 산다고 해서

같은 삶을 사는 건 아니다.

그걸 드라마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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